약 1달 전에 어느 선배 목사님이, 책을 한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책 제목이 재미있어서 읽어 보았습니다. 제목이 “돈에 돈 사람, 돈을 돌리는 사람”입니다. 이 책의 주 내용은, 돈에 대해 욕심을 갖고, 돈에 집착하고 돈을 주인으로 꽉 붙들고 있으면, 저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복의 통로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돈을 돌리며 사는 사람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돈에 돈 사람은 저주이고, 돈을 돌리는 사람은 복되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소망교회 성도들은 돈에 돈 사람이 아니라, 돈을 돌리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돈을 돌리는 사람, 물질을 나누는 사람, 긍휼 사역자가 되라고 교훈을 하십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가난한 자를 보살피라’는 말씀이, 수십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도 곡식이나 과일을 다 거두지 말고, 객이나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고 하셨습니다(신24).
그리고 안식년에는 농사를 하지 말고, 농토와 과수원에서 나는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라고 했습니다(출23).
이사야 선지자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보살피라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가난한 자를 착취하고 학대하는 사람들을, 실랄 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사3, 렘22).
결국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그것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죄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에서는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잠언 21:13절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가난한 사람들이 힘들다고 어렵다고 도와달라고 할 때, 그 소리를 외면하면, 자기가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 도와달라고 하면 그 소리를 들을 자가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가난한 자를 잘 보살피며, 구제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잠언 28:27절에,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 또한 ‘흩어 구제하여도 가난하게 되지 않으며,’ ‘의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가난한 사람을 긍휼한 마음으로 잘 보살피면, 하나님이 그런 사람에게 놀라운 은혜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시편 41편입니다. 시편은 전체가 5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1권이 시편 1편부터 우리가 읽은 41편까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특이하게도, 1편의 시작과 41편을 시작하는 말이 같다는 것입니다. ‘복이 있도다.’ 이것은 단순히 복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얼마나 복이 있는가.’ ‘참으로 복이 있구나.’라는 뜻입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배우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찾았습니다. 스바 여왕이 궁금한 점들을 물으면, 솔로몬은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질문할 때마다 척척 지혜롭게 대답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지은 왕궁과 성전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보고는 스바 여왕이 큰 감동을 받고, ‘복 되도다, 복 되도다, 솔로몬의 백성들이여.’라는 말을 합니다(왕상 10).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며, 그의 지혜로운 통치를 받는 이 백성은, ‘참으로 복이 있도다.’라는 말입니다. 이 때 사용한 말입니다.
참으로 복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의 가난한 자는 ‘비천하고 연약한 자,’ ‘약한 자와 낮은 자’, ‘물질도 없고 힘이 없는 자’를 말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살피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보살핀다는 말도, 사려 깊게 관심을 가지고, 돌보는 사람을 말합니다. 관심과 애정과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참으로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복이 있습니까?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져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다보면, 어려움과 재앙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견디기 어려운 재앙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가난한 자들을 보살피며 살아온 사람을, 그런 재앙 가운데에서 건져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며,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재앙의 상황 속에서라도, 하나님이 그를 지키시고, 살게 하심으로 복된 존재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번만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지속적으로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계속하여 긍휼 사역자를 지키시고, 계속하여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살게 하고, 계속하여 그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2절 하반절에,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라는 말은, 원수들의 탐욕에 희생되지 않도록 지켜달라는 말입니다. 원수들이 쉴세 없이 긍휼 사역자를 비난하고 공격한다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지켜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3절에도 또 다른 한 가지 복이 나타납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들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붙들어 주신다는 말은 힘을 돋우다, 병을 이길 힘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병을 이길 힘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병을 이길 힘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더 멋있고 은혜가 되는 말씀이 그 다음에 있습니다.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주시나이다.’ 사람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병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몸이 연약하여 혹 침상에 누워 있을 때라도, 하나님이 그 병을 고쳐주신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여기의 ‘고쳐주신다’는 이 말은, 원래 ‘전복시킨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며는, 병상에 누워 있을 때의 우리의 환경과 형편은, 우울하고 걱정이 많고 쳐지고, 고통과 슬픔과 아픔인데, 이 환경과 형편을 뒤엎어서, 완전히 전복시켜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쁨과 감사와 생기가 넘치는, 역동적인 환경으로 바꾸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병상의 모든 상황을 변화시켜, 완전한 치유와 회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중에는 몸이 불편하여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일일이 그 이름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여러분은 대략 다 알 것입니다.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병상을, 완전히 전복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우울하고 근심 걱정되고 고통과 아픔이 있는 그 현장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 상황을 변화 시켜 주셔서,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의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런 사람에게, 이런 큰 은혜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재앙이 있어도 그를 건져 주신다고 하셨고, 그 가운데서 그를 지키고 살게 하셔서, 복을 받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아울러 원수의 탐욕에 희생되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병상에 있을 때에도 병을 이길 힘을 주시고, 병상의 모든 상황을 변화시켜 주셔서, 회복시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소망교회 성도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잘 돌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하셨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물질을 많이 심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것 많이 거둘 수 있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참된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며,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진실함으로 어려운 사람을 보살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무엇이었습니까? 다시 질문하면, 소돔과 고모라는 무슨 죄 때문에 멸망하였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동성연애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그들의 죄를 지적한 사람이, 바로 에스겔 선지자인데, 그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교만함, 풍성한 음식, 안일함, 가난한 자들을 돌보지 않음, 가증한 일을 행함....’ 에스겔이 지적하고 있는 것들 중 가장 심각한 죄는, 풍성한 물질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당시 뿐만아니라, 오늘날에도 이 죄를 우리에게 적용을 시킨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사할 것 같습니까? 이 죄에서 자유로울 것 같습니까? 심판이 우리를 비켜갈 것 같습니까?
지금 세계 인구 70억 명 중에, 10억 명이 하루 1달러로 살아간답니다. 먹을 것과 마실 물이 없어서, 정말 형편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음식물 쓰레기 1년치면, 전 세계 굶어 죽어가는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미국만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 나는 것입니까? 우리는 먹는 것에 너무 낭비하지는 않습니까? 먹는 데, 입는 데, 즐기는 데 다 낭비해 놓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볼 여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혹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낭비하는 것은, 하나님과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이다.” 나중에 우리가 낭비한 돈이 하나님 앞에서 하소연 할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에 쓰임 받지 못했다.’고. ‘주인이 우리를 잘 못 사용하였다.’고 고소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보살피는 일은,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빚쟁이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잠언 19:17절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면, 그것이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이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꾸어가셨으니, 반드시 갚으셔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주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한 남편이 오랜만에 부인에게 이끌리어 교회에 나왔습니다. 웨슬리라는 유명한 담임목사님이 설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힘쓰고 애써서 열심히 벌어서, 부자가 되십시오.’ 이 설교를 듣고 있던 남편이, 부인의 옆구리를 쿡쿡찌르면서, ‘니네 목사 설교 잘하는데.’라고 말했습니다. 또 웨슬리 목사가 말하기를, ‘여러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만족시키는데 낭비하지 말고, 아껴서 많이 저축하십시오.’ 그 남편이 또, ‘야 니네 목사 설교 짱인데.’라고 말했습니다. 계속해서 웨슬리 목사는 설교를 합니다. ‘여러분이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고, 많이 저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인생의 목적은 아닙니다. 다만 수단일 뿐입니다. 돈을 벌고 저축하는 목적은, 남들에게 주기 위함입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많이 나누어 주십시오.’ 그랬더니, 그 남편 왈 ‘야, 니네 목사 설교 죽 썼다.’
여러분 기독교인들은, 웨슬리와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땀 흘려서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합니다. 낭비하지 말고 저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옛말에 ‘공부해서 남주나’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남 주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또 이런 말도 있었습니다. ‘돈 벌어서 남 주나.’ 그렇습니다. 남 주기 위해서 열심히 버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더 많이 줄 수 있도록, 더 많은 것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부분에 관하여 많은 말씀을 하셨지만, 두 구절만 살펴보고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2:10절,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가난한 자들을 보살피는 것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고 얘기합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어릴 대부터 이런 말씀을 듣고 지켜왔는데, 힘써서 행하여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4:28절에서는,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영어 성경에 보니까, 이 성구를 ‘너의 손으로 닥치는 대로, 어떤 일이든지 열심히 해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도록 하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일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데, 그 목적은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소망교회 성도여러분, 긍휼사역에 힘씀으로, 약속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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