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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2:23-25)
이정현 목사 2015-03-22 추천 0 댓글 0 조회 504

본문 23절에,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다.’고 했는데, 이 왕은 모세를 상당히 괴롭혔던 투트모세 3세입니다. 모세를 잡아 죽이려고 했던 인물이고, 애굽을 강력하게 통치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 왕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미 모세를 구해준 바로의 공주 하셉슈트도, 죽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모세를 미디안으로 도피시킨지 4년 후에 죽음).

 

이런 상황 속에서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며, 하나님의 연단을 받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미디안 땅에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돌아왔을 때 이미 하셉슈트와 투트모세 3세는 죽었고, 이제 새로운 왕이 등장하여 애굽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 왕이 바로 아멘호텝 2세입니다.

 

아멘호텝 2세도 부왕 못지않게, 애굽을 강력하게 통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극도로 괴롭히며, 모세와 대결 하는 왕이, 바로 아멘호텝 2세가 되는 것입니다.

 

“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1.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된 노동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살았던 야곱의 식구들이, 애굽의 국무총리였던 요셉의 초청을 받아 애굽으로 내려가서, 정착을 하고 살아갈 때에는, 애굽의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죽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등장해서부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혜택은커녕, 이제 그들의 노예로 전락하여, 고역을 하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만 했던 고역은 무엇이었습니까? 고대의 군주들도,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잡아다가, 강제 중노동을 시켜서, 피라밋을 건축하게 하거나, 신전이나 왕궁이나 운하를 만들도록 하였습니다. 이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애굽은,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강제 중노동을 시킨 것입니다(출1:11). 국고성은, 주로 군인들이 쓸 양식이나 무기들을 저장해 두는, 일종의 거대한 창고입니다. 이런 국고성을 흙벽돌을 만들어 건축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 뿐만 아니라, 농사의 여러 가지 일들도 시켰다고 했습니다(출1:14). 이것은 단순한 농사일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지으려면 관계용수를 끌어와야 하기 때문에, 수로를 만들고 댐을 만드는 작업까지 동원이 되어, 중노동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 같은 노예와 같은 중노동의 생활을, 이들은 수십 년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그 고된 노동으로 인하여 얼마나 지쳐있었겠습니까? 23절에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이, 두 번이나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중노동으로 인한 고통뿐만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자식을 마음대로 낳고 기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의 왕이, 이스라엘의 번성을 시기하여, 남아들이 태어나면 죽이고, 여자아이들만 살리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혼한 모든 젊은이들에게는, 마음이 불안했던 것이고, 혹시 남자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자기 새끼를 강물에 던져 죽여야 하기 때문에, 그 고통은 세상에서 당할 수 있는 고통 중의 최고의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탄식하고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이, 이 끝없는 고통의 노역이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고된 노동으로 인하여, 속박으로 인하여, 멍에로 인하여 그들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기도는 한숨과 애끓는 소리로 탄원하는 것입니다. 탄식하며 울부짖는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는 극단적인 곤고함을 면하기 위한, 그들의 마지막 수단이었습니다. 칼빈도, 이 기도는 이스라엘이 사용하였던 세상적인 모든 수단들이 소용없다는 것이 드러나, 이제는 아무 변화도 있을 수 없다는, 절망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이 절망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심한 고통, 그 절망적 상황 속에서 탄식하는 자의 소리를, 하나님이 들어주셨습니다.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이 말은, ‘그들의 외침이 하나님께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 소리가, 마치 향이나 연기처럼 위로 피어 올라갔다는 뜻인데, 백성들의 부르짖음이, 기도가 되어 위로 올라가, 하나님께 닿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의 탄식을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간구를 외면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특히 당신의 백성들이 심한 고통과 괴로움과 낙심 중에 빠져서, 그 가운데서도, 탄식하며 울부짖는 백성들의 작은 신음을 외면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시도 때도 없이 많은 고난을 당하였는데, 그럴 때 그는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22:1-2에서,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심한 고통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시편 118:5에서는,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도 동일한 고난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분명 다윗은 인생의 고난의 잔이 넘칠 때,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여, 응답 받았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왕으로서 모든 처방을 다 써 보았지만, 효험이 없었습니다. 선지자도 와서, 이제 죽고 살지 못한다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부르짖으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 그 눈물의 기도를 들으사, 그의 생명을 15년 동안, 더 연장 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처한 삶의 환경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소망도 없고, 매일매일 고통과 괴로움의 연속이고, 탄식소리가 절로 나는 환경 속에 있습니까? 아니면 다윗처럼 많은 환란과 고통에 시달리면서 마치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람처럼 절망의 늪에 빠져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히스기야가 처한 환경처럼, 죽고 살지 못한다는 절대 절명의 위기 가운데 있습니까?

 

이 정도는 아니라할지라도, 삶의 이런 저런 문제로 인하여, 괴로움과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그럴 때, 크고 작은 고통은 기도하라는 신호인줄 알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탄식하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내 탄원의 소리를 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다음 구절을 보겠습니다. “2: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이 족장들과 세운 언약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 약속은 창세기에 여러 번 나타나 있는데,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너와 후손들에게 줄 것이며, 너를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겠고, 아울러 많은 사람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창12, 15). 더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땅, 민족, 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런 약속을 아브라함에게만 한 것이 아니라, 이삭에게도 하셨고(창26:24), 또한 야곱(창28:13, 35:12)에게도 동일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특히 창세기 15장에 나타난, 언약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직접 언약을 맺으시는 내용입니다.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다.’는 말씀은, 야곱의 후손들이 애굽에 내려가 그들을 섬길 것이라는 말씀이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라.’는 것은,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선민을, 400년 동안이나 고역으로 괴롭힐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애굽을 치실 때에, 너의 후손들은 큰 재물을 얻어서, 나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 언약을, 잊지 않고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세운 언약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기억하셨다가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적어도 BC 2000년 즈음에 아브라함과 약속 하신 것을, BC 1500년 즈음에, 적어도 5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그 언약을 기억하셨다가, 이제 실천에 옮기기로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세월이 지날수록 망각하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한 아브라함을 기억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제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1장에 보면, 하나님이 오늘날의 성도들과 맺을, 새 언약에 관해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새롭게 맺는 새 언약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 같지 아니하다고 하시면서, 새 언약은 나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는 그분의 백성이라’는 것인데, 이것을 우리의 마음판에 새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죄악 된 우리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었고, 우리는 날마다 그분이 길러주시는 양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연약하여 죄를 짓고, 삐뚫은 길로 간다할지라도, 일시적인 방황이지, 절대로 망할 수 없음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연약한 우리라도 끝까지 성령으로 견인해 가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들이고,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언약을 기억하사, 우리를 이끌어 가시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그 언약을 기억하며 확신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비한 것을 구하지 말고, 이적을 따라 가지도 말고, 그렇다고 세속에 물들지도 말고, 이 언약을 붙잡고 가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구절이 25절인데, 거기에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로 되어 있습니다.

 

3.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들 가운데 이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사,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백성을 독수리가 새끼를 돌보듯, 품에 안아 돌보아 주십니다.

 

성경 출애굽기 6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4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이제 구원자 여호와께서 언약한 대로, 너희를 애굽의 무거운 짐 밑에서 빼내서,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저서, 편 팔과 능력으로 너희를 속량하여, 내가 너의 조상들에게 주기로 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지도자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고통과 억압의 장소 애굽에서 이끌어 내서, 조상들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을 향해, 출발하게 됩니다.

 

감격 중에 그들은 출애굽 하여, 광야 40년을 거치고, 마침내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을 정복하고, 12지파가 그 땅을 분배 받고,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땅과 민족과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결론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스러운 기도를 들으십니다.

 

건강이 여의치 못하여, 죽음의 문턱에서 탄식하며 절규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억울한 일로 인하여 손해를 보고,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사업을 하는 데 잘되지 않고, 혹은 폭삭 망해서, 땅바닥에 주저 않아 울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부부 사이의 관계가 깨져서, 살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한 갈등 속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회사원들과 사이가 안 좋아서, 더 이상 회사를 다녀야 할지 그만 두어야 할지, 혹은 직장을 잃고 살기가 막막한 사람은 없습니까?

 

심각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 직전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하나님 앞에 고통 중에도 기도하십시요. 하나님은 고난 중에 기도하는 것을 다 듣고 계십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와 맺은 언약을 지금도 기억하고 계십니다. 언약을 절대로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셨다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환경 때문에 낙심하거나 원망불평하지 마십시오. 약속을 믿으십시오. 그것을 흔들림 없이 굳게 붙드십시오.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시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며 사십시오.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보배롭고 존귀한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어느 교수님이 수업을 하다가, 학생들 앞에서 10만원 짜리 수표를 들고, 이것 갖고 싶은 사람 손들라고 하니까 전부 손을 들더랍니다. 이제는 그 수표를 구겨서 땅에 던져서, 발로 밟고 침을 뱉고는, 그래도 이 수표를 가질 사람? 했더니 그래도 다 손을 들더랍니다. 그 교수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은, 이 수표처럼, 비록 내 인생이 구겨지고 짓밟히고, 침 뱉음을 당하였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가치가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고, 나는 그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언약을, 굳게 붙들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약속대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곤고함을,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다(시86:5, 15, 145:8, 애3:22, 히8:12).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와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우리를 붙들어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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