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히브리어로 ‘쉠’, 헬라어로 ‘오노마’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사물의 명칭’, ‘그 사람의 사역’, ‘그 사람에 대한 평판’ 그리고 ‘존재자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완용(李完用, 1858년-1926년)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듭니까? 그는 대한제국의 외교관이자, 정치가이며 관료였습니다. 주미 공사를 역임하기도 했고, 처음에는 친러파 사람이었으나, 러일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확정되자 친일파로 변신했습니다. 이때부터 철저히 일본 편이 된 것입니다. 어전회의에서 고종을 협박해서 을사조약을 체결케 함으로써,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 외교권 박탈을 도왔으며, 1907년에는 고종에게 퇴위를 강요하였고, 정미 7조약에 서명하여 행정권을 일본 제국에 넘겼습니다. 1909년에는 독단으로 기유각서를 교환, 대한제국의 사법권마저 일본 제국에 넘겼으며, 1910년에는 최종적으로 한일 병합 조약을 체결하여, 우리나라의 주권을 완전히 일본에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이완용은 일제에 적극 협력한 대가로 조선귀족 백작 작위를 받았고, 1919년에는 후작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3·1 운동 당시에는, 독립 투쟁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경고문을 3차례에 걸쳐 발표하면서, 만세 운동이 “불순 세력의 선동에 의한, 무지한 백성들의 허망한 경거망동일 뿐이다.”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완용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매국노’라고 말하고, 평판이 부정적이고 안 좋은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결국 이완용이라는 이름은, 그 사람이 한 일이나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을 포함하여, 그 사람 존재자체를 말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이정현이라고 한 번 쳐 보셨습니까? 그러면 ‘섹시하고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라고 나옵니다. 요즈음에는 ‘원조 테크노 여전사’라고 나오기도 합니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닌데 하고 인터넷 검색창을 아래로 내리면, 이번에는 ‘왕의 남자 제19대 국회의원 이정현’이 나옵니다. 이 사람도 내가 찾는 사람이 아닌데, 계속해서 내리다 보면 저 밑에, ‘소망교회 담임 목사 이정현’이라고 나옵니다. ‘여러 책의 저자이고, 주기도문을 새롭게 번역한 사람이고, 대학교수...’ 저의 이름도 단순한 이름과, 내가 한 일과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판을 말해주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라는 존재자체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예수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 ‘그 이름’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역시 여기에서도 이름은 네 가지 의미로 사용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라고 할 때, 단순한 그 이름과 그분이 하신 여러 가지 사역과, 그분에 대한 평판과, 아울러 그분 존재자체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과 우리들과는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단순히 깊은 연관 정도가 아니라, 매우 중요한 관계로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름과 우리 사이에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보고, 이런 관계 속에 있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죄에서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구원을 받는 길은 이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21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예수님을 영접한다, 믿는다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말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는 것은, 결국 같은 뜻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쳤을 때,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가운데 세워 놓고,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성령 충만하여,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된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강건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베드로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no other name. 다른 이름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름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여러 종교 중의 하나가아니라, 유일한 종교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기 때문에, 그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가 유일한 종교이며,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인정하지 않고,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불교에도 구원이 있고 이슬람에도 구원이 있고, 흰두교에도 구원이 있고, 심지어 샤마니즘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산이 하나 있으면 그 정상은 하나인데 그 정상이 하나님, 또는 천국이고, 땅 아래서 산 꼭데기까지 올라가는 길은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각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교의 석가모니를 통하든, 이슬람의 모하멧을 통하든, 기독교의 예수를 통하든, 흰두교의 아바타를 통하든, 샤마니즘의 여러 정령들을 통하든 도달하게 되는 것은, 하늘 꼭데기 하나님,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종교 다원주의자들의 주장은, 전혀 일리가 없습니다. 성령으로 영감 된 이 책에서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하셨고,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그분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고, 하나님 아버지께 갈 수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고로 그 이름과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관계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 천사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름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니,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2.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그의 제자들에게 마지막 지상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28:19).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주님의 대 전도, 대 선교 명령입니다. 그리고 제자가 된 그 사람들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으라는 말이 아니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구원 받았다는 외적인 표로서 세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구원의 조건이 안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구원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외적인 표로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속하여 있다는 하나의 표인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는 반드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받는 것입니다. 여기에 세례의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물의 양이나 질에 의해서 세례가 효력이 있는 것 아닙니다. 집례자의 경건 유무에 따라서, 세례의 효력이 있고 없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받은 세례가 효력이 있는 것은,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예루살렘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그들을 향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행2:38).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성령은 우리 안에서, 계속하여 우리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받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인침을 받았으니, 이것 또한 무한히 감사해야 할 사항인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 받게 된 것을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만병을 고쳐주셨고, 더러운 귀신들린자도 낫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에게도 이 권세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막 16:17). 주님으로부터 이 권세를 받은 제자들은, 나아가서 실제로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인간과 귀신들과 주님 중에서, 누가 가장 권세와 권능이 있겠습니까? 아이들 말로 누가 제일 쎄겠습니까? 인간보다 귀신이 쎄고요, 귀신보다 주님이 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 귀신을 이기려고 하면 안 되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이름의 권세로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귀신은 타락한 천사이며 영물이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능력을 힘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권세를 주님이 그의 제자들과, 오늘 믿는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둘씩 둘씩 짝지어서, 동네마다 다니며 전도하라고 제자들을 보냈습니다. 이들이 전도를 마치고 돌아와서 기뻐하면서 보고를 하는데,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 10:17)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전도하면서 귀신들린 사람이 있으면, 주의 이름으로 그 귀신을 쫓아냈더니, 귀신들이 떨면서 쫓겨나가더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분명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라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전도 보고를 받으신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 10:20). 주의 이름 앞에 귀신들이 쫓겨나가는 것도 참으로 기쁜 일이지만, 정말 기뻐해야 할 이유는,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된 것입니다. 주님은 전도의 참 기쁨이, 무엇에 기인하는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전도의 기쁨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는 것으로부터 오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근본적인 것은, 내가 구원 받은 것 때문에 기뻐하고, 그 감격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제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세를 부여 받았습니다. 이 권세로 실제로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같은 경우에는, 주의 이름으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일으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는 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는데, 성전 문에 앉아 있던 오래된 앉은뱅이가, 지나가던 사도들에게 무엇인가 구합니다. 이때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걷게 되었고, 뛰면서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이를 낫게 한 것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이, 이를 걷게 했고 뛰며 찬양하게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바울이 3차 에베소 지역에서 전도를 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몇 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안수하여 기도해 주었더니, 성령이 임하여 예언도 하고 방언도 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3개월 동안 회당을 다니며,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두란노 서원에서는 2년 동안이나,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고 전파하심으로, 아시아 사람으로써는 복음을 듣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바울의 손을 통하여, 놀라운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심지어는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환자들 위에 놓으면, 병도 떠나가고 악귀도 떠나갔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2년 반 동안 바울 한 사람의 전도를 통하여, 에베소라는 도시에는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가 되었고, 주님의 이름을 통해 귀신이 쫓겨나는 역사와, 병자들이 벌떡벌떡 일어나는 역사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도시 전체에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 난 것입니다.
이랬을 때, 그 지역에서 점하는 마술사들이, 바울을 본 받아서 귀신들린자들에게 가서,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귀신들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짓을 하다가,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는 누구냐’라고 하며, 오히려 귀신이 덥쳐서 그들의 몸이 상하고, 벗은 몸으로 도망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신실한 제자들에게 주어진 주의 이름에는, 막강한 권세가 있는 이름이지만, 그 이름을 믿지도 않으면서 단지 상술적으로 이용만 하려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해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의 이름은 불신자들이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서 악하게 사용할 이름이 아닌 것입니다.
야고보는 5장에서,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 이름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능력의 그 이름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 이름입니다. 가장 높은 그 이름입니다. 우리에게 그 이름의 권세를 주셨음으로, 우리도 예수 이름으로 원수를 이기며, 예수 이름으로 연약한 자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능력의 그 이름으로, 최유아 집사님이 치료되기를 바랍니다.
, 한영경 사모님이 치료되기를 바랍니다.
, 그 외의 모든 환우들이 깨끗이 치료되기를 바랍니다.
4.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여 응답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기도하는 일에도 우리의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무슨 말인가 하며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에도 중보자가 필요한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으로는 기도할 수 없고, 기도한다하더라도 하나님께 상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이단들 중 하나인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도 자기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합니다. 자기가 중보자로 자처하고 나선 것인데, 그 이름으로 기도해 봐도 하나님의 응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또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요 16:26).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이전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강림이후에는, 이제 주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외 여러 성구는, 주의 이름으로 구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13).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4).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 16:23).
주님이 친히 여러 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고, 주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간구하여 응답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응답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기도를 많이 했거나 기도를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도응답을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을 믿고 기도하면 응답이 됩니다.
죄 때문에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주의 이름으로 지정의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의 응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끊어야 되는데 아직 끊지 못한 술 담배 노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이 끊게 해 주심으로, 완전히 끊어버리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병 때문에 좌절가운데 있는 분들이 있다면,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구하여, 하나님의 치료의 광선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물질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늘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청하여, 야곱을 창대케 하신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가정의 문제가 있다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함으로, 풀려지고 해결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남편과 아내의 문제, 자녀들의 미래의 문제가 있다면, 엎드려 주의 이름으로 기도함으로, 가장 적당한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다 해결되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받았고,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그 이름의 권세로 원수를 이기며, 그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 받으며 살아갑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예수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살았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어떤 고난과 시련과 핍박을 당해도, 그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오히려 기뻐하며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이 고달파도 고통스러워도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살았던 것입니다.
주님이 바울을 부르실 때,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처럼 바울은 주의 이름을 많은 사람들, 특히 이방인들,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바울은 평생 동안, ‘주의 이름을 높이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 바울이 골로새서 3장 17절에서,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권면의 말씀을 따라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의 말씀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땅히 믿고 실천해야 할, 권위 있는 말씀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9).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헌신하고 충성하는 사람에게, 주님이 여러 배로 보상해 주시고, 그런 자에게 영생을 상속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짧은 한 구절 말씀이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요구와, 거기에 따른 엄청난 은혜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주의 말씀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고, 주의 이름의 권세를 받은 소망교회 교우들은, 이제 이후로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살려고 할 때, 어려움과 불이익과 시련과 고통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 성도들을 본 받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 잃지 말고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서, 현세 100배의 복과, 미래 영생의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