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목사설교

  • 예배 · 설교 >
  • 이정현목사설교
은혜 입은 나아만 (열왕기하 5:1-19)
이정현 목사 2015-07-05 추천 0 댓글 0 조회 392

중학교 1학년인 시골 소년이 처음으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3년 후 고등학교 때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신학대학에 들어가서 4년 동안 신학 수업을 받고, 이어서 신학대학원에서 3년 동안 목회자 수업을 받았고, 일반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꼬마는 성장하여 목사 안수도 받았고, 신학대학원의 교수도 되었습니다. 교회도 나름대로 성장해 왔고, 또한 학교에서도 인정을 받아 교학처장과 부총장을 역임하였고, 지금은 정식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꼬마가 28살 때 예쁘고 젊은 아가씨를 만나, 결혼을 해서 남매를 낳았는데, 큰 딸은 지금 모 고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아들은 조금 있으면 군 제대를 해서 복학을 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기독교 교육학을 전공한 그의 부인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행복한 가정이고, 각자 교회와 사회에서 주어진 일들을 잘 감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으로부터 42년 전, 처음으로 교회를 찾아 나갔던 그 시골소년이 바로 저입니다. 제 자랑을 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 아닙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발로 교회를 찾아 나갔지만, 하나님의 섭리로 구원을 받게 되었고, 목사가 되어서 이렇게 좋은 교회에서 목회할 수 있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3년 동안 계속하여 신학공부를 하여 학위를 받고, 신학대학원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정을 이루어 가족들과 함께 오늘에 이르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어느 것 하나 헤아려보아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의 구석구석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은, 이방인 군사 한 명을 소개하겠습니다. 그 이름은 나아만입니다. 그에 대한 소개가 오늘 본문 1절에 나타납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나아만은 어떤 사람입니까? 아람나라의 군대 장관이었다고 했는데, 오늘날로 말하면 국방부장관급인 것 같습니다. 한 나라의 국방의 일들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라고 했습니다. 왕에게 대단한 신임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왕으로부터 크고 존귀한 자로 여김을 받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아만이 전에 아람 나라를 구원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적국의 침략으로 아람나라가 큰 위기에 처해 있었을 때, 나아만이 그 위기 가운데 있던 나라를 구하였던 것 같습니다. 일등공신이었던 것입니다. 마치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위기 가운데서 건지신 이순신 장군처럼, 아람나라의 일등공신이 바로 나아만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아만 장군은 그의 주인인 아람 왕에게, 크고 존귀한 자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큰 용사라고 했습니다. 이는 전쟁의 전략에 뛰어나고 용맹한 장수였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훌륭한 장수로써, 아람 나라를 위기 가운데서 건짐으로, 왕의 총애를 받던 군대 장관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1절 끝 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나병환자였던 것이 그에게 큰 문제였습니다. 다른 것은 다 갖추었는데 나병이 문제였습니다. 다른 면에서는 다 성공을 하고 출세를 했는데, 문제는 건강이었습니다. 부귀영화를 한 몸에 다 누리고 있는데, 한 가지 문제가 건강악화였습니다.

 

나병은 죽을  병이고,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저주스러운 병이고,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과 같이 살 수 없는 병입니다. 피부에서 고름이 나고 감각이 없어지고, 손발이 뭉글어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병입니다. 아람왕의 군대 장관이었던 나아만이 이 병에 걸린 것입니다.

 

아람 나라는 당시 세계 최강국의 나라였기 때문에, 나아만이 이 병을 고치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을 것입니다. 의술과 약과 민간요법까지 총동원해서, 자기의 병을 고쳐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가만히 보면, 모든 것을 다 갖춘 것 같은데, 한 가지가 부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은 있는데 지식이 없는 사람이 있고, 돈은 있는데 건강이 없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건강은 있는데 돈이 없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지혜와 지식은 없는데, 돈이 많은 사람이 있고 또한 건강한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있을 때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들보다 좀 더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그것으로 열심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데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전도하는데 선교하는데 장학하는데 구제하는데 이웃을 섬기는데 건축하는데 많이 쓰십시오. 더 욕심 부리지 말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좀 더 벌면, 봉사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좀 더 벌어도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돈 벌어서 남 주나’라는 말처럼, 진짜 부자는 남 주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입니다.

 

또한 남들보다 지식이 더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지식으로, 남을 유익하게 하는데 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인 지식가지고, 돈 벌이만 하려고 하거나 교만하다면, 결코 그 지식은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공부해서 남 주나’라는 말처럼, 진짜 지식인은 남 주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들보다 더 건강하다면, 건강할 때 더 하나님 앞에 예배를 잘 드리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기도하는데 건강을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지 못하거나 늙으면, 가정생활 사회생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건강할 때 있는 힘으로, 예배생활, 기도생활, 봉사생활, 가정생활 잘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있는 것을 가지고, 그것을 사용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나아만의 부족한 한 가지를 채워주신 하나님이, 그것까지도 채워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아만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문둥병자였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참 신으로 알 수 있게 되었고, 그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나병을 고침 받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나아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을까요?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봄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먼저, 나아만은 자기의 문제가 은혜 받는 통로였습니다. 자기가 안고 있었던 문둥병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나아만은 왕으로부터 크고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 자였고, 큰 용사이며, 일등공신이고, 군대 장관이었던,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기 몸에 나병이 걸리지 않았더라면 결코 하나님을 찾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약함이 어린 계집 종의 말을 듣게 되었고, 그의 나병이 왕에게 호소하게 되었고, 그 문제가 이스라엘의 선지자를 찾게 되었고, 마침내 그의 문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자기의 한 가지 문제, 자기의 연약함과 부족한 한 가지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하면서, 자기와 연관시켜서 이런 말을 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부활체를 보이셨는데, 제자들에게, 500여 형제에게,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고,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던 자였는데, 나 같은 자에게도 주님이 밝은 빛으로 나타나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주님을 만나서 구원 받고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처럼 주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아시아와 유럽 일대를 다니며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몸에 있던 가시, 즉 육신의 연약함이 자기를 늘 괴롭히며, 선교의 길을 가로막는 것 같이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엎드려 하나님께 세 번이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육체의 가시를 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이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바울은 자기 안에 육체적 연약함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교만하지 않고, 끝까지 끝까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의 평생을 통해 보면, 그의 육체적 약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통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우리에게 어렵고 힘든 문제가 있습니까? 건강상의 문제가 있습니까?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는 난치병으로 고생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아니면 경제적으로 힘든 분이 있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얽혀있는 인간관계로 괴로워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사업의 문제로, 직장 문제로, 진학 문제로, 결혼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개인과 가정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있으면 근심걱정하고 좌절, 낙심, 포기하기가 쉽지만, 여러분은 나의 이런 문제들과 고통스러운 난제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요 통로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나아만과 바울이 자기들의 난제, 자기들의 괴로움과 고통, 자기들의 절망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통로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가진 문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통로가 되려면,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토해 놓는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떧으며,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를 토설해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다음으로, 나아만이 어떻게 은혜를 입을 수 있었는가? 나아만에게 어린 여종의 말이, 은혜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옛날에 나아만이, 이스라엘에게서 어린 여자 아이를 사로잡아 와서, 자기 부인의 몸종으로 주었습니다. 하루는 이 계집아이가 자기 안주인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3). 이 어린 소녀가, ‘우리 주인님이 이스라엘의 선지자에게 찾아가면, 나병을 고칠 것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이 말은, 그의 안주인에게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안주인이 즉시로 자기 남편인 나아만에게 이 말을 전했을 것입니다. 이 말은 나아만에게 더 기쁜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평소 같으면 이 계집아이의 말에 신경이나 썼겠습니까? 어떤 말을 했다 하더라도 듣지 않고, 무시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자기남편, 나아만의 나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하니까, 이들에게는 이 아이의 짧은 말 한마디가, 기쁜 소식, 곧 복음이었습니다.  

 

나아만은 이 어린 아이의 말을 그대로 믿고, 왕에게 찾아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한데, 왕이여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람 왕이 군대장관의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 왕에게 친서를 써서 보냅니다. 이 친서에는,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라는 말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보아서, 아람 왕이 나아만을 얼마나 아끼고 존귀한 자로 인정하는지, 잘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아만은 곧장 많은 종들을 대동하고,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남쪽 이스라엘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나아만이 혼자 가지 않고 종들을 데려가는 것도 대단하다고 보고, 더더구나 은 10달란트와 금 6천개와, 의복 10벌을 예물로 가져갔다는 것을 보더라도, 그가 아람 나라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고, 어느 정도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지금 어린 계집종의 말을 듣고, 누가누가 움직이고, 어떻게, 누구에게로 움직이는지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의 말 한마디를 듣고, 나아만의 부인이 움직입니다. 나아만이 움직입니다. 한 나라의 왕까지 움직이게 됩니다. 그리고 왕은 친서까지 쓰고, 나아만은 종들과 많은 예물까지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준비해서, 이스라엘의 선지자에게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나아만이 은혜를 입게 된 것은, 어린 계집아이의 말이 통로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복된 소식인 복음, 진리의 말씀, 기쁜 소식을 잘 듣는 것이 중요하며, 이 말씀을 통하여 은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 받고 복 받는 것은, 이 말씀을 떠나서는 불가능합니다. 복과 말씀, 은혜와 말씀은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3년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에 귀를 귀울이고 잘들은 사람은 은혜와 복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들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누가 말씀을 전하든지 간에, 그 말씀이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사모하고 갈급한 마음으로 들어야 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주의하고 집중해서, 듣고 또 들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언제까지 가야, 다윗처럼 주의 말씀이 내 입에 꿀 송이보다 더 달다고 고백할 수 있겠으며, 내 귀에 사랑의 속삭임처럼 들리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어린 아이의 말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외면하면 안 됩니다. 예)부자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있었답니다. 이들이 11조만 내도 교회가 재정이 남아도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회가 모여서 결정을 했답니다. 우리교회의 재정이 풍성하니까, 앞으로 몇 개월 동안은 11조를 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동부의 한 아이가 장로님들에게 찾아가서, 구약성경 말라기 3장을 펴 놓고 읽어 주면서, 성경은 11조를 하라고 했지 않느냐고 따졌다고 합니다.

 

예)오래 동안 신앙생활을 한 여 집사님이 구역예배를 갔습니다. 이 집사님은 구역예배를 거의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구역 예배에 참여하는 한 초등학생이, 그 여 집사님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답니다. ‘집사님은 구역 예배는 나오면서, 주일 예배는 왜 안 나오세요. 성경에 주일을 거룩하게 잘 지키라고 했지 않습니까?’

 

어린 아이의 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의 말씀이라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어린아이의 말을 듣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아만은 순종함으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의 순종이 은혜의 통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순종이 은혜의 통로인 것입니다.

 

나아만은 왕의 친서를 들고, 많은 종들과 많은 제물을 싸들고 이스라엘 왕에게 찾아갔습니다. 아람 왕의 친서를 읽은 이스라엘 왕은 당황하였고, 이것으로 아람 왕이 전쟁의 빌미를 삼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여, 옷을 찢으며 불안 해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선지자 엘리사는, 왕에게 그 사람을 자기에게 보내어 달라고 말합니다. 나아만은 이제 드디어, 말로만 들었던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를 만나러 갔습니다.

 

나아만이 엘리사의 집 문에 도착을 했는데, 엘리사는 나와서 나아만 장군을 영접하지도 않고, 자기 종을 보내어서 이렇게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10). 분위기로 봐서는, 이스라엘의 왕은 대신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를 영접해 준 것 같은데, 아니 일개 선지자는 나와 보지도 않고, 자기 종을 시켜서 이런 명령을 했으니, 나아만은 기분이 확 상하였던 것 같습니다. 자기는 그래도 대 아람나라의 군대 장관인데, 자기를 이렇게 냉대할 수가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상한 것입니다. 자기의 감정이 저 낭떠러지기로 곤두박질 친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그가 무엇을 기대했는지, 다음의 말씀에서 잘 엿볼 수 있습니다.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여기 말씀에서 나아만은, ‘노하여 물러갔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가 이처럼 분노를 한 것입니다. 앞에서는 아람 나라의 제2인자인 자기를 잘 영접해 주지 않는다고 분노했고, 이번에는 선지자가 장엄한 종교행사와 더불어 안수하여 고칠 것을 기대했는데,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것이, 나병을 고칠 방법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분노하며, 우리나라에는 이 요단강보다 더 깨끗한 강물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하며, 엘리사의 집 문을 떠나가려고 합니다. 만약 여기서 나아만이 감정이 상하고 상한채로 떠나갔다면, 그는 은혜를 못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존심, 교만, 자기 생각을 죽이지 않으면, 은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자기의 마음은 상하였지만, 종의 만류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러 명의 종들이 나와서 만류를 한 것입니다. 선지자가 더 큰 일을 시켜도 할 판인데, 목욕하고 깨끗하라고 했으니,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선지자가 환자에게 말한 것은 너무나 쉬운 치료 방법이었습니다. 만약 선지자가 나아만에게, 10일을 굶으라, 돈을 더 많이 가져오라, 군사 100명을 나에게 달라, 병거 10승을 달라고 해도, 나아만은 했을 것입니다. 자기 병이 낫는다는데 왜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선지자가 말한 것은 너무나 쉽다는 것입니다. 요단강 물에 가서 7번 몸을 씻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주인님 고정하시고 목욕하고 가십시오.’ 

 

이 말에 나아만이 자기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종들의 말대로 하기로 합니다.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하나님이 순종한 나아만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하는 것은, 무엇으로부터 나아만의 문둥병이 낫는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요단강 강물이 효력을 발하였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순종하였기 때문에, 거기에서 효험이 난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나아만이, 요단강 물보다 더 깨끗한 다른 강물에 가서 몸을 씻었다면 나을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여러분 만약에 나아만이 요단강물에 들어가서, 6번까지만 씻었다면 깨끗해 질 수가 있었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의 말대로 그대로 해야만 합니다. 더하거나 빼서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그대로 따르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엘리사가 말은 했지만, 실제로 치료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치료자가 되십니다. 나아만은 문둥병이 나아서, 어린아이의 살 같이 깨끗이 회복되었습니다. 어른이기 때문에, 자기 나이의 피부보다 훨씬 더 좋아진, 어린 아이처럼 부드럽고 탱탱한 피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순종이 나은 결과이고,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고 또한 많은 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구약의 모세와 여호수아와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말씀하신 그대로 실천함으로, 평생 동안 큰 은혜를 받았던 것입니다.

 

신약의 베드로도 순종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하루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새벽에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깊은 대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베드로는 순종하기가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순종하였습니다. ‘내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가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렸더니 심히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 그물이 찢어질 정도록 잡혀서, 두 배에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순종했더니 나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과 만족을 주게 되었습니다. 내가 순종했더니,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내가 그물을 내렸더니, 하나님이 풍성히 거두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내 기분과 경험과 생각에 안 맞고, 감정이 상하여 화가 나는 말씀이라 할지라도, 나아만과 베드로처럼, 말씀을 가감 없이 그대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소망교회 성도들은, 신호등을 잘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운전을 하면서 빨간 불이면 서셔야 합니다. 파란 불이면 가셔야 합니다. 주황색 불이면 주의해야 합니다. 가지 말라고 하는데 가면 안 되고요, 주의하라고 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하면 큰 일 납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의 신호등도 있으니, 이것을 더 잘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해야만 합니다. 성경에 주의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취급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전 인생도, 이 성경의 신호등에 잘 맞추어 순종하여 살 때, 거기에 따른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나아만은 자기의 나병이, 오히려 은혜 받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나아만에게 어린 아이의 말은, 은혜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나아만의 순종이, 은혜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아만의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180도 바뀌었습니다. 나아만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고 나서, 먼 거리를 다시 달려와서 엘리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5...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온 천하에 여호와 한분만이 참 신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아만이 가지고 온 예물을 선지자에게 드렸지만 받지 않자, 이런 말을 합니다.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 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나에게 흙을 조금 주시면, 본국으로 돌아가서 그것으로 제단을 만들어서, 여호와 하나님께만 희생 제사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만 경배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은혜 입은 자의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나아만처럼, 우리의 고통과 문제를, 은혜 받는 통로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나아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아만처럼, 가감 없이 순종함으로, 은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인생의 연약함 중에 가지는 소망 (시편 39:4-7) 운영자 2017.02.14 0 905
다음글 앞날에 좋은 일이 많기를.... 유기성 2017.02.10 1 1876

15010 경기 시흥시 배곧4로 42 (정왕동, 소망교회) 소망교회 TEL : 031-431-4817 지도보기

Copyright © 소망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80
  • Total365,599
  • rss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