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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순종한 아브라함 (히브리서 11:8-19)
이정현 목사 2015-07-19 추천 0 댓글 0 조회 651

경기도에 사는 1000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게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나라 인물 중에 누구를 가장 존경합니까?’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이 과연 누구일까요? 2위가 한글을 만드시고 선정을 펼치신 조선의 제4대 왕이신 세종대왕입니다.

 

그러면 1위는 누구이겠습니까? 신사임당이었는데, 무려 97%나 되었습니다. (만 원 권을 보이며) 이 사람이 2위이고, (5만 원 권을 보이며) 이 사람이 1위입니다. 이것은 사실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국민들은 특정 인물보다 큰돈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풍자적으로 만들어 본 것입니다. (천원의 돈을 보이며)우리는 다 퇴계 이황보다 (5천원 권을 보이며)율곡 이이를 더 좋아하고, 율곡이이보다 세종대왕을 더 좋아하고, 세종대왕보다 신사임당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기 민족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뽑으라면 누구를 뽑겠습니까? 아마도 아브라함을 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히브리인의 조상이기 때문이고, 또한 믿음의 조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의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영웅시 되고 존경을 받는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오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존경하는 아브라함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들이 아브라함을 그렇게 존경할 수밖에 없는, 그의 ‘믿음의 순종’에 초점을 맞추어서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에 관하여 간단하게 설명을 합니다. 분명하게 이름이 거론된 사람만도 16명이나 되는데,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았다고 표현합니다. 믿음으로 예배를 드린 아벨로부터 시작하여, 믿음으로 사역을 성공적으로 감당한 사무엘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믿음으로 살았다고 설명합니다.

 

그 중에서 아브라함에 관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좀 더 길게 말씀하고 있고, 그의 믿음에 관하여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처럼 아브라함의 믿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했고, 더 철저했고, 더 아름다웠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봅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고향을 떠나서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그 명령을 따라 그곳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의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당시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곳은 갈데아 우르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이방 지역이었습니다. 오히려 우상숭배로 가득한 죄악의 소굴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자기 아버지가 우상을 만들어 파는 직업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여기에 물들어 돈벌이를 위해, 우상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본인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우상숭배를 장려했던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서,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나, 계시가 전혀 없었지만,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더더구나 고향을 떠나라, 부모와 일가친척을 떠나라는 명령에 순종하기란, 어느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튼튼한 기반을 갖추었고, 적지 않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포기하고 떠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더구나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고 떠난다는 것은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명령하신 분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무턱 데고 그 명령에 따른다는 것은 더 어려운 것입니다. 아무튼 이 명령에 순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아브라함은 떠나라는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떠나라.’는 명령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와 여러분들은,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순종할 자세가 되어 있습니까? 아직도 교회를 다니면서 의외로 술을 끊지 못한 분들이 많이 있음을 봅니다. 술은 자신을 망치게 합니다. 가정을 망치는 주범입니다. 신앙생활의 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실수하지 않을 정도로 마시는 것은 괜찮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밖에서는 안마시고, 집에 와서 마시고 자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빠질 수는 없으니까, 맥주 한잔 정도는 괜찮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사가 주는 술이라 거절할 수가 없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술은 백해무익하며,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상사보다 하나님의 명령인 ‘술 취하지 말라’는 말씀을 더 두려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술자리를 떠나시기 바랍니다. 아예 술과의 관계를 끊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두서너 명 만 모이면, 남의 험담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을 비판하고 욕하고 비방하고, 잘못을 드러내어 떠벌이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교회를 욕하고, 주의 종을 욕하고 비난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손가락을 보이며)남의 잘못 한 가지를 비판하면, 자기는 4가지로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남을 험담하는 자리는 떠나시기 바랍니다. 험담은 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기를 바랍니다.

 

이 외에도 죄악의 자리, 우상 숭배하는 자리, 노름하는 자리, 하나님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자리는 믿음으로 떠나시기를 바랍니다. 무익하고 못된 옛 습관들(죄악들을), 모두 떠나고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시는데도,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의 채찍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몽둥이를 들기 전에,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순종하여, 떠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갈 바를 선하게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복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고, 그를 창대케 해 주셨던 것처럼, 떠나라는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귀한 은혜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9-10절의 말씀에 근거하여,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거주하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성을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명히 가나안 땅을 약속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당시에 땅을 전혀 차지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리저리 이사를 다녀야만 했습니다. 때로는 도망을 다니기도 했고, 기근을 피해 다른 지역을 전전긍긍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땅에서, 마치 이방의 땅에 있는 것처럼 장막에 거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에서 토지를 사서 농사를 짓지도 않았고 집을 짓지도 않았고 건물을 건축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의 아들과 손자인, 이삭과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소유한 땅이라고는, 자기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아내를 장사지내기 위하여 막벨라 굴 하나를 산 것 뿐이었습니다(창23).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여기서 발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을’(행7:5) 믿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이기는 하지만, 그 땅에서 영원히 살 존재가 아님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말씀처럼 그들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바라다’(looking forward)라는 동사는, ‘성에 대한 기다림이 강렬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이 살았던 장막과 대조하여 사용된 말인데, 자기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대한 소망보다는, 영구적이고 안전하고 가장 평화로운 곳인 하나님의 성을 더 간절히 기다렸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계시록의 말씀대로(21:2) 그 성 즉, 새 예루살렘을 사모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평생 동안, 약속된 땅이지만 이방에 있는 것처럼 텐트에서 살면서, 저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을 강렬히 소망하며 살았다는 말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미래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현재를 열심히 살았던 것입니다.

 

세 번째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표현 한 것이, 11-12절에 나타납니다.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닌, 사라의 믿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성경 NIV에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로마서 4장에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여기서도 분명, 아브라함의 믿음을 얘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11-12절 말씀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사라는 가임 기간에도, 임신이 불가능했던 불임녀(석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의 나이가 90세이고, 아브라함이 100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아이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시니까, 아브라함은 아멘하고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라의 경수가 끊어지고 아브라함의 나이가 많아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어도,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여도,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한 때 아브라함이 늙은 종 엘리에셀이나, 첩의 아들 이스마엘을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던, 조급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믿음으로 기다립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이를 낳을 가능성도 줄어들겠지만, 그러나 그의 믿음만은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후, 25년 만에 아이를 낳게 됩니다.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된다고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예)하루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깜짝 놀라며, ‘나는 사내를 가까이 한 적이 없는데 어찌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천사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마리아가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마리아처럼 이런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된다고 하시면, 된다.’ 인간 편에서는 불가능하고 안 될 것 같아도, 하나님이 된다고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가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들을 붙들고 있어도, 하나님이 ‘나가라’ 하시면 출애굽 하는 것입니다. 홍해가 앞길을 막아도 하나님이 하시겠다면, 홍해도 갈라지는 것입니다. 목마르고 배고프면, 하나님이 반석에서 물도 주시고 하늘을 열어 만나를 주시고, 동풍을 불게 하여 메추라기도 몰아주시는 것입니다.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 죽을병도 낫게 하시고, 작은 것이 큰 것 되게 하시고, 직장과 결혼도 잘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걱정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된다면 되고, 하나님이 하시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역사에는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하였다는 내용입니다. 17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이삭은 아브라함이 25년 만에 얻은 아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아들을 통하여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자손을 번성케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을 모리아 산에 올라가서, 아들을 잡아 각을 떠서 불에 태워서, 나에게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육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아브라함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인하고 상의하지도 않고, 아침 일찍 아들과 두 종을 데리고 떠난 것입니다. 아브라함 일행은 3일 길을 걸어서, 하나님이 지시하신 모리아 산에 도착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리아 산 밑에 도착한 후, 아브라함이 두 종들에게 한 말입니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창22:5)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는 말씀인데, 영어성경에서는 We will worship and then we will come back to you로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했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들을 번제로 드리고 나면, 아브라함은 혼자서 하산하여 종들에게 돌아올 것인데, 어떻게 ‘우리’가 돌아온다고 한 것입니까? 여기에 아브라함의 대단한 믿음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이 부분을 오늘 히브리서 기자가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 산에서 아들을 번제로 드린다하더라도,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사, 나와함께 내려가게 하실 줄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었고, 이것 때문에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아들의 후손이 별과같이 많아진다는 하나님의 그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만약 그 아들이 이 산에서 죽고 만다면, 그 약속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죽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다시 살리셔야, 그 아들을 통해 약속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드리라면, 아들까지도 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하나님이 드리라면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도 내 것이 아니고, 내 자식들도 내 소유가아니라,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 내 자식들, 내 물질, 내 명예, 건강 달란트 그 어느 것 하나 내 것인 게 있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믿음으로 기꺼이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실 때, 나귀와 그 새끼를 기꺼이 내어준 주인처럼, 그리고 귀한 옥합을 주님을 위해 부어드린 그 여인과, 자신의 재산 전부를 드린 여인처럼 주를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드리면 하나님이 받으시고 인정하시며, 더 좋은 것으로 풍성히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을 때,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믿음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으실 성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믿음으로 약속의 자녀를 얻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자식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내가 아들을 죽인다하더라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줄로 믿는 믿음으로, 아들을 번제로 바쳤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 정말 존경할 만한 인물이며, 본받고 싶은 인물이지 않습니까? 세종대왕이나 신사임당보다 훨씬 더 존경이 가는 인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였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면, 또한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떠나라고 하실 때, 떠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좋은 것보다 더 좋은, 하늘나라 성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된다고 하시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바치라고 하시면, 믿음으로 바쳐서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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