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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브리서 3:1)
이정현 목사 2015-08-09 추천 0 댓글 0 조회 401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잘 찍으려면 두 가지를 잘해야 합니다. 첫째는 무엇을 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사진 속에 무엇을 집어넣고 무엇을 뺄 것인지를 잘 결정해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정말 좋은 작품인데, 뒷 배경으로 들어가지 말아할 것이 하나라도 들어가면, 그것의 작품성은 떨어지는 것입니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무엇을 뺄 것인가부터 먼저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초점을 잘 맞추어야 합니다. 앞에 있는 인물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아니면 뒤에 있는 저 아름다운 배경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앞의 것에 초점을 맞추면 뒤에 것이 희미해지고, 뒤에 것에 초점을 맞추면 앞의 인물이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만 신경을 써도, 어느 정도의 사진은 찍을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곧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사람이, 마치 초점을 잘 맞추는 것과 같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추면, 뒷배경이 희미해지지만, 반대로 예수에게 초점을 맞추지 못하면, 뒤의 아름다운 배경만 선명해 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를 깊이 생각하며 살 때, 세상의 것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반대로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지 않을 때는, 세상의 것들이 밝게, 선명하게 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히브리서 3장 1절에 나와 있는 이 말씀을 근거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좌해서 눈은 부릅뜨고, 귀와 마음을 활짝 열고 말씀을 들음으로 은혜가 되시기 바랍니다.    

 

먼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 말을 ‘너의 사상을 예수에게 고정시켜라.’는 뜻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여기서의 사상을 여러 가지 다른 말로 해석할 수 있는데, 말이나 태도나 행동이나 관점이나 그 외 모든 것을 이 사상이라는 말에 집어넣어서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 ‘너의 생각과 말과 행동과 관점과 모든 것을 예수에게 고정시켜라.’라는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목표지점, 삶의 타겟을 바꾸지 말고, 또는 흔들리지 말고, 오로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너의 시선을 그리스도 예수께 고정시키라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을 히브리서 12장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히 12:2-3). 여기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는 말씀이나, ‘죄인들의 거역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는 말씀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의 말씀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바울 사도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골로새서 3장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1-2). 여기에서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과 ‘위엣 것을 생각하라.’는 말은 의미상 같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위엣 것은 결국 하나님 우편에 앉아게신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사람들은, 땅의 것, 육신적인 것은 죽이고, 날마다 그리스도를 찾고 생각하며 살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 역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과 별 차이가 없는 말씀으로 볼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서,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는 높아진 마음들을 다 무너뜨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높아진(교만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므로 그 마음을 낮추시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 또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표류하거나 방황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선과 말과 행동을 예수께 고정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삶의 초점을 그리스도에게 맞추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뒷 백경의 아름다움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우리 눈앞에 세상의 아름다움만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Fix your eyes on Jesus.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이런 요구를 하신 것입니까? 누구보고 너의 생각을 예수께 고정시키라고 명령을 하신 것입니까? 그 해답이 짧지만 구체적이며 명확하게 상반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이 말은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있던 믿는 형제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너희가 지금 떨어져서 핍박 중에 살아가지만, 너희는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한 구절 한 구절에 상당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라는 말씀인데, 과거 초대교회 시대 때에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에로 부름을 받았고 사명에로의 부름을 받았고, 영원한 안식에로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하나님의 섭리가 없었다면, 하나님이 절대로 부르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 상한 갈대와 같았고 꺼져가는 심지와도 같았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았던 우리들이었고, 전에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얻지 못하던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로의 부름을 받게 되었고, 또한 사명에로의 부름을 받게 되었고, 또한 영원한 안식에로의 부르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비천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름 받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부름 받았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와 당시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던 믿는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름 받은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잘나고 못나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가지고 못가지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높고 낮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식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다 하나님의 부름 받은 한 식구입니다.

 

이 식구 개념, 이 가족 개념은 육신의 피로 맺은 관계보다, 더 돈독하고 사랑하고 찐한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가족은 피로 맺어졌지만,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어진 신 가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보통 가족은 죽으면 헤어지지만, 우리는 죽어도 헤어지지 않습니다. 영원토록 함께 천국에서 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적인 가족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가족인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가 된 우리, 교회 공동체가, 더 중요하며 더 가치가 있고 더 영원한 것입니다.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형제들아’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성도들’이라는 말과 ‘교회’라는 말로도 교환해서 쓸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성도들과 교회라는 말은, 서로 대등한 의미의 단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성도이고 또한 교회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누구에게 너의 눈을 예수께 고정시키라고 하느냐 하며는, 바로 믿는 성도들, 곧 교회를 향해서 이 같은 명령을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너희들의 눈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정시키라, 딴 데 정신 팔지 말고, 세상에 눈 돌리지 말고, 오로지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어 살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함께, 하나님의 구원과 사명과 영원한 안식에로의 부름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임으로, 마땅히 우리의 시야를 주님께 고정시키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무엇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까? 여기에 예수님을 수식하는 말이 두 가지 나옵니다. 하나는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대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사도와 대제사장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사도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신약의 많은 사도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의해,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분이십니다. 달리 말해 주님은 하나님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들에게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서의 증언들 특히 요한복음에 보면, 주님은 스스로, 나는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자임을 누차 설명하고 계시고, 아울러 보냄을 받은 목적이 무엇인지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항을 한꺼번에 말씀하시는 대표적인 구절이 요한복은 3장 17절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를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옛날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애굽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 사람을 구원해 내라고 보내심을 받았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이 세상에서 죄악 된 인류를 구원해 내라고 보내심을 받은 사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권을 가지시고 이 땅에 오신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래서 신약에 많은 사도들이 있었지만, 그들 중에서 그리스도는 가장 위대한 사도이시며,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사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진리를 밝히 가르쳐 주신 사도이십니다. 하늘나라에 관하여 가장 분명하게 가장 많이 가장 완벽하게 가르쳐 주신 분이, 바로 사도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제사를 드림으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비는 자입니다. 이것은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서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달리말해 주님은 인간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자입니다.

 

히브리서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입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신약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입니다. 중보자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히브리서 8장과 9장에서, 그리스도를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시며’, ‘새 언약의 중보자시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제사장으로서,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요약해서 두 가지만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제사입니다. 구약 시대에 대제사장은, 양이나 송아지 같은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전에 들어가서 백성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제사를 지내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짐승의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친히 자기의 피를 흘리심으로 인류를 용서하여 달라고 하신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7절에 보면,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9장 12절에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계속하여 성경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3-14). 

 

우리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신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이 하시는 두 번째 일은, 중보기도입니다. 주님은 지상에 계실 때에도 타인의 영육적 유익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지속적으로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7:25)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주님은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바울도 로마서에서,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지금도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우리가 진리로 거룩하여지도록, 주 안에서 항상 하나로 있도록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는 주님이 계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중보자가 계시는데, 우리가 낙담하고 좌절하고 근심걱정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좌절하거나 근심걱정하기보다,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를 깊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인들은 인간으로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권위적인 인물로 사도를 꼽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인간 중에서 가장 높은 종교적 권위자로 대제사장을 꼽습니다. 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대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을 사도요, 대제사장이라 하셨음으로, 우리는 마땅히 그분을 존경하며 가장 높은 권위자로 섬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엇을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까? 바로 그 분이,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심과, 우리의 대제사장이심을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달리말해 사도이시고 대제사장이신 그분에게,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켜서 살라는 것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주님의 성품을 깊이 생각하면, 주님의 성품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이 하신 사역을 깊이 생각하면, 주님의 사역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에게 초점을 맞추어 살기만 하면, 우리는 대단한 인격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는 것이며, 아울러 대단한 주의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볼록렌즈를 가지고, 까만 색종이를 태우는 실험을 해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햇빛이 잘 쬐이는 곳에서 까만 색종이 한 장을 놓고, 그 위에 렌즈의 초점을 잘 맞추면, 금방 색종이에서 연기가 나고 종이는 타 버리고 맙니다. 넓은 면에 골고루 햇빛을 받으면 종이가 타지 않습니다. 여러 개의 빛의 입자를 한 곳으로 모아서, 한 곳에 집중하여 비출 때, 그곳이 타는 것입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께 시선을 고정하여 살아간다면, 거기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 날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주님께 집중할 때, 거기에는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불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정말 상상하는 그 이상의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대 변화의 역사, 대 회복의 역사, 큰 기쁨과 은혜의 역사, 대 부흥의 역사가 일어 날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여러분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하여 삶으로, 이런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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