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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구속의 목적, 찬송 (이사야 43:21)
이정현 목사 2015-10-11 추천 0 댓글 0 조회 340

제가 오늘 노래를 하나 부르겠습니다. 찬송은 아니고 군가입니다. 제가 훈련을 다 마치고 국방부에 배치를 받고, 국방부 장관실에서 근무를 하는데, 상병 때였습니다. 졸병이 들어 온 것입니다. 보통 졸병이 들어오면, 노래를 하나 시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졸병보고 ‘노래 일발 장진’ 그랬더니, 얘가 ‘발사’ 그러면서 군가를 하나 불렀습니다. 그 노래가 너무 좋아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데, 게가 불렀던 그 군가를 이 시간 불러 보겠다는 것입니다. 찬송가가 아니라서 죄송하지만, 이해하고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더 넓은 황산벌에서 다져지는 전우애, 찬란한 훈련소에서 뭉쳐지는 겨레의 혼,

 우렁찬 함성 속에 피 끓는 사나이들, 비 바람 몰아쳐도 굳굳한 사나이들, 

 싸우면 이기고 겨루면 승리하는, 전통에 빛나는 중대 선봉 5중대.”

 

그 졸병이 이렇게 멋지게, 논산훈련소 25연대 5 중대가를 불렀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내가 물었습니다. ‘너 이 노래를 누가 작곡했는지 아느냐?’ 그 친구는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노래는 내가 만든 거야.’

 

저는 노래와 음악에 대하여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데 찬송이 상당한 %를 차지하더라는 것입니다. 한 예배 안에 적어도 5-6곡의 찬송을 부릅니다. 앞으로 목사가 되면 찬송을 부르고 찬송을 인도해야 할 사람이 이렇게 음악을 몰라서 되겠나-하는 생각으로 음악을 조금 공부해서, 군대 가서 그 군가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면, 거의 매주 딸냄이한테 지적을 당합니다. 아빠 이 찬송을 여기 ‘박자가 틀렸어’, ‘음정이 안 맞아’, ‘발음이 틀렸어’-사사건건 지적을 합니다. 딸냄이가 함현고등학교 음악 선생이니까, 저도 인정은 합니다. 하지만 기분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조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음악 공부를 조금 했기 때문에, 지금 제가 이만큼이라도 찬송을 부를 수 있는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찬송은 대단히 중요한 신앙생활의 요소입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이사야 43장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조성하였다.’-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일일이 창조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구속하였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내 백성이 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너는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너를 창조했고 구속하였기 때문에 너는 내 것이라고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나님에 의해 구속되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찬송은 창조와 구속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목적이 찬송이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여 주신 목적도,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찬송은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은 이 찬송에 대하여 몇가지 살펴봄으로,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1. 찬송이란?  

 

찬양이란 무엇입니까? 찬양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노래입니다. 찬양이란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의 원래의 뜻은, ‘칭찬하다’,?‘갈채를 보내다’, ‘존경하고 인정을 표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이란, 노래로 하나님을 높이고 칭찬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의 요소들 중에, 찬송이 가장 높은 예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의 요소에는 기도, 말씀, 헌금, 교독문, 광고, 찬송 등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 예배성이 가장 높다는 것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여 함께 찬송함으로 영광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른 요소보다, 그 예배성이 높다고 하는 것입니다...

 

2. 찬송의 대상은 누구인가?

 

찬송의 대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대중가요 중에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있는데, 아내를 위해서 노래를 부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찬송이 될 수는 없습니다. 찬송은 하나님께만 드리는 노래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그마치 430년 동안 종으로, 노예로 살다가, 자유와 해방을 얻었기 때문에, 그 감격과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애굽을 출발하여 홍해를 만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말미암아, 바다가 갈라져서 육지 같이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뒤쫓아 오던 모든 애굽 사람들은, 수장되어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무사히 바다를 건너간 이후, 너무 감사하고 기쁘고 좋아서,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모세가 이렇게 찬송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출15:1-2). 높고 영화로우시며, 힘이요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같이 찬송을 했더니, 미리암이 다른 여인들과 함께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면서 이어서 찬송을 드립니다.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출15:21). 미리암도 역시, 높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미리암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송에는, 분명히 그 대상이 하나님이시고, 또한 찬송의 내용이 ‘높고 영화로우시며 구원자 하나님이심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시편 137편에 보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간 유대인들이, 바벨론 강변에 앉아서 예루살렘을 기억하며 울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 찬송소리를 들었던 바벨론 사람들이, 우리를 위하여 노래를 부르고 수금을 연주해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자기들의 흥을 돋구기 위하여 노래를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수금을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버립니다. 꽁꽁 묶어서 다시는 꺼집어 내릴 수 없도록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아닌 너희들을 위해서 연주 할 바에는, 차라리 연주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오른 손이 그 기능을 잃었으면 좋겠다.’ 너희들을 위하여 연주를 할 바에야 차라리 내 재주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내 혀가 입 천장에 붙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노래하지 못하도록 차리리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송의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포로 신세가 되어 먼 이국 땅까지 잡혀 왔지만, 아무에게나 찬송을 돌릴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너희 같은 인간들에게 돌려야 할 찬송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찬송의 대상이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임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 외의 성경들을 보면 전부 다,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말함으로, 찬송은 여호와께만 돌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찬송할 때,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며,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가에 보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넓은 사랑 귀하고도 귀하다. 그 사랑이 언제든지 나를 감싸줍니다.’(579장) ‘가슴마다 파도친다. 우리들의 젊은이, 눈동자에 어리운다. 우리들의 푸른 꿈.’(574장) ‘미더워라 주의 가정 반석 위에 섰으니, 비바람이 불어쳐도 흔들리지 않으리.’(558장) 그 외의 많은 곡의 가사에서,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예배찬송으로 부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 여호와만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찬송을 다른 것에 돌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우리 찬송의 유일한 대상이시기 때문입니다.

 

3. 어떻게 찬송해야 합니까?

 

악기로 찬송할 수 있습니다(시33:2-3). 다른 사람들은 입술로 찬양하지만, 연주자들은 악기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연주 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악기 연주자들이 하나님께 연주하지 못하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찬송 연주의 관객은 회중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큰 소리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대하20:19). 또한 즐거운 소리를 지르며 찬송할 수도 있습니다(시66:1). ‘할렐루야, 호산나, 아멘’을 외치며, 목소리 높여서 있는 힘을 다해서 찬송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시편 47편 1절에서는, 박수를 치며 찬송하라고 했고, 시 134편에서는,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오후 예배나 기도회 때에는, 박수도 힘차게 치면서 찬송을 불렀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서 두 손 들고 여호와를 송축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시편 68:4절에 보면,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이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니 그의 앞에서 뛰놀지어다.”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 앞에 뛰놀지어다’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춤추며 찬양하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어른들 앞에서 재롱을 피우듯,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춤추며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다윗이 법궤가 자기 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아서, 춤추며 찬양하며 법궤를 모셔 들이다가, 바지가 내려가는 것조차도 몰랐던 것처럼, 그런 마음과 태도로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 찬송가 속에 영국의 찰스 웨슬리라는 사람의 곡이 13편 있습니다. 그는 영적인 찬양 사역자였습니다. 형인 존 웨슬리를 도와서, 집회 때마다 열정적인 찬송으로 성도들의 마음 밭을 일구어, 말씀을 잘 듣게 하였습니다. 그가 찬송은 다음과 같이 불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1)곡대로 불러야 한다./ 작사 작곡한 사람이 기도하면서, 이대로 부르는 것이 가장 은혜롭다고 해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곡대로 부르는 것이 가장 은혜롭다고 보고, 가급적 곡대로 불러야 합니다. 그러면 곡을 잘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따라하면 됩니다. 그리고 찬송을 배워야 합니다. 인터넷이나 핸드폰이나 지휘자를 통하여 찬송을 잘 배워서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2)영적으로 불러야 한다./ 찬송은 곡보다 가사가 중요함으로, 그 가사에 내 마음을 담아 드리는 것을 영적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가사를 깊이 생각하며,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을 말합니다. 찬송 부를 때 딴 생각하거나, 장난치거나, 멍하니 앉아있으면 안되고, 집중해서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3)열정적으로 불러야 한다./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찬송하는 것을 말합니다. 목소리를 높여서 내 몸의 모든 에너지를 다하여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 아침 예배 때, 열정적으로 찬송 5-6곡을 부르고 나면, 배고 고파야 정상입니다. 입에 단 내도 안 나고 배도 안 고픈 사람은, 그만큼 찬송을 열정적으로 안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마치 올림픽게임이나 아시안게임에서처럼 응원할 때, 거기에 집중하여 힘을 다하고 목소리를 다하여 응원하듯이, 하나님을 향해 열정적으로 찬송하는 것입니다.

 

4. 찬송의 결과

 

우리가 중심으로 찬송할 때,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찬송은 무엇인가를 바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기 때문에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찬송하며 나아갔더니, 전쟁에 승리한 역사도 있습니다. 유다의 여호사밧 왕 때, 모압과 암몬의 침략을 받게 되었을 때, 레위 사람들 중에 노래하는 사람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께 찬송하게 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적들이 서로 쳐 죽이는 일이 일어남으로 전쟁에 승리하게 되었습니다(대하20:17-24).

 

또한 찬송할 때, 악신이 떠나갑니다. 병이 나았습니다. 우울증이 나았습니다. 위장병이 나았습니다. 근심걱정이 사라졌습니다./ 전 세계 35개국의 언어로 1000만부 이상 팔린 책이 한권 있습니다. “지옥생활에서 찬송생활로”라는 책인데, 이 책의 저자는 머린 알 캐로더스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젊을 때 도박꾼, 암시장의 밀매꾼, 술주정뱅이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예수를 믿고 군목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찬송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군목 생활을 하면서, 자기에게 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해 오는 사람들에게, 찬송으로 상담을 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상담을 하면 캐로더스 목사님이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이 찬송 가사를 5번 읽고, 5번 부르라고 상담을 해 주면, 그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했을 때, 놀라운 찬송의 능력이 나타나더랍니다. 우울증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찬송할 때 원수를 이기게 됩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교황이 지배하는 로마 가톨릭의 잘못된 가르침에 반대했습니다. 그 시대에 교황을 반대한다는 것은 목숨을 포기하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교황이 유럽 전체를 지배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루터가 윔스 국회에 끌려가서 재판을 받습니다. 그 국회의 담벼락 위에는 많은 기왓장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루터는 ‘윔스 회의장의 기왓장처럼 마귀가 많더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고 하면서, “1)내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2)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섯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라고 찬송을 부르게 된 것입니다.

 

결국 루터는 그 모든 위협을 이기고, 종교개혁의 기초를 놓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찬송을 하면, 내 영이 살아납니다. 우리가 만약에 찬송에 들어가야 할 마땅한 내용으로, 곡대로 영적으로 열정적으로 찬송을 부른다면, 내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기뻐 뛰게 되는 것이고, 감동과 감격의 은혜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은혜와 만족과 기쁨이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찬송이 살아있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도 날마다 찬송이 있기를 바랍니다. 각 구역과 각 기관에도 찬송이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찬송을 회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찬송이 무엇이고, 누구에게 찬송해야 하는지, 어떻게 찬송해야하며, 찬송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 예배 때마다,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함으로, 그분의 영광을 창일하게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라고 했더니,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고 했습니다(대상 16:36)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찬송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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