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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다.(이사야 30:18-26)
이정현 목사 2015-11-01 추천 0 댓글 0 조회 543

우리는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할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 키가 자라가고 지혜와 믿음이 자라가도록 기다려줘야 하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서 윽박지르며 다구 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자녀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사춘기를 보내며 공부할 때는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부모들이 잘 참아주지를 못합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듣고 보면서, 기다려주지를 잘 못합니다.

 

외모를 자기 마음대로 바꾸고, 옷 입는 것 화장하는 것, 친구들 사귀는 것, 이어폰을 꼽고 공부하는 것, 신발은 운동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슬리퍼를 신거나 들고 다니는 것, 핸드폰을 끼고 사는 것, 시간을 사용하는 것, 밤 늦게까지 뭘 하는지 아침에 일어나지 않아 아침마다 전쟁을 하는 것, 학기말 고사나 수능이 코 앞인데 느긋하게 태평스럽게 게임을 하고 있는 것, 등등의 모습을 보면, 부모들은 답답하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어합니다.

 

큰 소리로 화를 내기도 하고, 불러서 타이르기도 합니다. 네 마음대로 하라고 방치하기도 합니다. 매를 들어보기도 하고, 울면서 하소연 해 보기도 합니다. 결국 부모들은 아이들을 믿지 못하고, 기다려주지 못하고, 계속하여 여러 방법으로 다구치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믿지 못하고 기다려주지 못하면, 결국 자식 농사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기다리지 못하여 하나님의 큰 심판을 받게 된 사건이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출애굽기 32장과 사무엘상 13장에 나옵니다. 출애굽기 32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사건이 나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말씀을 받기 위해 시내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모세는 그 산에서 한참 동안 하나님과 함께 머물러 있었습니다. 산 아래에 있던 백성들이 모세가 더디 내려옴을 보고, 아론에게 말을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는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하겠다.’

 

결국 아론이 중심이 되어 그들은 금부치를 가져다가,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서, ‘이것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라.’고 했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우상 앞에 제물을 드리고, 엎드려 경배하며 먹고 마시며 뛰놀았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보니, 기가찬 것입니다. 너무 실망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면 다 지키겠다고 약속해놓고, 말씀을 받아 내려오기도 전에 그 말씀을 어기는 백성들을 보고, 너무 큰 실망을 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여호와의 편에 잇는 자는 다 내게로 오라고 하니, 레위 자손들이 옴으로, 그들에게 칼을 주어, 범죄 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날에 3000명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올 모세를 기다려야 했는데, 기다리지 못하여,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여,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것입니다. 기다리지 못함의 결과는 혹독한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한 예는 사무엘상 13장에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많은 군사(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습니다. 블레셋 군사들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을 쳤고, 사울은 그를 따르는 많은 백성들과 함께 아직 길갈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믹마스는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해 있고, 길갈은 여리고 바로 위, 믹마스에서 볼 때 동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 둘 사이는 20km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을 하려면 서남쪽에 있는 불레셋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믹마스까지 왔다면 이미 이스라엘의 영토 중앙 부분까지 왔기 때문에, 사울 왕은 동쪽인 길갈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있었던 단 한 가지 이유는, 사무엘 선지지가 와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난 후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삼상 10:8절에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런 말씀을 합니다.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 사무엘 선지자는 분명히 내가 왕에게 와서 제사를 드리고, 내가 당신에게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7일 동안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던 선지자 사무엘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1주일을 기다려도 선지자가 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백성들은 겁에 질려 흩어지기 시작을 합니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 사울 왕이 번제를 드리고 맙니다. 번제를 드리자마자 사무엘이 왔습니다. 그러니까 사울 왕이 한 두 시간만 더 기다렸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것을 참지 못하였습니다.

 

사무엘이 대노하면서, ‘왕이 지금 무엇을 하였느냐’, ‘왕이 망령되게 행하였다.’고 하면서 당신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을 말했습니다. 결국 이것으로 인하여 사울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은 그래도 처음에는 좀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혼란이 찾아오고, 백성이 두려워 떨고, 흩어지기 시작하자, 그 마음이 불안해 지고, 조급하여 기다리지 못하고 월권을 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시내산 밑의 이스라엘 백성과 사울 왕은, 기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다리지 못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때를 생각하여, 기다려야 할 때에는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지 못하면, 결과가 좋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오늘 본문 18절 마지막에,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대학입학을 위해서도 기다려야 합니다.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는 것도 기다려야 하고요,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면 기다려야 합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려면 기다려야 하고, 아이를 앉는 기쁨과 감격을 맛보려면, 역시 임신이후 10개월은 기다려야 하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유치원 가고 초등학교 가고 중학교 가고 대학교 가려면, 역시 기다려야만 합니다. 하루아침에, 1년 2년 만에 되는 게 아닙니다. 다 때가 있기에 그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에 조급하게 서두르면, 오히려 일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한국교회는 목사들 때문에 망할 것이다.’라는 예언을 감히 합니다. 잘 준비하고 정식 과정을 거쳐서 목사가 된 사람도 많이 있지만, 지금 한국교회의 상당수 목사가 제대로 신학수업도 하지 않고, 자격도 없는 사람들에게 통신공부 6개월, 1년 시켜서 목사안수를 주는 데도 많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도 못나온 목사들도 많이 있고요, 신학공부를 하지도 않고 돈 몇 푼으로 목사안수를 받은 사람도 상당수입니다. 집사가 어느 날 목사안수 받는다고 초청장이 옵니다. 권사가 목사안수 받았다고 목사 행세를 합니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준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조급하여, 기다리며 준비할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자기는 하고 싶지 않은데, 하나님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다고 말합니다. 사명이기 때문에 한다고는 말하는데, 결국 보면 자기 생계유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또한 때가 급하기 때문에, 7년 동안 신학 수업을 받을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 빨리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지, 책상에 앉아서 공부할 여가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최소한 대학졸업 후 3년은 신학공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다리지 못하고 속성코스를 좋아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사가 되려고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건실한 목사님들이 도매금으로 욕을 먹고, 결국 한국교회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타락하고 부패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다 하였으니, 기다리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자도, 좋은 환경에서 기다리는 자가 있고, 어렵고 힘들고 위기적 상황 속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환경 속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리는 것이 별로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더운 여름에 시원한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린다면, 그 기다림이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 별로 큰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환경이 안 좋습니다. 춥습니다. 찬바람이 쌩쌩 붑니다. 거기에 비바람이 칩니다. 우산 하나 들고 정거장에서 기다리는데, 30분이 늦고 1시간이 늦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계속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내가 처한 환경과 형편에 따라, 기다림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지금 본문의 남쪽 유대인들이 처한 환경이 어떤 줄 아십니까? 같은 동족이었던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 나라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남쪽 유다도 앗수르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앗수르는 세계 최 강국이었고, 무자비하고 유다와 인접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북 이스라엘을 삼킨 앗수르가, 언젠가는 남 유다도 침공하여, 자기의 밥으로 삼으려고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그 앗수르를 견제하기 위하여, 애굽과 동맹조약을 맺은 것입니다. 유다의 생각으로는 우리가 애굽과 동맹조약을 맺고 있으면, 북쪽의 앗수르가 우리를 침략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이것이 잘못이라고 책망을 한 것입니다. 이 동맹 조약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한 처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유다의 피난처이신데, 그들은 애굽을 피난처로 삼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철저한 비 신앙적 행위이며, 이것으로 인하여 너희는 수치를 당할 것이며, 애굽으로부터 그 어떤 유익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30:5절에 보면,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하지 못하는 민족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고 하셨고 7절에도,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BC 701년 북 앗수르가 남 유다를 침공해 왔지만, 유다는 애굽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큰 수치를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무튼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애굽과 조약을 맺음으로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두고 ‘패역한 자식들이라’고 하셨고, ‘죄에 죄를 더하였다’고 하셨고,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라’고 하셨고, 더 나아가서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백성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였고, 도울 힘이 없는 애굽을 자기들의 피난처로 삼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진노하셨고, 그들의 죄를 따라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18절에서 ‘하나님의 기다리심’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이 기다림은 진노와 심판 중에서의 기다림입니다. 너희들의 죄를 따라 심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시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 이처럼 기다리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자신들의 잘못과 죄악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이방 나라를 의존했던 것을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8절에서 하나님의 기다리심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기다려야 하는데, 그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서, 그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은, 맹목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회개함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나님의 회복하심을 기다린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잘못을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복이 어떤 복인지를 19절 이하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다시는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남 유다가 적군의 침략을 받아, 전쟁으로 인하여 오는 통곡을 말하는 것임으로, 다시는 그런 통곡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너희들이 부르짖는 소리에 내가 응답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부르짖다’는 말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짜아크’인데, 이는 마음을 짜 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처럼 짜아크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며,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20절에 보면,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이 나오는데 이는, 유다가 이방의 포위로 당할 육체적 고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너희가 앞으로 심한 식량난과 식수난을 당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서 너희들의 스승인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나는 너희들에게 계속하여 영적 양식인 말씀만은 공급해 줌으로, 그들을 영적으로 소성케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해서 육체적으로는 고생일 수 있으나, 영적으로는 만족한 생활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계속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의 복에 관하여 말씀하시기를,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며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친히 갈 길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다백성들은 항상 좌우로 치우칠 수가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방황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 뒤에서, ‘이것이 바른 길이니 이 길로 가라.’고 가르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이제 너희가 회개하고 돌아온 이후, 우상과 우상숭배를 멀리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2절에서, 우상을 불결한 물건을 던짐같이 던져버리고, 나가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던지고’라는 말은, 우상을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는 뜻이고, ‘나가라’는 말은 죄를 범할 수 있는 도구를 버린다는 뜻입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회개하고 나를 신뢰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비를 주어서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축들까지 광활한 목장에서 푸른 풀을 뜯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이 비를 줌으로 땅도 회복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충분한 양식을 취한 것과 같이, 24절에 이제 가축들도 새로운 맛있는 먹이를 먹게 될 것이라고 하셨고, 그리고 남 유다의 적들이 패망하는 날에는, 어디에든지 개울과 시냇물이 흘러 농사를 짓는데, 불편함이 없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5).

 

마지막 26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유다 백성을 회복하실 때, 그 맞은 자리를 싸매실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봅니다. 

 

결국 그를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이 복을 약속하셨는데, 그 복은, 1)다시는 이방인의 침략을 받아 고통 중에 애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며, 2)부르짖는 소리에 응답해 주시겠다는 것이며, 3)식수난, 식량난과 같은 고통 중에서도, 참된 양식을 계속 공급해 주겠다는 것이며, 4)당신의 백성들이 나아갈 바른 길을 제시할 것이며, 5)회개하여 돌아오면 그들에게 풍성한 양식과 영적 평안과, 그들을 치유하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결론

과거 유다 백성들을 기다려 주셨던 그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기다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기다려주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벌써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만큼이라도 신앙생활하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기다려주심의 은혜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기다리시는데, 왜 기다리십니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 기다림을 아는 저와 여러분들은, 이제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조급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기다리는데, 멍하니 기다리면 안 됩니다. 자기를 돌아보는 것도 없이 기다리면 안 됩니다. 자기를 성찰하며 잘 못을 회개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자기를 비우며, 마음을 깨끗이 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다른 것에 기웃기웃하며 기다리는 것 아닙니다. 세상 것도 적당히 의지하며 기다리는 것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 하나님께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나의 기다림이 좋지 않은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춥고 고통스럽고 비바람이 치는 환경 속에서의 기다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마침내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십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치유하여 주십니다. 육적인 양식으로 풍족케 해 주십니다. 영적인 양식도 끊임없이 공급해 주십니다.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나와 관계된 다른 사람에게도 복을 주시고 심지어 가축에게도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형편이 남 유다가 처한 형편처럼 별로 좋지 않습니까?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럽습니까? 개인, 가정, 직장, 사업장의 형편, 건강의 형편이 죽을 만큼 힘이 듭니까? 그래도 신실하신 하나님, 은혜로우신 하나님, 긍휼히 많은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말씀대로, 기다리며 기도하였을 때,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1:21)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잠잠히 참고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기도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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