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통일 왕국 시대에는 세 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초대 왕이 사울이고 두 번 째 왕이 다윗이고 세 번째 왕이 솔로몬이었습니다. 사울 왕은 좋게 시작했다가 나쁘게 끝난 왕이고, 다윗 왕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으로, 후대의 모든 왕들을 통틀어 가장 선한 왕으로 꼽히고, 솔로몬은 지혜로운 왕이었으나, 말년에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는 왕이었습니다.
솔로몬 이후에 나라가 분열이 되어,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로 나뉘어져 역사가 전개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통일 왕국이 분열 왕국이 되었습니까? 과거의 독일이나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한 나라가 여러 가지 이유로 둘로 갈라지는 것은 좋지 않은 일입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이며,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이, 분열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변 상황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솔로몬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전무후무한 지혜를 얻은 사람입니다. 그 지혜로 초창기에는 나라 일을 잘했으나, 후반기로 가면서 죄를 범함으로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다스렸습니다.
그의 가장 큰 죄는 이방여인들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그는 이방의 많은 여인들을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이들 이방 민족들과 혼인을 하게 되면,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그들의 신을 따르게 될 것이므로, 절대로 그들과 결혼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솔로몬은 여러 이방 민족의 딸들과 연애를 했습니다. 그래서 무려 후비(임금의 아내)가 700명이었고, 빈장(임금의 수청을 들던 궁녀)이 300명이었습니다. 도합 1000명의 여자를 거느리고 성적인 만족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왕의 나이가 들자 이제 여자들이 날뛰기 시작하는데, 자기들의 신을 강요함으로 점점 하나님과는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시돈의 여신 아스다롯과, 암몬의 신 밀곰과,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왕은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후비들과 빈장들의 신을 숭배하게 된 것입니다. 신 같지도 않은 신들에게 빠졌습니다. 잔인하고 가증스러운 신들에게 빠지고 말았습니다. 정말 하찮고 말도 안 되는 그런 신들에게, 머리 숙여 분향하며 제사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친히 두 번이나 나타나셔서, ‘너는 다른 신을 좇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그 말씀을 거역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사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말을 지키지 않았음으로, 내가 네 나라를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네 아비 다윗과 맺은 언약이 있음으로, 네 대에는 하지 않고 네 아들 대에 하겠다고 하셨고, 그리고 네 아들에게 두 지파를 남겨두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노 중에도 하나님이,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요약해서, 솔로몬 이후 나라가 둘로 갈라진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것은 바로 솔로몬의 죄악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여자를 탐하고 우상을 숭배하였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은, 120년 만에 남북이 나누어지는 분열왕국이 되는 것입니다.
한 왕, 한 지도자의 잘못은, 이스라엘 역사에 길이길이 남는 오점과, 고통과 슬픔과 뼈아픈 타락과, 처절한 멸망과 비참한 포로생활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고야 말았습니다.
분열 왕국 시대에, 북쪽 이스라엘의 제7대 왕이 아합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아합은 아주 악한 왕이고 우상숭배를 많이 했는데, 특히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왕이었습니다. 이 같은 이방 신들을 퍼트리면서, 여호와 신앙을 없애려고 했던 자였습니다. 이런 아합에 대한 이야기가 열왕기상하에 많이 나오는데, 전부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숭배하는 것, 죄를 짓는 것,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것, 거짓 선지자에게 묻으러 다닌 것 등등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는 죄 짓는 것을 가볍게 여겼으며, 바알 제단을 많이 만들어서 숭배함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왕상16:31-33).
이 같은 아합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격노하셨습니다. 아합이 죄를 많이 짓고 우상숭배를 많이 하니까, 하나님이 그 땅에 가뭄이 들게 하셨습니다. 가뭄으로 인한 재앙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3년 이상 비가 오지 않으면, 그 땅의 모든 동식물들은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은, 그 땅과 그 백성들에게 베푸시던,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은혜와 사랑을 거두시는 것입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다가, 하나님이 그 자비와 긍휼을 거두시면, 그 상태가 하나님의 진노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동안 북 이스라엘 땅에 베푸셨던 은혜를 거두시니까, 3년 동안 주시던 비를 거두신 것인데,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 땅은 심각한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고대 멕시코와 콰테말라를 중심으로 번성해 온 마야문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BC 300-600년 경에 크게 번성하게 되었는데, 이 지역에 무려 60개의 대 도시를 건립하였고, 인구도 무려 6-7만 명의 마야인들이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로 봐서는 대단한 도시와 대단한 시민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와 마야인들이 1100경 역사 속으로 갑자기 사라집니다. 그 이유가 바로 극심한 가뭄 때문이었는데, 이 가뭄은 무려 100여 년 동안 계속되었답니다. 그들은 기우제를 드리고, 산 사람의 심장을 꺼내서 제사를 드렸지만 하늘은 비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왕의 영향력이 약화되기 시작했고, 왕권이 곧 신권이었던 마야시대는, 지속적인 가뭄으로 인하여 나라는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찬란했던 마야의 멸망원인은 전염병이나 외부의 침략이 아니었고, 곧 가뭄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의 아프리카의 가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마실 물조차 없어서, 수십리를 걸어서 물을 길러 오는데, 그것조차도 오염된 물입니다. 그 물을 마신 아이들에게 심각한 병이 많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뿐만아니라 북미와 유럽에도 심각한 가뭄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밀 작황이 현격히 줄었고, 런던 2012 올림픽 때에는 카누를 띄울 수 없을 정도로 물이 부족했고, 벌 서식지가 사라지고 농사를 지울 수 없는 땅들이 생겨났답니다.
가뭄 현상은 아시아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몽골과 중국 지역의 가뭄은, 급격히 땅의 사막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비가 오지 않자, 식물들이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호수가 말라버립니다. 나무와 풀이 사라지니까, 땅이 모래사막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람이 불면 황사현상이나 미세먼지가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입니다. 이런데다가 매년마다 가뭄이 점점 더 심각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몇 주 전만해도 30년 만에 처음 당하는 가뭄이라고 합니다. 저수지에 물이 없습니다. 농작물들이 타들어갑니다. 농민들은 서로 물을 대려고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경지를 지나서 마실 물조차 없어져 보세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농사지을 물도 없고 가축을 먹일 물도 없고, 밥해먹을 물도 없고 화장실을 치울 물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겠습니까? 서로 싸우는 것이지요. 물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고 아비규환이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3년 동안의 가뭄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땅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서, 아합 왕에게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이 때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에 살고 있던 아합 왕이, 그 땅에 기근이 너무 심하여 오바댜라는 신하를 불러서, 말과 노새를 먹일 물일 찾아 가자고 했습니다. 당시 아합의 신하였던 오바댜는, 여호와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자였고, 이세벨이 선지자들을 죽일 때 100명의 선지자들을 굴에 숨겨주고, 그들에게 떡과 물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아합은 이 신하를 데리고 물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서게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이제 각자가 다른 길로 가서 물의 근원을 찾자고 했습니다. 오바댜가 아함과 떨어져서 한 길을 가다가, 엘리야 선지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바댜가 금방 선지자임을 알아보고 엎드려 인사를 합니다. 인사를 받은 선지자가 오바댜에게, ‘너는 가서 왕에게 엘리야가 여기 있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왕에게 알리라는 말인데, 오바댜는 이 말을 듣고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아합은 여러 방법을 통하여 당신을 찾았고 당신을 죽이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당신을 보호하여 찾지 못하게 하심으로 당신의 생명을 보존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지금 내가 가서 왕에게 엘리야가 여기에 있었다고 얘기를 하면 왕이 군사를 이끌고 급히 이곳으로 올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당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 사이에 당신을 다른 곳으로 옮기시면, 나는 왕 앞에서 거짓말쟁이가 됨으로, 왕은 나를 죽일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난날에도 많은 선지자들을 살려주었는데, 어찌 지금 당신을 고발하여 당신을 죽게 할 수가 있습니까?-나는 절대로 당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왕에게 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선지자 엘리야가,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면서, 그럼 내가 직접 오늘 아합을 만나겠다고 합니다. 선지자의 결심이 확실하기 때문에 오바댜도 더 이상 만류하지 않고, 아합 왕에게 가서 엘리야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에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러 왔습니다. 아합이 선지자를 보자마자 무슨 말을 합니까? 17절의 말씀입니다. 아합이 엘리야를 보자,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지금 이스라엘이 가뭄으로 인하여 이렇게 고통을 겪고 있고 모든 농작물들은 타죽고, 동물들과 사람들이 먹고 마실 것이 없어서 온 민족이 괴로움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이게 모두 너 때문이 아니냐라는 것입니다.
아합은 지금 이스라엘이 이처럼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선지자에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합이 섬기는 신인 바알과 아세라 신은, 비와 풍요와 다산을 주관하는 신입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백성들은 다 이 신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는데, 너와 몇몇의 무리가 여호와를 섬기고 있기 때문에, 바알과 아세라가 진노해서 비를 주지 않음으로, 이렇게 전 국민이 가뭄에 고통을 당하고 있지 않느냐? 이런 의미로 아합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야는,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고, 분명히 그 이유를 말 하였습니다. 아합 왕 당신과 당신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따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분명히, 지금 이스라엘이 당하는 고통이 무엇 때문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이 아니라, 아함과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세계는 테러로 인하여, 두려움과 공포에 쌓여 있습니다. 9.11테러를 시작으로 해서 러시아 여객기 폭파 테러와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적인 테러는, 지금 서방 세계를 떠들썩하게 합니다. 또한 이것으로 인하여 다른 나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까지도,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하면서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서서히 한국 안으로도 밀려들어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해서, 어떤 끔직한 테러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테러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와 죽음은 과연 누구 때문입니까?
우리나라는 지금 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시위와,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로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그리 큰 문제가 아닌 듯한데, 큰 정치적 문제로 부각이 되었고, 개인의 유익보다 공익을 조금만 생각한다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인데도, 시위로 국가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가의 혼란과 이 민족의 고통은 과연 누구 때문입니까?
우리 교회 안이나 우리 가정 안에는, 혹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중단됨으로 오는 하나님의 진노는 없습니까?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은 없습니까? ...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과 괴로움이 가정과 교회에 찾아왔습니까?
이 같은 물음에 대한 해답을 우리는 이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왜 이 세계가 고통을 당하고, 왜 이 민족과 나라가 고통을 당하며, 왜 우리교회와 가정이 괴로움과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나에게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아합처럼 자기에게 그 원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르고, 선지자에게 있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고 하는 자는 자기이고, 자기가 하나님 여호와를 떠났기 때문이고 본인이 하나님을 거역하며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인데도 불구하고 남의 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분명하게 그 원인이 누구에게 있으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아합 왕이 주범이며,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바알과 아세라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이제 이 사실을 명백히 밝히고자,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하나님의 선지자 자기 1명과 능력 대결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이방 선지자 850명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들의 신의 이름을 불러 보지만 응답이 없었고, 이제 선지자 엘리야가 기도하자 하나님이 불로써 응답하여 주심으로,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만이 비와 풍요와 다산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방 선지자들을 다 죽임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죄를 청산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3년 6개월 동안 하늘을 닫으셨다가, 이제 하늘을 열어 그 땅에 비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합 왕과 그들 조상들의 죄를 따라 자비와 긍휼을 거두셨다가, 이제 그 자비와 긍휼을 여전히 그 땅에 내리시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결론
우리 가정과 교회와 이 민족과 세계가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때, 그 원인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네 탓입니까? 내 탓입니까?
고통의 원인이 실제로 나에게 있는데, 다른 사람을 지적하여 탓하지 마십시오. 나를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떠난 것은 없는가?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없는가? 내가 하나님보다, 다른 어떤 것을 더 사랑한 우상은 없는가? 내가 세속에 물들어 빠져있었던 것은 없는가? 하나님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이 사명을 주셨는데, 나는 사명을 헌신짝처럼 여기지는 않았는가?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할 바가 있으면 빨리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거두셨던 은혜와 자비가 다시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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