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목사설교

  • 예배 · 설교 >
  • 이정현목사설교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35)
이정현 목사 2016-02-07 추천 0 댓글 0 조회 617

구약에는 많은 계명들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계명을 전부 613개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약의 모든 계명들을 본질적으로 10개로 만들어서,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10계명입니다. 이 10계명은 하나님이 신자들에게 주신 도덕법임으로, 오늘날 모든 성도들은 이 계명을 잘 지켜야만 합니다. 이것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구원 받은 성도들은 마땅히 이 법을 도덕적인 기준으로 삼아서 살라는 것입니다.

 

1.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2.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4.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5. 네 부모를 공경하라. 

6. 살인하지 말라.

7. 간음하지 말라.

8. 도둑질하지 말라.

9.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

10.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1-4계명까지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계명이고, 5-10계명은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1-4계명을 잘 지키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5-10계명까지를 잘 지키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구정 때,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이나 조상 앞에 절하는 일은 없고,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구정 때 부모를 찾아보지도 않거나 어른을 업신여길 수 없고, 살인하거나 간음하거나 도둑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복음서에서, 이 10계명을 둘로 요약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고, 둘째는 이웃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구약 모든 말씀의 요약이요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10계명을, 2계명으로 요약을 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이 두 계명까지도 하나로 묶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아주 간단한 말씀이지만, 깊은 진리가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럼 먼저 여기서 말하는 ‘새 계명’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여기 ‘새’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이넨’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말로는 새롭다는 의미로 이 단어를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헬라어로 ‘새롭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네아’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에서 영어의 new가 나왔습니다. 이 ‘네아’라는 단어는 시간적으로 ‘최근의 것’ ‘새로운 것’이라는 뜻입니다. 과거의 것을 버리고 새롭게 대체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에 비해서 본문에 사용된 ‘카이넨’은, 과거의 것이 시간이 지났다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이나 질적인 면에서 새로워진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옛 날에도 있었지만, 그 성격과 내용에 질적인 변화가 생긴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옛날에도 이런 계명들이 있었는데, 그 성격과 내용에 있어서 질적인 변화가 있는, 새로운 계명을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본질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계명이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 계명의 내용은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3번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그 만큼 중요하여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인가를 강조를 하실 때에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을 쓰실 때가 있었습니다. 그 뒤에 오는 말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런 방법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만 이런 형식으로 말씀하신 것이, 25번이나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이것처럼 오늘 본문에서는 세 번씩이나 반복 강조하여,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권고가아니라, 주님의 지엄한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히 해야만 하는 준수사항입니다. 당시 제자들에게 일차적으로 하달된 이 말씀은,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하시는 지엄한 주님의 명령으로 알고, 잘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 사랑해야 하는 샘플이 누구입니까? 우리보고 누구와 같이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어떻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즉,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모범이 주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한 주님의 그 사랑이 어떤 사랑입니까?

 

그것은 선재적 사랑입니다. 선재적 사랑이라는 말은, 주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한 것 아니고, 주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에 보면,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사랑하신 사랑을 선재적 사랑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주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로마서 5장 6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라고 했고, 또 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셨고, 10절에서는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아무런 사랑 받을 만한 자격도 공로도 없을 때에,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기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은 말과 입으로 하신 사랑이 아니고, 아무런 조건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이고,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신 희생적 사랑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사랑은, 끝까지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요한복음 13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주님의 사랑은 끝까지, 영원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제자들의 반응이나 행동에 상관없이, 끝까지 그리고 계속적으로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기를 은30냥에 팔아넘길 것을 아셨으면서도 그를 사랑하였고, 베드로가 자기를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배신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를 사랑하였습니다. 심지어 이미 예수님을 배신하였던 제자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다시 불러 제자로 사용하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끝까지 변치 않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불변하십니다.

 

이처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먼저 사랑하셨고, 희생적으로 사랑하셨고, 끝까지 사랑하셨다면, 우리도 마땅히 이웃을 사랑하되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주님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님처럼, 먼저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주님처럼, 희생적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주님처럼, 끝까지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만약 이렇게 서로 사랑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인 줄 알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될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기고 따르는 제자임의 표가, 서로 사랑하는 것에 있다는 얘기입니다. 서로 사랑함이, 제자 됨의 징표라는 말씀입니다.

 

프란시스 쉐이퍼(Francis A. Schaeffer) 목사님이, “그리스도인의 표시”라는 책을 썼는데, 거기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세대와 모든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꼬리표가,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리고 쉐이퍼 박사의 말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면, 제자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지식이, 제자의 증표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 년조가, 제자의 징표가 아닙니다. 우리의 직분이나 신앙적인 공로가, 제자의 징표가 아닙니다. 화려한 예배당이나 체계적인 조직이, 제자의 증표가 아닙니다. 우리가 행하는 독특한 의식이나 복장이, 제자의 증표가 아닙니다. 우리의 특별한 말투나 종교적인 관습들이, 제자됨의 증표가 아닙니다.

 

‘서로 사랑함’이 제자 됨의 증표입니다. 교회의 교회됨은 ‘서로 사랑함’에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제자 됨은, ‘서로 사랑함’에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드러내게 되고, 그 새로운 계명을 통하여, 사람들이 우리를 주님의 제자로 인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요한일서 3장 14절에,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증거, 즉 구원 받은 증거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형제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 예수를 믿는 사람, 예수의 한량없는 사랑을 입은 사람들은, 마땅히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과 그리스도의 제자임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쓰고 있는 사도요한을 일컬어, 우리는 ‘사랑의 사도’라고 부릅니다. 그가 말년에 에베소 교회를 담임했는데, 나이가 많이 들어서, 청년들이 그를 부축하여 교회의 강대 의자에 앉혀두면, 언제나 ‘소자들아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교부들과 그의 제자들이, ‘선생님 왜 같은 말만 늘 반복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이것이 우리 주님의 계명이다. 너희가 만일 이것만 지키면, 다 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결론

저는 ‘현대를 가리켜 관계가 무너진 시대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넓고 크게 말하면, 국가와 국가 사이와 민족과 민족 간의 관계가 깨지고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념과 이념사이와 종교와 종교사이의 관계도, 예전과 달리 심각하게 금이 가서 깨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회사와 회사 아이에도 과거에는 상부상조, 상생의 관계에서, 지금은 먹느냐 먹히느냐의 관계, 약육강식의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좁고 작게 말하면,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부간의 관계가 깨어지고, 부부관계나, 부모 자녀 관계도 심각할 정도로, 금이 가고 깨어지고 무너진 상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이제 더 이상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부모도 또한 자녀들을 진심어린 애정으로 키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서로를 매정하게 버리고, 심지어 서로 죽이기까지 합니다. 더 이상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지 않고, 자녀를 자녀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부 관계는 이미 상당한 %가 무너져서, 그 관계가 폐허가 되어 있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돈 문제 때문에, 성적인 문제 때문에, 불확실한 미래의 문제 때문에, 결핍된 애정 때문에, 이미 수많은 부부들이 깨어졌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어떻습니까? 교우와 교우 사이, 목사와 교우 사이, 선생과 학생 사이, 인도자와 구역원들 사이가, 이런 저런 말들과 잡다한 일들로 인하여 금이 가지는 않았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실금이 간 사이도 있을 것이고, 그 사이가 심각하게 벌어진 관계도 있을 것이고, 이미 관계가 파선이 되어, 사람으로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심각한 관계 속에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모든 관계를, 좀 더 나은 관계로, 좀 더 바람직한 관계로, 좀 더 좋은 관계로, 정상적인 관계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관계로, 회복을 하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를 주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기억하고, 또 같은 사랑을 베풀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진실 된 마음으로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좀 손해를 보고, 내가 좀 불이익을 당해도, 내가 좀 힘들고 어렵더라도, 희생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무릎을 꿇고, 대야에 물을 떠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닦아 주시고, 수건으로 그 발을 씻기셨던 것처럼, 내가 상대편을 섬기고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상대편이 나의 관심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대하든지 간에, 나는 끝까지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음 변치 않고 지속적으로 사랑하면, 그 안에 관계개선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13장이 무슨 장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장인데요, 어느 사람이 이 사랑장을 ‘며느리장’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제가 소개하려고 합니다.

 

“며느리전서 13장”

내가 시어머니에게 애교 있는 말로 안부를 전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세상 지식과 지혜로 교회의 집사가 됐을지라도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재물로 시어미에게 용돈을 드렸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시어머니가 무리한 요구를 할지라도 오래참고 

시어머니가 심한 말을 할지라도 온유하며

남편이 시어머니 앞에서 재롱을 부릴지라도 투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시어머니 앞에서 교만하지 아니하며

시어머니 앞에서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사랑은 화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와도 참으며

가사가 힘겨울지라도 끝까지 견디느니라.

 

사랑이 없는 말, 사랑이 없는 섬김, 사랑이 없는 봉사는 모두 겉치레에 불과한 것입니다. 진실 된 마음으로 사랑하면 고부 관계 뿐만아니라, 모든 관계가 분명히 좋아지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김홍섭 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재판할 때에는 언제나 성경과 육법전서를 같이 책상에 펴놓고 재판하는 분이었습니다. 판결할 때마다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당신이나 나나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대한민국의 법관이 되어, 당신을 재판하게 되었으니 널리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혼하려고 하는 부부 사건을 맡게 되었습니다. 장롱을 방안에 놓는 위치 가지고 싸우다가, 결국은 이혼하기로 결정하고 법원에 온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 부양문제, 재산 나누는 문제가 합의되지 않아서, 재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홍섭 판사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와 살고 싶으냐?” 그 아이는 아버지 어머니를 양 손에 붙들고, 함께 살기를 원한다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김 판사는 이 모습을 보고, 재판을 한 달 연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성경 한 권을 주면서, 고린도전서 13장을 하루 3번씩, 모두 100번 읽고 다음 재판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읽다가, 자기들에게 성경이 말하는 이 사랑이 없었음을 깨닫고, 드디어 이혼 소송을 취소하고, 아름다운 부부, 행복한 가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떠한 문제라도, 아무리 깨어진 관계라도, 사랑이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어도 사랑 없음을 뉘우치고,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하라”(갈5:13). 사랑으로 종노릇하면,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소망교회 성도 여러분, 특별히 설레는 구정을 맞이하여 가족들과 만나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게 될 여러분, 올해는 주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함으로, 행복한 가정,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구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순종은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린다 (여호수아 6:15-21) 운영자 2017.02.14 0 544
다음글 앞날에 좋은 일이 많기를.... 유기성 2017.02.10 1 1816

15010 경기 시흥시 배곧4로 42 (정왕동, 소망교회) 소망교회 TEL : 031-431-4817 지도보기

Copyright © 소망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53
  • Total356,490
  • rss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