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7장은 예수님의 기도를 기록한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1. 주님이 기도하신 내용을 가장 길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총 26절입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이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다, 때로는 철야 기도하셨다는 표현을 볼 때, 본문의 시간보다 실제로 더 오래 기도하셨겠지만, 어쨋던 기록된 분량만을 보아서는, 본문에 기도 내용이 가장 길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 주님이 아버지라는 단어를 제일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6회(1, 5, 11, 21, 24, 25-대명사를 제외함)인데, 한글 성경에 무려 40번이나 나타납니다. 이렇게 많이 차이가 나는 것은, 헬라어의 대명사를 한글 성경에서는 전부 아버지로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틀린 번역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막말로 아버지를 입에 달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
3. 광의적인 기도입니다./ 그만큼 폭 넓게 기도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 자신을 위해서(1-5) 기도하셨고요, 제자들을 위하여(6-19) 기도하셨으며, 또한 제자들에 의해서 제자 된 사람들, 곧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20-26)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범위가 현재와 미래가 포함되어 있고,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을 위한 기도라는 점에서, 폭이 넓은 기도라는 말입니다.
4. 고별기도입니다./ 16세기의 키트라우스라는 사람은, 이 기도에 ‘대제사장적 중보기도’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이 기도를 ‘고별기도’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합니다.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과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하나님께 의탁하며 기도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기도야말로 주님이 하신 기도라는 의미로 ‘주기도문’이라고 부릅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기도하신 대상들 중 세 번째에 해당되는, ‘제자들에 의해서 제자 된 사람들’을 위한 기도 중 일부분입니다. 20절에,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그의 제자들을 위해서만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이제 그들에 의해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흔히 ‘미래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미래의 제자들을 달리 ‘계속해서 믿게 될 사람들’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 본문은 하나의 기도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로 있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각 구절에 한 번씩, 무려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이 기도를 하십니다. 21절에,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라고 하셨고, 22절에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하셨으며, 23절에,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 뿐만아니라, 앞에서도 이미 동일한 내용으로 기도하신 바가 있습니다. 11절에 있는,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분명한 기도입니다. 그래서 본장에는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가 무려 4번이나 나타나는데, 당신의 제자들을 위하여 이 기도를 하셨고, 또한 미래의 제자들을 위하여 동일한 기도를 반복하셨습니다. 이것만 보아서도 이 내용의 기도가 얼마나 절박했고, 얼마나 중요한 기도인지를 알게 됩니다.
당시의 시대적, 종교적 상황이 하나 되지 못하였던 경우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정치도 하나 되지 못하였고, 종교도 하나 되지 못하고 분파가 많았고, 진리도 하나 되지 못하여 각종 이단과 사이비가 생겨나게 되었고, 심지어 제자들마저 세상의 여러 가지 핍박과 환란으로 인하여 하나 되지 못하고, 흩어지고 분리될 가능성이 많았음으로, 주님이 이 기도를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기도를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가 되고 하옵소서.’라는 말이, 둘이라서 나뉘어져서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become one이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이다.’ 또는 ‘하나로 있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be one입니다.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말과, ‘하나이다.’ 또는 ‘하나로 있게 해 달라.’는 말은 다른 것입니다. 여기서의 원래 뜻은 후자로, 하나로 있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말은, 이미 둘이나 셋이 되었거나, 나뉘어 분산 되었다는 것을 전재하는 말입니다. 나누어지고 분산된 것을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하나로 계속 존재하게 해 주옵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지금까지 나누어지거나 둘로 셋으로 분리가 된 적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데, 그런 상태로 계속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앞으로 제자들이(성도들이), 세상으로부터 당하는 시험과 환란과 핍박이 심할 것입니다. 그럴 때라도 이들이 나누어지지 않고, 지금처럼 하나로 계속 존재하게 해 주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21절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있다는 말은, 일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예수의 하나됨과 일치는, 오늘날 우리와 교회의 일치와 하나됨의 근거이자 모델이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말은, 주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띄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반복해서 말씀하셨는데(18, 21, 22, 25), 그 까닭은, 일치의 궁극적 목적이,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냈다는 사실을, 세상으로 믿게 하려는데 있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21절은 주님이, 아버지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들도 하나가 됨으로,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
22절을 보십시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제자들에게 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영광이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부활이후의 영광을 말할 것입니다. 부활은 결국 구속의 완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영광을 주셨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구원은 곧, 우리로 하나 되게 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광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은, 곧 그들로 하나가 되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의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매 주일 고백하는 거룩한 공교회이지 않습니까. 거룩한 공교회는 하나의 교회입니다. 우리가 하나의 교회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 영광을 우리에게 주셨음으로,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3절의 말씀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 있을 때 나타나는 결과가, 성도의 온전함과 하나됨입니다. 신자들은 이런 연합의 삶을 통하여 더 온전함을 이루어,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사랑하심 같이 우리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서로 시기하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주님 안에서 하나된 모습으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세상 가운데 드러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21-23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본 결과 공통된 것은, 주님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같이, 오늘날 성도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로 존재해야 합니다. 절대로 헤어지거나, 나누어지거나, 분리되거나, 파당을 짓거나, 둘로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로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한 몸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4-5).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도 거의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저와 여러분들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그 한 몸의 지체의 각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이고, 분리될 수 없고, 쪼개질 수 없고, 한 몸에 붙어있지 않으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한 몸으로 존재해야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성령의 역사는, 하나 되게 하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싸우게 만들고 사분오열시켜 파괴시키는 일입니다. 사탄이 하와와 아담 속에 들어가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거역했고, 아담과 하와가 서로 죄를 전가하며 마음이 갈라졌습니다. 이때부터 부부싸움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탄이 가인 속에 들어가니까, 그 마음이 파괴되어 동생 아벨을 쳐 죽이는 첫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사탄이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가니까, 배신하여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사탄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속에 들어가니까, 마음이 갈라져 하나님과 사도들을 속여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사탄은 지금도 계속하여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 역사하여, 하나님과 분리시키고, 부부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목사와 교우 사이, 교우와 교우들 사이를 이간시켜 갈라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탄은 시기와 분쟁과 싸움을 통하여, 서로를 분리시키고 서로의 관계를 쪼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하나 되게 하는 일입니다. 둘로 갈라진 것을 하나로 연합시키는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장자 권을 동생에게 빼앗기고, 살기가 등등한 에서를 동생 야곱과 하나 되게 하셨고, 요셉이 자기를 노예로 팔아버린 그 형제들과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려고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엡2:14). 그래서 그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되, 하나로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빌립보 교회에는 두 여성 지도자가 있었는데, 그들에게,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빌4:2)고 권면하였습니다. ... 아무리 선한 뜻을 가졌더라도 하나 되지 못하고, 같은 마음을 품지 못하고 다투면, 하나님의 책망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 되려면 성도들이 ‘주안에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의 마음은 다르기 때문에,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하고, 성령의 지시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다투면 안 됩니다. 교회는 모든 지체들이 한 몸이니 하나 되어야 합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 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 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4-6).
성령은 사단과 달리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한 몸의 지체로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 깨지지 말고 하나로 계속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로 하나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구역도 시기, 질투, 모함으로 인하여 나누어지지 말고 계속하여 하나로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역을 나눌 때는 구역원들이 너무 많아서 분가할 때만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구역원들끼리 비방하고 싸움으로 갈라지는 것은 사탄의 역사이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구역은 하나로, 지속적으로 성장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한국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하여 싸우고 비방하고, 고소하고 분리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교회가 그러면 안 되는데, 의외로 그런 교회가 있습니다. 부목사들이 교인들을 꼬셔가지고, 가까운 곳에 데려가서 개척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을 분리개척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과 비슷한 ‘분립개척’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본 교회가 많은 것을 준비하여 교회를 세워주는 것을 말합니다. 재정적인 지원 뿐만아니라, 사람까지도 지원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개척은 바람직하고 권장할만한 개척입니다. 그러나 분리개척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교회헌법에 보면, 교회를 분열(분리)시켜 나가는 사람을, 면직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과 똑 같이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목사는 그 직위를 면직하는 것입니다. 교인들과 쑥덕쑥덕해서 옆으로 나가서 교회를 하는 것은, 파렴치한 일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를 소망하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세상을 떠나시면서 우리가 하나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시기에, 우리를 하나 되도록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부터 이러지 말고 하나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고, 그 자체가 사회의 본이 되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고 하셨습니다. 예수 안에서 모든 인류는 하나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인종과 상관없이, 남녀노소 구별 없이, 부자나 가난한 자나, 무식한 자나 유식한 자나, 모두 한 몸이고 동일한 성령을 받았으며, 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인 것입니다.
결론
우리 인간의 삶에서 고통스런 것 중의 하나는, 하나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하나 되지 못하면, 그 가정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여럿이 하는 운동경기(줄다리기, 농구, 축구, 야구..)도 마찬가지로, 하나 되지 못하면 결코 우승할 수 없습니다. 전쟁(공병, 포병, 육해공군...)도 마찬가지이고, 교회(각 사람, 각 기관..)도 동일합니다. 하나 되지 못하면 전쟁에 승리할 수가 없고, 하나님의 일을 역동적으로 해 나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함을 받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가족’(엡2:19)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상호간에 형제, 자매라 부르고 있는데, 영적인 가족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가족임으로, 결코 둘로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절대로 나누어지지 않고 하나로 계신 것처럼, 우리 또한 그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사탄이 별별 수단 방법으로 공격한다 하더라도, 하나로 계속 존재하는 소망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