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출애굽기2:1-10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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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출 2:1-10, 아므람과 요게벳의 헌신
7월의 주제가 ‘훈련과 충성’입니다. 그래서 둘째 주에는 훈련에 맞추어서 설교를 했고, 지난주에는 충성에 맞추어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은 다시 ‘훈련’에 맞추어 설교를 하고, 다음 주에는 충성에 맞추어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훈련과 충성, 훈련과 충성-이런 순으로 설교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주의 설교는 사사기 2장의 말씀에 근거하여, ‘다음세대냐, 다른 세대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호수아와 장로들의 세대는, 후손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여, 신앙을 이어가는 다음 세대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조상들에게 행한 하나님의 큰 구원 역사를 알지 못했던 다른 세대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변질된 세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들보다 하나님을 더 잘 알고, 더 잘 믿고, 더 귀하게 쓰임 받는 다음 세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의 배경으로는 당연히 출애굽기 1장이 됩니다. 가나안 땅에 심하게 기근이 들자 야곱은 그의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에 내려가서 살게 됩니다. 그 당시 애굽에는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어 있었고, 또한 풍족한 양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안전하게 넉넉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야곱도 죽고 요셉도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번성해 나갔습니다. 애굽에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일어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하고, 고통과 괴로움을 주게 됩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바로는 아예, 이스라엘 민족을 말살하려는 정책을 펴게 됩니다. 이윽고 히브리인 중에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다 죽이라, 요단강에 던지라는 명령을 하게 됩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가운데서, 이제 출애굽기 2장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모세의 출생을 배경으로, 그의 부모들과 가족들이 얼마나 헌신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들의 헌신과 교육을 통하여, 모세는 훌륭한 민족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전재로 합니다. 결국 하나님이 아므람과 요게벳과 미리암과 또한 바로의 공주를 통하여 역사하심으로, 모세는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 갈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1. 모세의 출생과 그를 살리기 위한 가족들의 헌신(1-4)
한 레위 사람이 같은 지파의 한 여자에게 장가를 들었습니다. 이 남자의 이름이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른 성경에 비추어 보면, ‘아므람’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민 26:59, 대상 6:3). 이 아므람의 조상이 고핫이고 그 윗대 조상이 레위입니다. 그러므로 아므람은 레위의 몇 대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아므람이 한 레위 여자에게 장가를 들었다고 했는데, 그 여자 이름도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른 성경에 의하면, 요게벳입니다( ). 그런데 여기 ‘장가들었다’는 표현은 결혼했다는 의미가 아니고, 부부관계를 가졌다라는 뜻입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은 이미 오래 전에 결혼을 했고, 이 시즘에서 다시 부부관계, 즉 성관계를 가졌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모세의 출생 이전에, 이미 이 부부사이에 모세보다 훨씬 연상의 누이인 미리임(4)과, 세 살 위인 형 아론이(4:14)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아들이 생겼는데, 그가 바로 미리암과 아론을 뒤이은 셋째가 되는 것입니다. 요게벳은 그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을 숨겨서 키웠다고 했습니다(2). 여기서 잘 생겼다는 말은, 외형적인 모습만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라, 내면의 존귀함과 뛰어남도 보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어머니가 그 아들을 보니까 외모만 잘생긴 게 아니라, 내면의 훌륭한 점도 보여서, 그 아들을 키웠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들에게는 이런 직감이 다 있나요? 아니면 누구든지 제 자식 낳으면 다 그러는 건가요? 요게벳은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을 바라보자 즉시로, 아들의 내외적인 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3개월을 숨겨서 키우는 것입니다. 지금은 바로 왕의 명령으로, 히브리인 중에 남아가 태어나면 전부 나일강에 던져서 죽여야만 합니다. 이 잔인한 왕의 명령 때문에 아무런 죄도 없는 그 가엽은 히브리인들의 수 많은 아이들이 강물에 희생되었을 것이고, 그 핏덩어리 자식을 버려야 하는 부모들의 고통과 슬픔과 한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대두분의 히브리인 산모들은 아들을 낳으면, 할 수 없이 그 아들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아므람과 요게벳은 준엄한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아들을 3개월 동안 키운 것입니다. 부모들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 아이가 장차 이 민족의 지도자가 될 것이니, 잘 키우라는 말씀이 계셔서, 석 달을 키운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나 지시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이 아이가 민족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아들이 잘생긴 것만 보고, 왕의 명에 불복하며 모험을 하며 키운 것입니다. 어쩌면 부모는 자기들의 생명을 걸고, 아이의 생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숨겨서 아이를 키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아이의 울음소리도 더 커져만 갔고, 남들에게 발각될 위험이 더 많아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이 아이의 정체가 발각이 되면, 부모들과 이 아이의 생명은 하루살이처럼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 아들을 나일강에 버리기로 한 것입니다.
단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갈대 상자를 만들고, 거기에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서, 나일 강 갈대 밭 사이에 두었습니다. 부모들이 이렇게 해야만 하는 그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무슨 생각을 하면서 갈대 상자를 만들었겠습니까? 갈대를 가로와 세로로 엮으면서 조금이라도 틈새가 벌어지면, 다시 촘촘히 엮으면서, 손등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한줄 한 줄을 엮었을 것입니다. 뚜껑까지를 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무진과 역청을 바를 때에도 꼼꼼히 여러 번 덧발라서 말렸을 것입니다.
이 갈대 상자를 만들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들 살려 주세요. 누군가에 의해서 건짐을 받아서 살아만 있게 해 주십시오.’ ‘이 어린 생명을 아버지 손에 의탁합니다.’
갈대 상자에 아이를 눕히고,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누이 미리암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그 갈대상자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당시 누이의 나이가 14-5세 정도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동생의 생명이 달려있는 갈대상자를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갈대상자가 잘 못되면 동생을 구해 보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볼 때, 모세의 출생으로 인하여, 그 가족들은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아들이요 동생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하여 3개월 동안 숨 죽여 가며 아이를 숨겨서 키운 것은, 당시의 상황으로서 이것은 목숨을 건 행동입니다. 또 뿐만아니라, 이제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서, 갈대 상자를 만들어, 아이를 그 안에 넣고 갈대 숲 사이에 두기도 합니다. 누이 미리암은 동생의 생명을 가엽게 여기며,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기도 합니다. 이정도면 가족들이 아이를 위해 헌신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1-4절까지의 마지막 부분의 뉘앙스는, 이들 가족은 자기들 힘으로는 이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신뢰하고 맡기는 분위기임을 볼 수 있습니다.
2. 모세를 구하는 바로의 딸(5-9)
바로 왕의 딸이 목욕을 하기 위해서 나일강으로 나왔습니다. 여기의 바로의 딸은 하셉수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애굽의 공주였습니다. 하셉수트 공주가 시녀들과 함께 나일강에 목욕하러 온 것은 단순히 자기의 몸을 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종교적 정결의식이었던 것입니다. 애굽의 왕궁에는 나일강의 물보다 더 좋은 물과 목욕시설이 너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궂이 이곳까지 몸을 씻기 위해서 나올 필요는 없었던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나일강을 신성시 하였고 이곳에서 몸을 씻으면, 몸과 마음이 정결하게 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일강에 나와서 목욕을 하려고 했던 공주가, 모세가 누어있는 갈대상자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때와 시간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습니까? 갈대상자가 갈대사이에 놓이자, 바로 그 시간에 그 장소로 공주가 목욕을 하러 오고, 또한 공주가 그 갈대상자를 먼저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시녀들이 먼저 보았다면, 왕의 명령을 잘 알고 있었던 시녀들이, 히브리 아이를 공주에게 데려가지 않고, 자기들이 처리하였을 것입니다.
공주가 그 갈대 상자를 보고, 시녀들을 보내어 가져다가 열어보니까, 그 속에서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울었다’는 말은 공주의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이고, 또한 모성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게 됩니다. 아버지하고는 달리 공주는 동정심이 많은 고운 성품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공주는 금방 울고 있는 아이가 히브리인 아이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공주의 아버지 바로 왕은 모든 히브리 남아를 죽이라고 했지만, 공주는 아버지의 명을 어기고, 오히려 히브리 아이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마음인지 모르지만, 딸은 아버지의 정책과 반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유독 이 아이에게만 베푸는 호의와 사랑이 남다르다는 겁니다. 아버지가 죽이라고 한 그 아이를, 공주는 건져서 살려 줍니다.
이 때, 갈대 사이에서 지켜보고 있던 미리암이 제 빨리 공주 앞에 나서서,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7)라고 말합니다. 애굽 사람들은 히브리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부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미리암은 그래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젖을 먹일 자를 찾아보리이까라고 했던 것입니다.
공주가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즉시로 미리암은 자기 어머니를 불어와서 공주 앞에 세운 것입니다. 이것이 미리암의 지혜인지, 아니면 어머니의 작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착착 맞아 가는 것은 분명합니다. 공주가 모세의 생모에게,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9). ‘이 아이를 데려가라’는 말은, 공주가 요게벳을 궁중으로 불러 모세를 키우지 아니하고, 이 아이를 요게벳의 집으로 데려가서 키우도록 위탁했다는 뜻입니다. 바로의 명령 때문에 결코 히브리 아이를 궁중에서 키울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튼 요게벳에게 있어서는 잠시이지만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이입니다. 공주가 이 아이를 데려가라고 했을 때, 그 아이를 받아 다시 가슴에 안았을 때의 어머니의 기쁨과 감격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했겠습니까? 눈물을 흘리며,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을 것입니다.
또한 ‘젖을 먹이라’는 것은, 단순히 수유한다는 뜻만이 아니라 ‘양육하라’는 뜻도 있습니다. 젖을 먹여 몸을 자라게 할 뿐만아니라, 교육을 하여 지혜롭게 자라도록 하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요게벳은 자기 아들에게 젖을 먹일 뿐만 아니라, 히브리인의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유아교육까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의 유아교육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여기 요게벳도 어린 모세에게 신앙교육을 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삯을 주리라’는 말은, 공주가 모세를 키우도록 요게벳을 고용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은혜요 축복입니다. 어머니 요게벳은 아들을 잃을 뻔 하였는 데 그 생명을 찾았고, 자기 손으로 젖을 먹일 수 있었고, 또한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 교육을 시킬 수 있었고, 거기에다가 내 아이를 내가 키우는데 양육비까지 받고, 그리고 강제 노동에 나가야 하는데 노역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 문단에서는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이렇게 저렇게 하셨다는 표현은 나오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능하신 큰 손이, 바로의 공주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미리암으로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하게 하시고, 공주의 배려로 요게벳이 최상의 조건으로 자기 아들 모세를 기를 수 있게 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저렇게 된 것입니다.
3. 모세의 성장과 그 이름(10)
모세는 어머니 요게벳의 품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자랐다는 것은 어머니의 젖을 먹지 않아도 될 나이만큼 충분히 성장했다는 뜻입니다. 만으로 3-5세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이 때까지 어머니는 모세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주었습니다. 하루하루 젖을 먹일 뿐아니라, 최선을 다하여 신앙 교육을 시켰을 것입니다. 이제 그가 어머니의 품을 떠나 애굽의 궁전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사는 것입니다.
공주는 왕궁에 들어 온 그 아이의 이름을 물에서 건짐을 받았다는 뜻의 ‘모세’라고 불렀습니다. 모세라는 이 이름은 사실 수동이지만 능동의 의미로도 사용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의 공주에 의해서 물에서 건짐을 받았지만, 그는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에서 건져 낼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 여인에 의해서 이름이 주어졌지만, 그 이름에는 물에서 건져 낼 자라는 계시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어머니의 손에서 떠난 모세는, 왕궁에서 왕자로써의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성장을 합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어린 시절 애굽에서의 모세의 교육받음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행 7:22). 모세가 애굽의 왕궁에서 배운 과목은 기하학, 어학, 역사, 의학, 군사학 등이었을 것이고, 이런 공부는 보통 사람이 할 수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당시 최고의 문명국에서 남부럽지 않은 왕실 교육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입니다.
적어도 35년 이상 학문을 익힌 모세는, 이제 나이 40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후에 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광야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결론
애굽의 바로 왕은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고 노동력을 착취하고 더 나아가서 그들의 생명까지 빼앗아 갔습니다. 한 민족을 자기들의 노예로 삼았고, 남아가 태어나면 죽이라고 한 것은 결국 민족 말살 정책을 시도했던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당하였던 고통과 괴로움과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억압과 포행이라 할지라도 적들의 방해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히브리인의 남아가 태어나면 다 죽이라는 명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 아이를 살려주셔서, 살게 하십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이 아들을 낳았을 때, 막막하고 어찌해야 할 줄을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들의 준수함을 보고 3개월을 키우게 됩니다. 이 3개월도 매 순간마다 기도하며 마음조리며 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갈대상자를 만들고, 그 안에 아이를 눕히고 나일강 변에 두는 것입니다. 아이의 누이 미리암도 자기 동생에 대한 애절한 마음으로 갈대상자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절묘한 시간에 바로왕의 공주가 나와서 그 갈대상자를 보고, 아이를 구해줍니다. 사실 공주가 이 아이를 발견했다 할지라도 공주는 외면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면 불쌍하지만 그냥 떠 내려 가도록 방치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를 구해줍니다.
그리고 미리암의 권유로 공주는 이 아이의 유모를 구하게 합니다. 미리암은 지혜롭게 아이의 친 어머니이자 가지 어머니인 요게벳을 소개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요게벳은 자기 아들을 당당하게 젖먹일 수 있게 되었고, 공주로부터 양육비도 받았고, 또한 강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자기 아들에게 젖을 먹이면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앙 인격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유명한 교육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1살에서 5세까지면 이미 성품의 기초를 가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세도 이 기간 동안 신앙적 성품의 기초를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젖을 땐 후 모세는 왕궁에 들어가서, 공주의 지시 하에 왕자 교육을 받게 되어서, 모세는 애굽의 언어와 학문을 통달하게 됨으로, 한 민족의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는 사람으로 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에서 건짐을 받은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해방을 시키는데 쓰임 받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적으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물에서 건져 낸 것입니다. 또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인도하는 민족의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던 사람이고,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계명의 표준이 되는 10계명을 받았던 사람이고, 120세가 되었어도 그 눈이 흐려지지 않았고 그 기력이 쇠하지 아니했던 사람입니다. 주님이 변화산에서 신령한 몸으로 변화가 되어, 대화를 나누었던 상대 두 사람 중의 하나가 모세였습니다.
40년은 애굽에서, 40년은 미디안 광야에서, 나머지 40년은 출애굽하여 요단강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고 지도했던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멋지게 사역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이런 저런 사람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아므람과 요게벳과 미리암, 더 나아가서 바로의 공주를 이용하셔서, 히브리인 한 아이를 살리시고, 양육과 교육을 시키시고, 마침내 귀한 일꾼으로 만들어서 크게 사용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모 여러분 자녀들을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고요, 신앙교육 잘 시키시고, 일반 학문도 열심히 공부하게 해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이 민족의 일꾼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들이 다음 세대를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의 명령에는 저항을 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이들 교육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가문에서, 모세와 같이 이 민족을 살리고 이끌어 가는, 민족의 지도자가 많이 나기를 바랍니다.
이번 학생부수련회와 아동부 성경학교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아이들을 위하여 갈대상자를 만드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을 신앙으로 잘 양육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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