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사도행전2:37-4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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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행2:37-42, 말씀을 통해 일어난 부흥의 역사
사도행전 2장은 대단히 중요한 장입니다.
왜냐하면 오순절에 성령 충만 사건과 베드로의 처음 설교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주 밀접한 관계 속에 있으며, 또한 이 둘의 결과도 마지막 부분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짧게 잡았지만 사실 설교의 내용 범위는 굉장히 넓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간단히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설명을 하겠습니다.
1. 오순절의 성령 충만 사건입니다( ).
본문에 나오는 오순절은 무슨 날입니까? 오순절은 오십일 째 되는 날이라는 말인데, 유월절 후 첫 안식일 다음 날부터 50일 째 되는 날을 말합니다. 흔히 이날을 칠칠절, 맥추절, 초실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처음으로 보리를 추수해서 그것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오순절은 유월절과 장막절과 더불어 유대교의 3대 절기에 속하는 것이며, 이때에 모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개종한 이방인까지도 함께 모여서 절기를 보냈습니다.
이 오순절이 다가오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 온 것입니다. 그날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에게 다 임한 것이 아니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아버지의 약속을 기도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이날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40일 동안 계시다가 승천하시고 그 이후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한 지 10일 만에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부활이후 50일째가 되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고 성령강림은 예수님 부활이후 50일, 승천이후 10일 만에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120명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있을 때 홀연히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요엘서에 예언된 그 성령이 오셨습니다. 아버지의 약속이 이 땅위에 성취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2-3절의 말씀을 볼 때, 성령님이 임하실 때 참으로 신비롭고 희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성령강림의 현상을 상세히 말하고 있는데 먼저 성령은 1)한곳에 모여 있을 때 일어났습니다. 2)홀연히 나타났습니다. 갑자기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3)하늘로부터 임하였습니다. 성령강림의 신적기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4)강한 바람소리가 나타났습니다. 로버트슨은 이 소리를 ‘거칠게 생겨난 강풍과 같은 반향음’이라고 하면서, 일종의 회오리바람과 같이 돌진해 오는 소리라고 지적했습니다. 5)급하게 나타났습니다. 다급하게 갑자기 임하셨습니다. 6)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불이 맹렬히 타오르는 것처럼, 번개불처럼 임하셨다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에는 불덩어리 하나가 나타났지만 그 형상은 이쪽저쪽으로 나뉘어져서 그 결과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 위에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7)각 사람과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했습니다. 각 개인에게도 임하였고, 온 집안에 가득했다, 충만했다는 말씀입니다.
120명의 성도들이 모두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방언을 말했습니다(4절).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8). 이때의 방언은 신령한 언어로서의 방언이 아니라, 외국어 방언인 것입니다. 천하각국으로부터 온 사람들에게 난 곳 방언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모인 유대인들 중에는 대부분 경건한 유대인들이었으나 천박한 유대인들도 섞여있었습니다. 그들이 방언을 듣고 조롱하면서 술주정뱅이라고 말했습니다. 4절에 조롱했다는 말은 ‘농담’으로 여겼다는 뜻입니다. 마치 롯이 자기 사위에서 복음(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셨던 일)을 전했을 때,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던 것과 같습니다. 그들도 방언하는 사람들을 비난했고,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역사를 술 취한 행위로 치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
이때 베드로가 비난하는 유대인들과 그 외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두 가지 내용으로 설교를 합니다. 그 첫 번째가 지금 제자들은 술 취한 것이 아니라, 이것은 요엘 선지자의 예언 성취라고 주장을 합니다(2:14-21).
지금은 때가 제 3시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은 낮이기 때문에 취할 시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보통 오전 9시에 기도를 하고 10시에 아침 식사를 하는데 주로 빵을 먹습니다. 고기와 술은 저녁에 가끔씩 먹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지금의 시간을 정확히 제시하면서 사람들이 술 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순절의 성령 충만이 요엘의 예언 성취라면, 요엘의 예언은 무엇입니까? 요엘서 2장에 보면 아래와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욜2:28-30).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영이신 성령을 만민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하셨고, 그러면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고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의 이적을 땅에 베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초자연적인 이적들이 하늘과 땅에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요엘은 계속하여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전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핵심은 ‘성령이 임하심으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 본격적으로 오순절 이후에 나타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오순절에 모여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요엘의 예언이 지금 이곳에 성취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방언하는 이들이 술 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에 취하였다는 말씀이고, 그 성령은 선지자의 예언을 따라 이곳에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베드로는 모인 유대인들에게 설교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한 두 번째 내용은, 예수님의 죽으심, 부활, 승천을 성경적으로 증거 한 것입니다(22-36).
앞에서는 요엘서 2장의 말씀을 근거로 성령강림의 사실을 증거 했는데, 이제는 시편 16편 8-11절을 인용해서 성령의 강림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결부시켜 입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설교를 통하여 지금으로부터 50일 전에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는 누구이시며,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와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어떤 관계인가를 해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어떤 분이십니까? 본문 22절에서는, ‘큰 권능과 표적과 기사를 베푸신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이런 것을 행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23절과 24절에서는, ‘예수가 법 없는 유대인들의 손에 의해서 죽게 되고, 죽은 자 가운데서 하나님이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정확히 선포한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을 선포한 베드로는,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것을 다윗의 시편을 인용해서 확증하고 있습니다. 시편 16편의 말씀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성도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이것은 다윗의 시 이지만 다윗 자신을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죽었고 그 무덤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부활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위의 본문은 ‘내 육체가 온전히 살며...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며 성도를 멸망시키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하심으로, 마치 다윗 자신에 대한 말씀처럼 되어 있으나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편 기자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예언한 것이라고 베드로가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육체가 온전히 살며, 그리스도의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않으며 멸망시키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33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하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리스도를 부활케 하셨고 또한 그를 높이 들어서 그의 보좌 우편에 앉히시고 그에게 가장 높은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것뿐 만 아니라, 그 때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즉 성령을 그에게 주셨으며 그는 오순절 날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그 성령을 물 붓 듯 부어주셨습니다. 곧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성자께서 받아서 성도들에게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적으로 성령은 영원 전부터 성부와 성자로부터 보냄을 받은 분으로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요15:26, 16:7).
이어지는 34-35절의 말씀에서도, 시편 110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베드로는 다윗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간 것이 아님으로, 이 말씀도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며 나사렛 예수께서 이 말씀을 그대로 성취하셨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시편 110편의 말씀을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보좌 우편으로 높아지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본문의 앞부분을 통하여 요엘의 예언대로, 성령이 임하시어 방언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시고, 또한 다윗의 시편을 통하여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확실하게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베드로는 성령 강림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연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증거 하는데, 전부 구약의 말씀을 근거로 설교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심을 전하면서, 구약에 예언 된 말씀을 근거로 설교했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을 근거로 그리스도를 전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설교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최초의 설교이며, 성경을 근거로 성령강림의 역사적 사실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입증한 최초의 기독교 변증이기도 합니다. 너무 멋진 은혜롭고 강력한 모범적 설교였습니다.
3. 그 결과입니다(37-42).
베드로의 설교는 한마디로 유대인들에게 충격적인 설교였습니다. 이 설교를 듣고 두려움에 떠는 제사장과 관원도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내가 어찌할꼬 하며 고민 속에 빠진 자도 있었습니다. 이런 다양한 생각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기에 좋은 반응들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37-40). 저들은 베드로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마음의 찔림을 받았고,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으며, 예수를 믿으면 어떤 은혜가 주어지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과 관계하여 회개, 믿음, 성령에 대한 이 메시지는 참으로 중요한 교리적 설교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의 대상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우리 하나님이 부르시는 모든 자에게’라는 사실을 통하여 선택적 구원을 가르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설교의 구체적인 결과가 41절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41). 단번에 숫적인 대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질적인 부흥을 도외시 하지 않은 숫적인 부흥을 말합니다. 이것 역시 말씀을 통해 마음의 찔림을 받으니까,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기존 교회의 수에 더하여지게 된 것입니다. 하루에 3,000명이나 세례를 받고 제자의 수에 가입하는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이 숫적인 부흥은 먼저 질적인 부흥, 마음의 부흥의 결과인 것입니다. 심령의 부흥이 일어나니까 외부적인 성장도 자연히 일어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많은 수가 한 곳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한 곳에 모인 그들은 어떻게 살아갔습니까? 그들의 삶의 모습, 다시 말해 영적, 육적으로 부흥 성장한 그들은 어떤 교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까?
42절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성경공부를 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신앙생활의 잣대이기 때문입니다. 생활의 참된 지침이 되는 것이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의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 구원 받은 많은 사람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교제함으로 떡을 뗀다.’ 이 교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서로 교제하는 것은 교제 중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고, 상대방의 장단점을 알고 도와주고 세워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제는 이렇게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모임인 것입니다. 나와 상대방을 알아가는 모임입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떡을 뗀다’는 말은 성찬을 말할 수도 있으나(부르스), 보통 단순한 음식을 먹는 애찬(love feast)을 말한다고 봅니다. 이 애찬은 교제의 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는 말씀입니다. 조금 전에는 성도들끼리 음식을 나누며 교제하는 것을 말하지만, 이제는 ‘하나님과의 교통’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수평적 교제도 힘썼고, 수직적 교제도 힘썼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라는 말인데 이는 ‘오직 한곳으로 전혀’라는 말로, 기도하는 데만 마음을 쏟아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지금 세상이 아무리 요동하고 높은 파고가 있어도 그런데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기도에 전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는 생활입니다.
이처럼 베드로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도들이 내가 어찌할꼬하며 회개하여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고, 3천명 이상이 함께 모여, 말씀을 배우고 서로 교제하며, 오로지 기도하는데 힘쓰는 성도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일어나 부흥의 역사가 우리 교회 안에서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베드로 사도는 위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성경을 근거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너희들이 보는 이 같은 현상은 술 취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이 임한 현상과 결과임을 전하였습니다. 또한 시편을 근거로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셨고 하나님이 그를 높이 세워주셨으며 아버지의 약속을 그를 통하여 모든 성도들에게 부어주셨음을 분명히, 담대히 전파하였습니다.
성경적인 설교가 행하여졌을 때 나타난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회개의 역사로 하루에 3천명이 주 앞으로 나오게 됨으로 초대교회가 대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게 되는 것은 분명 내적인 부흥이고, 그런 자들이 다함께 하나님 앞에서 교제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며 교회의 제 기능을 역동적으로 감당하는 것은 분명 외적인 부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기도와 말씀을 통한 내외적 부흥의 역사가 일어남으로 교회가 평안히 든든히 서 가게 된 것입니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인간들은 천사처럼 살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짐승처럼 행동하며 산다.” 인간은 천사가 아니면서도 천사 같은 존재로 살아가겠다는 높은 이상을 내세우는데, 실제로 사는 것은 짐승처럼, 그것도 가장 사악하고 더러운 짐승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새는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이 사람보다 더 대접을 받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이번 총회가 열렸던 장소가 콘도였는데, 1년 전에는 사람들이 사용하던 장소였는데 이번에 가니까, 넓은 곳이 개가 사용하는 개콘도로 바뀌었고 수영장도 개 수영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도 저런 호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히려 미물의 개새끼가 30평 콘도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시간시간 산책도 하고 고급 간식도 먹으며 수영도 즐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치 사람같은 개의 모습을 보는듯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점점 더 개같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봅니다. 인간의 인격과 삶은 점점 더 악해지고 잔인해지고 파렴치해지는 것 같습니다. 양심은 더더욱 무디어져서 양심불량의 시대가 아닌 양심 소멸의 시대를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죄를 죄로 알지 못하고 죄를 지어도 회개할 줄 모르는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새는 회개라는 말을 하기도 힘들고, 듣기도 힘들고, 회개하기도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개 같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입는 길이고, 심령부흥을 경험할 수 있는 길입니다.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4개 장로교 선교회 연합사경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아침에 경건의 시간과 찬양, 그리고 3시간 동안의 성경공부가 진행되었습니다. 오후에는 노방 전도 시간이 있었고, 저녁시간은 남자만 1500명 이상 모이는 특별전도집회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집회의 말씀은 설교 제목만 보더라도 그 내용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1월 6일부터 한 주간 매일 저녁 길선주 목사님에 의해 진행된 연합부흥회의 설교 제목은 “맛을 잃은 말라빠진 사람들아,” “이상한 귀빈과 괴이한 주인,” “지옥을 취하랴 천당을 취하랴,” “성령 앞에 숨을 자는 없다” 등이었습니다. 이 말씀들은 회중의 죄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말씀들이었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회중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예리한 칼에 마음의 찔림을 받았습니다.
저녁 1부집회가 감동과 감격으로 끝난 후 모인 회중의 3분의 2가 집으로 돌아가고, 약 1,000여명의 남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는데, 이 장면을 기록한 스왈런 선교사의 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간증 차례를 기다리면서 여러 시간을 서 있었다. 몇몇 사람은 고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펄쩍 뛰고는 자신의 죄를 통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집회는 중단 없이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다. 그 동안에 가장 소름끼치는 일련의 죄에 대한 고백들이 방해받지 않는 가운데 있었다. 사악하고 수치스러운 모든 죄들이 아주 깊은 죄의식 하에 고백되어졌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는 마치 가장 무시무시한 고통에 처한 것처럼 갑자기 무섭게 통회하고 애통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마치 숨을 쉬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처럼 자기 가슴을 치기도 했다. 때로 그들 중에는 갑자기 마룻바닥에 엎어져 몹시도 통회하는 가운데 손으로 바닥을 연타하기도 했다.“ 그 놀라운 역사의 현장에 그레함 리 선교사와 함께 있었던 매큔 선교사가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아더 브라운에게 보내는 편지 가운데 이런 사실이 분명히 묘사되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 집회는 저녁 7시에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회는 새벽 2시에야 끝났습니다. 하나 둘씩 일어나 자신들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몇 사람은 믿기 전에 자기 친구를 살해했음을 고백했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모조리 범했음을 고백했으며, 교회 직원들이 도둑질했음을 고백했고, 그들 가운데 있었던 질투와 미움도 고백했습니다... 상당 수가 교회 지도자들인 이들 1,000여명이 집으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이 임하겠는가! 그것은 측량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다음 날인 1월 15일에도 이와 비슷한 죄의 회개 운동이 있었고,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는 더욱 거세게 나타났습니다. 그날 밤 어느 장로는 강단으로 나와서 강대상을 붙잡고, “나는 하나님을 거슬러 싸운 죄인입니다. 교회의 장로인 나는 방선교사님을 미워한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통곡을 했답니다. 그는 바닥에 고꾸라져 머리를 쥐어뜯으며 죽기 직전에 투쟁하는 것처럼 온 몸을 흔들며 흐느끼고 울부짖고 전율하고 주먹으로 강단을 내리치면서 그는 무시무시한 자신의 죄악들을 토로하였습니다. 이 장로의 고백은 마치 기름에 불을 던지듯이 그곳의 집회를 회개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고꾸라지자 온 청중 가운데 갑자기 회개의 울음 바다가 되어 너나할 것 없이 그곳에 모인 모든 남자들이 울고 또 우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앞에 자신들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회개가 터져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간구는 한마디로 죄로 인한 탄식 그 자체였습니다.
부흥은 말씀을 듣고 마음의 찔림을 받아 내가 어찌할꼬하며 회개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초대교회와 평양 장대현교회와 같은 이런 부흥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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