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디모데후서2:1-4 개역개정
-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딤후 2:1-4,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영적인 아들 디모데를 가리켜 부른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봄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제가 일병 때 휴가를 받아서 시골집에 내려갔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가는데, 전방에서 근무하던 한 중령이 나를 부르더니, 인사를 안 한다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래서 제가 ‘죄송합니다. 충성’-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자기보다 계급이 높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다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중령이 인사를 받고도 속이 편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시 부르더니, ‘야 네 직속상관이 누구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속상관 관등성명을 댔지요. ‘국방부장관 윤성민 님, 총무과장 공군 준장 김영배 님, 중대장 대위 서석태 님’ 이상입니다. 그랬더니 ‘아, 그래. 가라’고 하셨습니다. 제 소속이 국방부였습니다. 직속상관이 국방부 장관 윤성민 님입니다.
군에 있을 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의 소속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입대하자마자 자기가 어디에 속해있는지를 분명히 알라고 직속상관 관등성명을 외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소속이 분명한 것입니다. 디모데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병사였던 것처럼, 또한 디모데를 그렇게 부르고 있는 바울조차도 그리스도의 군사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주님의 소유된 병사입니다. 그의 소유라는 말은 곧 소속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 속한 예수의 병사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영어로 church라고 하고, 스코틀랜드에서는 켈크(kerk)라고 하고, 독일어로는 ‘키르헤’(kirche)라고 하는데, 이 모든 말이 헬라어 큐리아케에서 왔는데, 그 말은 ‘주께 속한’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 모든 성도는 ‘주께 속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거룩한 공교회는 바로 주께 속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즉,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께 속하여 있는 사람들임으로, 내가 누구에게 속하여 있는지만 분명히 알아도, 상당한 영적 자부심을 가지고 자존감 높게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옛말에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을 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도 개헤엄은 양반 신분에 걸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양반은 추워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추워서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빙 둘러 서 있으면, 양반은 그 사이에 끼어들어서 손만 내밀어서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는 그 신분에 어울리게 행동을 한다는 말입니다. 옛날 왕의 아들이나 지금 대통령의 아들이 돈 몇 만원 때문에 범죄 하겠습니까? 자기가 ‘왕자요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신분 때문에,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그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군사들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큐리아케’ 주께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일반 군인은 때가 되면 전역을 해야 하지만, 주께 속한 예수님의 군사는 전역이 없습니다. 우리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께 속한 영원한 주의 군사들입니다.
주께 속한 그리스도의 군사는 주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군인 그러면 떠 오르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훈련입니다. 청년들이 나라의 부름을 받게 되면 먼저 훈련소에 들어갑니다. 훈련소에서의 하루 종일 고된 훈련을 받습니다. 전투를 위한 훈련, 극기 훈련, 유격훈련, 사격훈련, 정신훈련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훈련을 받습니다. 이런 훈련은 다 힘이 듭니다. 힘들어도 이런 훈련을 받아야만 좋은 군사가 될 수 있고, 유사 시 적과 더불어서 싸워서 승리하는 군사가 될 수가 있습니다.
영적 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훈련은 당연한 것입니다. 말씀훈련, 기도훈련, 전도훈련, 봉사훈련, 겸손훈련, 인내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훈련은 고난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고난을 받더라도 계속 영적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하셨고, 디모데후서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또한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며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군사 된 우리가 훈련을 받다가 고난이 올 때에, 이 고난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잘 받게 되면, 주님이 쓰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능력 있는 훌륭한 군사가 될 수가 있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의 병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헤롯인은 헤롯이 주는 녹을 먹고 살고, 가이사인은 가이사가 주는 월급으로 사는 사람들인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병사들도 주님이 공급해 주시는 것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주님의 공급하심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본문에 보면,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1)라고 하셨고, 4절에는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말씀이 이를 증명합니다. 주의 군사는 주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 사는 것이고,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아도, 주님께서 시시 때대로 공급해 주시는 것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군인들이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자기들을 군인으로 부른 나라에서 다 공급해 주는 것처럼, 주님께 속한 주의 군사는 주님께서 선한 목자가 되셔서 책임져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그리스도 예수 영적 군사로 살았는데, 혹시나 양식이 없어서 굶은 적이 있나요, 옷이나 신발이 없어서 벗고 다닌 적이 있나요, 잘 곳이 없어서 찬바람과 눈비 맞으며 처량하게 자본 적이 있나요, 심지어 여러분의 가족들에게도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까?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를 영적 군사로 부르신 하나님이, 그동안도 먹이시고 입히시고 재워주신 것입니다.
앞으로도 여전히 나는 그리스도 예수의 병사임으로, 주님께서 나의 필요를 채우시고,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날마다 푸른 초장과 시냇물가로 인도해 주시고, 악의 세력이 틈타지 못하도록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보하여 주실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 동안 함께 하사,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공급하시고 은혜 주셨던 그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의 가정을 그렇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요새 유행하는 가스펠 송 중에, ‘오직 예수 뿐이네’라는 곡이 있습니다. 가사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참된 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주님은 여전히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병사는 목자 되시는 예수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칼빈이즘이라 불리는 로마서 11장 36절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만물의 기원은 하나님이시고, 그 모든 만물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것이고, 결국 그 만물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하셨습니다. 만물 중에 특별히 그리스도의 군사들인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사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그리스도 예수의 병사는 예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4절에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그것은 다 공급해 주니까 자기 생활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 받아서 살아가는 사람은, 오로지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해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 한 가지만 충실히 하면 되는 것입니다.
군인들은 의무병이든 직업군인이든 불러서 세워준 자가 국가이기 때문에, 국가를 기쁘게 해 야 하고, 국가에 유익을 주어야 하고, 유사시에는 국가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목적으로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 때문에 국가로부터 녹을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람들을 보면 개인적이고 굉장히 자기중심적이고 사생활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그런 사람들이고 또한 그런 사회입니다. 미국사람들은 사생활 침범하는 것을 너무 싫어해요. 그런데 어떻게 미국 젊은이들이 그런 교육을 받고 그런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이, 군대에 입대를 하거나 전쟁에 나가게 되면, 완전 180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군대라는 집단생활에 들어가면 자기의 사적인 것은 다 내려놓고, 집단으로서, 군사로서, 군대로서 국가를 위해서 그렇게 잘 싸울 수가 없다고 합니다. 미군은 탈영병도 없고, 상관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군인들도 별로 없고, 아주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흐트러짐 없이 잘 움직인다고 합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교육을 시키는 것은 개인주의를 시키는데, 어떻게 군대에 들어가면 그렇게 연합을 잘 해서 전쟁을 잘 치루느냐는 겁니다. 그것은 그것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을 하면, 거기에는 목숨을 거는 미국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 개인 생활의 침해를 받는다 할지라도, 전쟁하는 일이 국가가 자기들에게 준 임무라고 한다면, 그 일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친다는 것입니다. 주어진 일에 목숨을 바치는 정말 멋진 미군인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를 군사로 모집해 주신 주님을 위하여 이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름을 받아서, 주님께 속한 자가 되었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고 있기 때문에, 마땅히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주님이 맡기신 사역에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주님이 주시는 임무라면, 목숨을 다 바쳐 일해야 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나에게 맡긴 사역은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바울이 디모데를 권고한 것처럼, 제자 삼는 것입니다.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2) 내가 알고 믿고 있는 복음을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침으로, 하나님 나라는 번성해 질 것입니다. 재생산의 역사가 거듭되면, 교회는 산술급수적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
옛날에 큰 무게를 재는 저울이 없을 때 코끼리 몸무게를 알고 싶은 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고를 붙였습니다. 살아있는 코끼리 몸무게를 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원하는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끼리의 몸무게를 재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소년이 왕을 찾아 와서, ‘제가 코끼리 몸무게를 재어 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소년은 배 한 척을 준비해달라고 해서, 그 배에 코끼리를 실었습니다. 그러자 코끼리 무게 때문에 배가 물속에 상당히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 때 소년은 물속에 잠긴 배에다, 잠긴 만큼 표시를 하고서는 코끼리를 내리게 했습니다. 소년은 이제 그 배에다 쌀을 한가마니 다섯 가마니 열가마니, 그 눈금만큼 내려가도록 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쌀 가마니를 들어내면서 무게를 달아서 그것을 합산했습니다. 이렇게 그 소년은 지혜롭게 코끼리 무게를 계산해 내었습니다.
너무나도 기쁜 왕은 그 소년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 줄테니까, 얼른 이야기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 소년은 남들이 듣기에 얼토당토 않는 소원을 한 가지 말했습니다. 그 소원은, 첫날에 1원, 40일 동안 주시는데, 날마다 배로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첫날에는 1원, 둘째 날에는 2원 이렇게. 딱 40일만 달라는 겁니다. 왕은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하고, 날마다 소년은 돈을 받으러 왔습니다. 10일이 지나자 왕이 신하에게 물어봅니다. 얼마나 지출이 되는가? 512원입니다. 왕은 허허 웃으며, 코끼리 몸무게 잴 때는 지혜롭고 똑똑한 줄 알았는데, 자신의 소원은 어리석게 말했다고 혀를 찼습니다. 그리고 나서 왕은 그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왕의 신하가 왕에게 헐떡거리며 찾아왔습니다. ‘큰 일 났습니다. 국고가 바닥나게 생겼습니다.’ 왕이 자초지정을 알아보니까, 31일째에 나갈 돈이 10억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40일이 되면, 무려 5천 5백억원 가량이 지출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계산 했길래 이렇게 많은 돈이 되었을까요?
다같이 계산을 한 번 해 볼까요? 1 - 2 - 4 - 8 - 16 - 32 - 64 - 128 - 256 - 512(10일째) - 1024 - 2048 - 4096 - 8192 - 16384 - 32768 - 65536 - 131072 - 262144 - 524288(20일째) - 1048576 - 2097152 - 4194304 - 8388608 - 16777216 - 33554432 - 67108864 - 134217728 - 268435456 - 536870912(30일째) - 1,073,741,824(31일째) - 2147483648(32일째) - 4294967296(33일째) - 8589934592(34일째) - 17179869184(35일째) - 34359738368(36일째) - 68719476736(37일째) - 137438953472(38일째) - 274877906944(39일째) - 549,755,813,888(40일째) 40일째에는 무려 5천 5백억원이란 돈을 지출해야 합니다. 이렇게 곱해 나가는 계산을 우습게 생각한 왕은, 1달이 지나서 그 소년에게 통사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 지혜로운 소년은 승법번식의 원리를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 전에 이미 바울이 승법번식의 원리를 말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하고, 디모데는 충성된 사람에게 전하면, 그 충성된 사람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교회의 부흥은 폭발적으로 일어날 것이고, 세계 복음화는 34년 안에 이루어 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병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다는 말이, 바로 승법번식의 원리를 믿고,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것을 희생적으로 감당함으로, 우리를 군사로 부르신 자를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무사도 정신의 3가지 요소가 뭔지 아십니까? 첫 번 째는 ‘담력’이고요, 두 번 째는 ‘충성’이고, 셋째는 ‘명예’입니다. 이 세 가지가 사무라이 정신, 곧 무사도 정신입니다. 사무라이들은 죽을 때도, 주인을 위해서 칼로 자기 배를 칼로 활복하는 것이 가장 큰 명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냥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위해서 한평생 산 것보다, 마지막 최고의 영광이 주인을 위해서 활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도 자기의 주군을 위하여 이렇게 하는데, 우리를 위해서 피 값을 지불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영생을 주시고, 천국의 소망을 나에게 주신 분이라면, 나는 그분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다고 지금 당장 배째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무라이들보다 못한 정신(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찌 주를 위하여 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도 날마다 이런 고백 속에서, 이 고백대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십자가 군병으로서 주를 위해 이렇게 살자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예수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위하여 살아야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들입니다.
군사답게 살아서, 대장되시는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