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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8 - 참된 경건은
이정현 목사 2018-10-28 추천 0 댓글 0 조회 2172
[성경본문] 야고보서1:19-27 개역개정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1:19-27, 참된 경건은

 

10월은 이웃 사랑이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주에는 사랑의 두 방향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네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하나이지만 방향만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둘째 주일에는 전도, 최고의 이웃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의 관심과 기도와 물질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가야 한다는 말씀인데, 그것이 바로 이웃을 전도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자는 말씀이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이웃사랑과 관계없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들어내게 된다는 말씀인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을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다시 이웃 사랑이라는 주제로 이번 달 마지막 주일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본문을 야고보서로 잡았는데, 야고보서는 전체에 걸쳐서 말뿐인 믿음과 행함이 있는 믿음을 비교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를 읽는 우리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줄 알고 실천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서도 야고보는 3가지를 통하여 기독교인의 참된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고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기준을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에 주의 집중하시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음으로 은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야고보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와 성내기는 더디 하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가 독자들을 향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라고 말한 것은, 그 독자들이 예수를 믿어 야고보와 같이 주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의 독자들은 이미 신자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알지니라고 했는데, 이는 너희들이 알아 두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신자들이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사항이 있다는 것은, 신자가 아닐 때는 모르지만 신자가 된 지금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기 위함입니다. 성도가 되었으면 이것은 알고 있어야 하고, 알고 있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봅니다.

 

너희가 알아 두어야 할 사항은 바로 듣기는 속히 말하기는 더디하라 말입니다. 이 말은 당시 격언의 말로서 웬만한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잘 알고 있었던 말입니다. 구약성경에나 유대 문헌에도 자주 등장하는 말이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까지 알고 있을 정도의 흔한 격언입니다.

 

초기 기독교회는 주로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소수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들은 말씀을 서로 나누며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야고보는 여기서 말씀을 듣거나 토론하는 자세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고 보여 집니다.

 

우선 설교를 듣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잘 경청하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기 주장만 하려는 태도는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빨리 듣되 그것에 관하여 생각은 충분히 한 후에 서서히 말하라는 것입니다. 듣기는 민첩하게 하고 즉시로 하고, 지체함 없이 하라는 것이고, 순종의 자세로 주위 집중하는 태도를 말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잘 듣지 않으면 잘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편의 얘기는 제대로 듣지도 않으면서, 자기의 주장만 계속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듣는 것은 굼벵이처럼 느리게 하면서, 말하기는 총알처럼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치고 들어와서, 자기 생각만 쏟아 놓는 것은 잘못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5: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3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하셨습니다. 함부로 말하지 말고 급하게 말하지도 말고 말을 많이 하지도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하셨습니다. 말하기를 더디하는 것처럼 성내기도 더디해야 할 사항입니다. 민첩하고 약삭빠르게 말하지 말고 오히려 어리석은 자처럼 둔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분노를 폭발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격노하는 일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그 열매를 얻는 일에 방해가 된다는 말입니다. 결국 분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의로운 삶을 살지 못하게 할뿐더러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커다란 방해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화를 안 낼 수는 없겠지만 성내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긋나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됨으로 할 수만 있으면 화내는 일을 자제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분노를 당장 나타내는 자는 미련한 놈이고(12:6) 과격한 말이 상대방의 노를 격동시킨다고 했고(15:1) 반대로 노하기를 더디하는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19:1, 16:32). 결국 성도들은 듣기는 속히 하고 노하기는 더디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야고보는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실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려야 합니다’(21). 여기의 모든 더러운 것 모든 죄를 말하는데, 특히 앞의 구절과 연관하여 말한다면, 사람의 마음에서 입을 통해 나오는 악한 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넘치는 악 마음속에서 분수처럼 솟구쳐 올라 악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강하고 약할 뿐이지 이 같은 넘치는 악한 본성들은 다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야고보는 이런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내어 버리라 말의 원래의 뜻은 벗어버리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중생한 자는 이제 옛 사람의 생활 모습을 온전히 벗어버리라는 뜻입니다. 사조 바울이 예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4:22, 24)고 하신 것처럼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옛사람은 죽었음으로 이제 이런 것들을 온전히 벗어 던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다음의 두 문장 중에 어느 것이 맞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벗을 것을 벗어야 입을 것을 입는다.’ ‘입을 것이 있어야 벗을 것을 벗는다.’ 둘 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좀 더 성경에 근접한 진술은 후자인 것 같습니다. 새 옷이 있을 때 더러운 옷을 벗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입혀주시는 새로운 의의 옷이 있을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죄악 된 옛사람의 더러운 옷은 벗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깨끗하고 순진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21). 여기의 말씀을 마음에 심어진 말씀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곧 신자의 마음속에 심겨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믿는자 속에 역사하는 그 말씀이고, 그리고 마음에 심어진 말씀은,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곧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말씀, 복음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은 나를 죄에서 구원하여 준 복음이고, 그 복음이 지금도 살아서 믿는 내 속에 심기어져 있는데, 그것을 온유함으로 받으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온유는 사나운 짐승이 길들여진 상태, 고열로 인하여 고통 받는 환자가 약으로 인해 진정된 상태, 갈증이 냉수로 인하여 해갈이 된 상태, 거칠고 불같은 기질이 누그러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 마음 상태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마음의 상태와 태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씨 뿌리는 비유에서 길가 밭과 같은 딱딱한 마음이나, 돌맹이가 가득한 밭이나, 가시덤불이 울창한 밭에서는 씨가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로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밭은,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마음 밭이 바로 온유한 마음인 것입니다.

 

옥토와 같은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깨달음과 은혜가 있지, 마음의 쓴 뿌리가 가득하고 돌맹이나 엉겅퀴로 가득하고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분노로 가득찬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은혜가 되겠습니까? ...

 

진리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고는 이제 그 말씀대로 실천하여야 합니다. 야고보는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속이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속는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듣는 것도 잘 들어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지키는데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고 은혜 받은 것으로 끝내지 말고 이제는 그 말씀대로 실천해야 하는 것이고 삶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지적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머리만 커져서 불안정한 삶을 살 수 밖에 없고, 조금 알고 있는 성경 지식으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기 쉬운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사람은 마치 거울을 보고도 곧 자기의 모습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 당시의 거울은 청동거울로 투영된 피사체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 거울입니다. 그래도 자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거울 뿐이었습니다. 거울을 보는 목적 중의 하나가 거울로 내 모습을 정확히 보려고 하는 것인데, 보고 조금만 지나면 자기의 모습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거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고 보고 난 이후의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곧 잊어버리고 실천하지 못하면 그 들은 말씀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말씀을 듣는 목적은 그 말씀에 자기를 비추어 보고 잘 못된 점이 있으면 그것을 수정하고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함인데, 말씀대로 실천하지 못한다면 말씀을 듣는 목적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이 구절 앞부분에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구속사역을 통하여 주신 자유, 또는 성령의 임재로 인하여 주어진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곧 복음을 통한 진정한 영적 자유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는 자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그 말씀을 잊지 않고, 말씀이 요청하는 자리에 지속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로 인하여 그 사람은 복음이 요구하는 바를 행하게 되는데, 그 행하는 일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5:10)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일맥 상통한 것입니다.

 

아무튼 야고보는 이 두 번째 문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 실천하라고 하셨습니다. 믿는다면, 또는 들었다면 들은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듣는데서 그치지 말고 행함이 있는 믿음이 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자는 실천해야 합니다.

 

3. 야고보는 참된 경건은 이웃 사랑과 자기를 지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두 구절에서 경건이라는 단어가 3번이나 나오는데 이 말은 신앙심이 깊은이라는 뜻과 기도와 금식 같은 것으로 표현되는 종교적 행위를 말합니다. 1세기 기독교인들 중에 어떤 이들이 자기의 기도와 금식 생활을 통하여 스스로 신앙심이 깊다고 떠벌이며 다녔던 자가 있었나 봅니다. 그런자를 겨냥해서 야고보는 말하고 있습니다.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이 말씀을 쉽게 설명하면, ‘누구든지 자기 혀를 제어하지 않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서 종교성이 있다 또는 신앙심이 깊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헛것이다라는 말입니다.

 

마치 야생마를 인간의 뜻대로 다루기 위해서 입에 고삐를 다는 것처럼, 성도 역시 하나님의 뜻대로 합당한 언어생활을 하기 위해 혀를 제어하지 않으면, 그의 신앙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헛것이라는 말은 공허하며 무의미하며 무익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깊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직분이 있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오래 믿었다고 하고, 더 많이 배웠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입술을 제어해야 하는 것입니다. 험담하고 비방하고 불평하고 저주하는 악으로부터 자기 혀를 제어하지 못하면 그들의 신앙은 헛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참된 신앙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27) 하셨습니다. 헛된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더럽고 불결한 것이지만 참된 경건은 그 반대입니다. 그래서 참된 경건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만한 경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경건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먼저는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고아와 과부는 가장 비참하고 곤궁한 상태에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특별히 하나님이 바로 고아의 아버지이시며 과부의 보호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관심과 긍휼이 이들에게 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을 돌아본다는 말은, 찾아가 방문하다와 심방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단순히 방문한다는 그 이상의 의미로, 찾아가서 위로하고 구제하며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려움에 처한 당신의 백성들을 친히 찾아가 돌아보시는 하나님의 행동의 반증()하는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에서 고통과 억압과 착취와 괴로움을 당하니까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하감하셔서 돌아보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고아와 과부, 사회적 약자들, 고통과 어려움 속에 있는 자들을 찾아서 돌보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경건은 명사가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동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는 행동이 곧 이웃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회적 약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을 돌보시는 아버지이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찾아가서 안아주고 위로하고 도와주고 베풀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참된 경건은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것 뿐만아니라, 자기를 지키는 것도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속은 세속적 사상이나 가치관, 더 나아가서 비도덕적 삶, 불경건한 심령, 또한 성이나 돈으로부터의 유혹에서 자기가 물들지 않도록 자기를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의도적으로 이런 것에서 자기를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것들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고, 이런 것이 나를 물들게 해서, 참된 경건에서 벗어나면 안 되니까, 세속적인 것에 물들지 않도록, 빠지지 않도록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하고 무시로 기도하며 자기를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칫 잘 못하면 이런 쪽으로 빠지는 것이고, 한 눈 팔다가 순간 적으로 이런 곳에 빠지는 것입니다. 빠지기는 쉬운데 그곳에서 헤어 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예 빠지지 않고 물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1)듣기는 민첩하게 하고 주의 집중하여 경청하시고, 말하기와 분냄은 더디하시기 바랍니다.

2)마음에 심기운 생명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3)참된 경건은 이웃을 긍휼히 여기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 하였으니, 하나님 앞에 인정과 칭찬을 받는 신앙심 깊은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그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안다고 하셨으니, 말씀의 실천으로, 내가 예수 믿는 좋은 나무임을 입증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입니다. 삶의 도전 속에서 우리의 마음에 심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되, 작은 일이라도 온 정성과 마음을 모두어 그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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