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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1 -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이정현 목사 2018-11-11 추천 0 댓글 0 조회 1764
[성경본문] 시편100:1-5 개역개정

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100:1-5,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감사 절기를 맞이했습니다. 다음 주가 추수감사절인데, 평소에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셨겠지만, 이런 때만 특별한 날이니까 더 많이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년 동안 하나님이 나와 가족들과 사업장에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과 복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세어보면 감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으로 감사하시고 입술로도 감사하시고 물질로도 감사하시고 몸으로도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할 때 더 많은 감사거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어느 신문사에서 추수감사절과 관련해서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해서 이 사람의 말을 인용 했습니다. 영국의 훌륭한 주석가 메튜 헨리라는 사람의 말입니다. ‘감사는 더하기(+)와 같아서 감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진다. 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빼기(-)와 같아서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없어진다.’ 그러면서 이 둘, 즉 감사와 불평의 공통점은 하면 할수록 더욱더 불어난다는 사실이다.’

 

옛날에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후루시초프가 미국을 방문하여 몇 일 동안 미국의 발전상을 보고 소련으로 돌아가서 이런 말을 했답니다. “나는 왜 미국이 짧은 역사 속에 부강한 나라가 되었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예수 믿은 우리들은 기왕이면 감사를 더 즐겨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더욱 더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시편 100편의 표제는 ‘ ’로 되어 있습니다. 표제라는 말은 주제라는 말과 달리 그 시편에 대해 전반적인 내용을 간단히 기술해 주는 것으로 서론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시편에 보면, 그 시편의 저자, 기록배경, 언제 이 시를 사용했으며 어떤 악기로 연주했는지가 나옵니다. 그래서 그 시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그 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제를 써 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의 표제는 달랑 감사의 시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내용을 살펴보아도 언제 이 시를 사용했는지는 나오지만, 그 외의 정보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문맥의 흐름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시편 95편부터 100편까지는 한 묶음으로 되어 있는 시인데, 그 전체적인 주제가 왕이신 하나님의 세상만물에 대한 통치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주제에 관한 마지막 시가 100편인데, 여기에는 신정시의 결론으로 창조주요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그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며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전체가 5구절 밖에 안 되는 짧은 시이지만 그 내용은 아름답고 법위가 넓다고 봅니다. 전체를 세 단락으로 나누어서 살펴봄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만족을 주실 것입니다.

 

첫 번째 단락은 1-2절입니다. 여기서는 모든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께 찬송하고 경배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온 땅이라는 말은 단순히 땅이라는 말이 아니고 온 땅에 사는 백성을 뜻합니다. 더 넓게 말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을 가리켜 온 땅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찬송을 요구하는 대상이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함하여 온 민족과 모든 피조물을 향하여 시편기자는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찬송의 대상은 여호와이시며 그분에게 즐거운 소리로 부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찬송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말씀인데 땅이 진동할 정도의 우렁찬 소리를 지르며 부르라는 것입니다. 마치 전쟁에 승리한 개선장군이나 왕이 자기의 성으로 입성할 때, 수 많은 백성들이 양쪽에 서서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환호하며 왕을 맞이하듯이, 그것처럼 소리를 지르라는 뜻입니다.

 

시편103편에서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아 여호와의 성호를 찬양하라고 했을 때, 내 속에 있는 모든 내장들이 떨릴 정도로 찬송하라는 의미이듯이, 여기서도 그런 찬송을 즐겁게 부르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성전 문으로 들어가면서 부르는 찬송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그 하나님께 나아가면서 부르는 노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되 기쁨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때의 기쁨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넘치는 기쁨을 말합니다. 벅찬 기쁨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약한 자가 마지못하여 강한자를 섬기는 것을 말하지 않고,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시고, 위기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쓸 것을 풍성히 채워주시고, 우리를 의롭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넘치는 기쁨으로 섬긴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하러 나갈 때마다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그 앞에라는 말인데 이 말은 그 얼굴 앞에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얼굴 앞에라는 말은 하나님의 존재 앞에, 하나님의 임재 앞에라는 뜻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얼굴 앞에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이 그 얼굴빛을 비추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성구가 구약의 축도본문에 나옵니다. “ ”(6:25-26). 이 말씀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신다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얼굴은 은총의 근원이요 그의 영광과 복을 상징하는 은유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그 얼굴 앞에, 하나님의 현존 앞에, 그 은총의 보좌 앞에 즐겁게 찬송하며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첫 단락에서는, 이 땅의 온 백성들을 향하여 벅찬 기쁨으로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하나님의 현존 앞에 지축이 요동할 정도의 환호하는 찬송으로 나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단락은 3-4절인데, 이 부분의 중심 내용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들어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오 우리는 그의 양임을 잊지 말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먼저는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나아가는 자가 알아야 할 사항을 말씀하십니다. 모든 예배자가 알아야 할 사항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다라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유대인의 하나님만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 하나님의 온 인류에게 있어서 유일하신 참 신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만이 참 신이라는 사실을 누누이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십계명을 말씀하시면서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서도 나만이 참 신이심을 수차례 강조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세상의 여러 잡다한 우상과 비교하면서 이런 것들은 전무 나무나 철로 너희가 만든 우상에 불과한 것이다, 코가 있으나 냄새 맡지도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도 못하는, 머리가 있어도 생각할 수 없고, 너희가 만든 조각에 불과하지만, 나 여호와는 이런 것들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미얀마에 가면 빛축제라는 행사가 크게 열립니다. 사람들이 등을 만들어서 그 등을 하늘로 날려 보내는 축제입니다. 수천 수만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 행사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들이 왜 이렇게 하는 지 아십니까? 부처님인 추울까봐 부처님을 따듯하게 해 드리기 위해 빛 축제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신을 따듯하게 해 주고 보호해야 하는 종교가 진짜 종교입니까?

 

우상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어떤 것들을 하나님과 같은 자리로 올려놓고, 그것에 관심을 집중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끌어내려서 세속적인 어떤 것들과 같이 취급하는 것도 우상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거룩하심과 영광을 땅의 것으로 추락시키는 것도 우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리로 올려놓을 수 없고, 하나님을 끌어내려 세상의 것들과 같이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견주려고 하는 모든 것은 우상인줄 알고,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믿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만이 왜 유일한 신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다음 구절에서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흙을 빚어 육체를 만들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셔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그의 피조물인 것입니다. 피조물은 만든 자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에 의해 창조된 우리는 창조주만을 신으로 섬겨야 하지 않습니까? 앞에서 우상 얘기를 잠깐 했는데, 우상을 누가 만들었다고 했습니까? 사람이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이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나무 깎아가지고, 주물을 녹여서 우상을 만드는 것 하고, 하나님이 심묘막측하게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신 것 하고는 천지차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것이며, 마땅히 그분만을 참신으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까?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기 때문입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국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그 범위를 넘어서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편이 기록될 당시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며,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양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교회보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요 내가 기르는 양이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약시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이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길러 주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윗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가로 인도하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 받지 않도록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보해 주신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자이시고 우리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하나님만 섬기고 예배해야 합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하나님께 예배할 때 감사함으로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4절에 두 번씩이나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고,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성전문으로 들어 갈 때도 감사함으로 들어가고, 그곳에 들어가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때에도,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높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감사와 찬송을 잊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갈 때 가장 고귀하고 가치 있고 중요한 게 곧 감사와 찬양입니다. 이것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해 드릴 다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의 제사와 찬송의 제사가 그 어떤 예물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50:14, 23, 69:30-31).

 

두 번째 문단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하나님은 창조주와 목자이심으로 마땅히 그분만을 열정적으로 찬양하고 그분에게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단락은 5절 한절입니다. 이 말씀은 다른 성경에도 여러번 반복해서 나오는 것으로 참으로 은혜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도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우선 이 구절에 나오는 몇 가지 단어의 뜻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선이라는 단어는 악의가 없는 선함이나 더러움이 없는 아름다운 상태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서 좋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인자하심은 변함없고 신실한 사랑을 말합니다. 마지막 성실하심은 상대방이 굳게 신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 단어, 즉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속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은 항상 좋으신 분이시고, 하나님은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은 우리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항상 악한데 하나님은 항상 좋으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하는데도 하나님은 여전히 변치 않는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인간은 결코 믿을 수 없는 존재인데 반면 하나님은 언제나 신뢰할 수 있는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세 단어 중에 근거가 될 만한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좋으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근거가 되어 그분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모든 인자와 성실하심도 다 좋은데, 그것이 우리 세대 뿐만아니라, 대대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결론

다니엘 디포(D. Defoe)라는 사람이 로빈슨 크루소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크루소가 조난을 당하여 다른 사람들은 다 죽고 혼자 무인도에 떨어져서 살아남게 되는데, 크루소가 그곳에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감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처참한 환경 속에서 4가지를 감사합니다. 1)물에 빠져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2)섬에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3)섬에 위험한 짐승이 없어서 감사합니다. 4)더운 날씨라 옷이 필요 없음을 감사합니다. 결국 그는 감사함으로 절망적인 환경 가운데서도 28년을 살다가 극적으로 구조되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뜨겁게 찬양함으로 그의 현존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참 신이심을 믿고 그를 넘치는 기쁨으로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왜 그래야 됩니까?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이시고 나의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이고 또한 그분의 항상 좋으신 분이라 그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대대에 무궁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나를 만드사 세상에 있게 하신 그 하나님께, 나와 가정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신 그 하나님께, 그동안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과 복을 베풀어주신 좋으신 그 하나님께, 땅이 진동할만한 찬양의 제사로, 비싼 향유 옥합을 깨뜨려 주님에게 부어 드렸던 여인처럼 진정한 감사의 제사로, 그의 얼굴 앞에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국의 수필가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주소는 두 곳에 있다. 한곳은 하늘나라이고, 다른 한곳은 감사하는 성도의 마음이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와 늘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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