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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5 - 칭찬 받은 백부장의 큰 믿음 이정현 목사 2018-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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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8:5-13절 개역개정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8:5-13, 칭찬 받은 백부장의 큰 믿음

 

오늘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믿는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만인데, 어린아이와 어머니의 관계를 뜻합니다. 어린아이는 무력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어머니의 품 안에 있으면, 어머니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고 책임져줍니다. 믿음은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의심하고 걱정하고, 불안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빠지는 사람은, 진실로 믿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의심 속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잃어버린 믿음을 되찾고, 큰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그 큰 믿음을 통해서, 크게 역사하여 주실 것입니다.

 

저는 믿음이라는 단어와 관련하여,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있고, 둘째는, 믿음이 작은 사람이 있고, 셋째는, 믿음이 큰 자가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 세 사람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어느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하시다가 당신의 몸이 신령하게 변화가 되셨고, 옷에도 광채가 났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 때 세분의 대화 내용은,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었습니다. 어쩌면 하늘로부터 모세가 나타난 것은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가 나타난 것은 선지서를 대표하는 것으로 본다면, 구약 전체의 내용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속임을 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산 위에서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예수님이 산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산 아래에서는 어느 아버지가, 귀먹고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제자들에게 고쳐 달라고 했지만, 제자들이 능히 고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9:19). 주님은 그 자리에 있던 아이의 아버지와 서기관들을 중심으로 한, 당시 유대 전 사회를 가리켜,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했는데, 이는 불신의 세대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거의 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이 한탄스러워 하시며,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에게 그 아이를 데려오자, 그 아이는 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땅에 엎드려 구르며 거품을 흘렸습니다. 이는 귀신이 그 아이에게서 발작을 일으키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아버지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냐고 물으시니까, 어릴 때부터 귀신들렸다고 말했습니다. 또 귀신이 아들을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동안 이 아버지의 괴로움과, 마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임을, 이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절박하고 간절함 마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이곳까지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겨 도와 달라고 말합니다. 이때 주님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외치자, 주께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주심으로, 그 아이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의 어떤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까? 이 아이를 사로잡고 있는 놈이 귀신이며, 그놈은 이 아이를 죽이려고, 물과 불 속에 집어넣으며, 온갖 악행을 다하고 있는데, 주님이 그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주님이 그 어떤 영적 존재보다, 권세와 능력이 있는 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귀신보다 더 쎄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마귀를 멸할 수 있다는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과 연관해서, 주님이 누구를 보시면서 믿음 없는 세대라고 하셨는가에 주목해야 합니다. 당시의 유대 사회, 전혀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람들, 오히려 진리를 대적하는 그 사람들을 가리켜,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 없는 세대는 저주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지방, 그리고 가버나움 동네에서, 다른 지역에서보다 더 많은 말씀을 주시고, 이적도 더 많이 베풀었으나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주님이 소돔과 고모라에게 내렸던, 저주와 불 심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1:23-24). 믿지 않으면 이런 결과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하와 승귀를 믿으십니까?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신 것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믿으십니까? 무덤에 장사 지낸 바 되어 3일 동안, 캄캄한 지하에 계셨던 것을 믿으십니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곳으로부터 이 땅에 다시 오사, 믿음이 없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을 믿으십니까?

 

이것을 믿지 못하면,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저주를 받아, 영원한 불 못, 곧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한 번의 결정은 영원한 결정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심판과 저주를 받고야 말 것입니다.

 

2. 믿음이 작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믿음이 있긴 있지만, 믿음의 분량이 작다는 것입니다. 미미하고 보잘 것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믿음이 작다는 표현들이, 여러 번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면서, 너희들이 입는 것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들꽃도 아름답게 입히신다. 하물며 이 꽃보다 더 소중한 너희를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무엇을 입을까라는 염려에 빠져있는 사람은, 믿음이 작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6:30).

 

이것은 비단 입는 문제만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타는 것 잠자는 것까지를 다 포함하여 말씀하신다고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의식주의 문제를 여전히 염려하고 있다면, 나는 믿음이 작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가면, 또 다른 예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크게 일어나서, 파도가 치기 시작합니다.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고, 죽음의 일촉즉발 순간에, 제자들은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배 안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자고 계시는 주님을 깨우며,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게 생겼나이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일어나신 주님이, 다급하게 무엇인가 행동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는, 주님은 창조주이시고 만물의 통치자이신데, 바람이 불고 바닷물이 흉흉히 뛰논다할지라도, 창조주 메시야를 뒤엎어 놓을 능력이 있겠습니까? 피조물이 창조주를 뒤 엎어 놓을 능력이 없음으로, 너희들은 믿고 있어야 했는데, 믿지 못하여 나를 깨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지 못하고, 호들갑을 떠느냐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바다가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만물의 창조주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피조물은 잠잠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특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동행하신다고 하셨는 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바람과 파도를 보고 두려워한다면, 그 사람 역시, 믿음이 적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을 보시면, 그 유명한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지금 갈릴리 바다 위에 있는데, 바람이 크게 불어옴으로, 목적지를 향해 갈 수도 없어, 고생고생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예수님은 배안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끼리만 있다가 이런 큰 위기를 만나니까,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간 저 쪽에서,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한 분이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았으나, 주님이 자신임을 밝혀주셨습니다.

 

이때 성질 급한 베드로가, ‘주여, 주님이시면 나를 명하여 물로 오라 하소서’, 주님이 오라고 하시자, 베드로는 물 위를 걷는 최초의 사람, 아니 마지막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파도를 바라보자, 곧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주님이 즉시로 손을 내밀어 그를 붙들어 주시면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31). 베드로가 주님만 바라보고 똑바로 걸어갔더라면,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칭찬을 받았을 것인데, 그만 파도를 보고 의심이 일어나, 믿음이 작은 자라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베드로와 비교해 볼 때, 지금은 분명 믿음이 연약한 자였습니다.

 

마태복음 16장을 읽어보면,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와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그들을 책망하시는 조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나는 너희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 보일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제자들에게,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예수님이 누룩하니까, 제자들은 그 누룩을 과 연결시켜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교훈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고, 먹을 빵을 가지고 오지 않았음을, 안타깝게 생각한 것입니다. 주님은 영적인 것을 말씀하시고, 제자들은 육적인 것으로 반응하였습니다.

 

그들의 어리석은 면을 보시고 주님께서,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리새인들의 교훈이지, 먹는 떡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자, 그제 서야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믿음이 작은 자들이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를 남게 하신 분, 7개로 4천 명을 먹이시고, 7광주리를 남게 하신 분이, 지금 여기 계시는데, 왜 시시하게 부스러기 떡 몇 바구니에 신경은 쓰면서, 주님의 교훈에는 관심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믿음이 작은 처신이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예를 든다면, 마태복음 1720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내려오셔서, 귀신들린 아이를 낫게 해 주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주님께 찾아와서, 어찌하여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는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주님은,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고 하시면서, 만약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저쪽으로 옮길 수 있으며, 못할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씨 중에 가장 작은 씨라고 합니다. 너무 작아서, 그것을 손바닥에 놓고 보기위해서,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면, 콧김에 씨가 날아가고 만답니다. 이런 믿음만 우리에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작은 믿음만 있어도,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은 그 당시, 의식주의 문제를 염려하는 사람들, 갈릴리 바다에서 강한 비바람에 죽게 되었다고 염려하는 제자들, 세상을 바라보다가 물속에 빠져 들어간 베드로, 주님의 교훈에는 관심조차 없고, 떡에만 관심을 보인 제자들, 귀신들린 아이를 쫓아내지 못한 제자들, 모두에게 주님은,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평가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믿음이 작은 사람은, 분명 책망을 듣게 됩니다. 여기에 나오는 제자들은, 당시 유대 사회처럼 믿음이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믿음이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3. 믿음이 큰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믿음이 클 뿐만아니라,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뿐만아니라 믿음으로 인하여, 타인의 칭찬을 받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9장에,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한 여인이 나옵니다. 혈루증은 여자가 하혈을 하는 것으로, 인간의 능력으로 고치지 못하는 불치병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많은 의사들과 여러 가지 약을 써 보았으나, 고치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8:43). 이 병을 12년 동안 앓고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그녀의 생명이, 더 위험한 상태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이 지방을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 여인도 주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이 여인은 지금 이 시간에, ‘내가 내 손으로,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는 믿음의 결단을 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주님의 겉옷을 만졌습니다. 주님이 그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시니, 그 즉시로 혈루 근원이 말라버렸습니다. 깨끗이 치료를 받은 것입니다(20-21).

 

성경에는 예수님이, 그 여자의 믿음을 칭찬하셨다는 직접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그러나 앞뒤 문맥을 보아서 분명히, 이 여자의 믿음은 큰 믿음이었습니다. 감히 앞으로는 나오지 못하고 뒤에서,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대로 겉옷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은 다함이 없다,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 믿음이 좋은 여인이었습니다. 믿음의 행동은, 치료라는 주님의 은총을 입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말씀에, 가나안 여인이 자신의 귀신 들린 딸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고쳐달라고 간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가나안 여인은 겸손하게,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개로 비유하며 거절하셨는데도, 여인은 자신의 딸을 고치기 위해, 믿음을 가지고 겸손하게 간구하였습니다.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십시오. 그것만으로도 내 딸이 낫기에 충분합니다’. 이 여인의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고,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주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예수님이 가버나움 동네에 들어가셨을 때, 한 백부장이 나와서,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자기의 종이 중풍으로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까, 그 하인의 문제를 안고 주님께 나온 것입니다. 단순히 이 백부장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주님께 찾아 온 것입니다. 이 안타까운 간청을 들은 주님이, 내가 가서 고쳐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백부장이,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백부장은 주님이 자기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굉장히 높은 분으로, 거기에 비하면 자기는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세례요한처럼,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맬 수도 없는 존재로, 주님을 지고하신 분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으로만 해도 된다고 믿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어떤 문제든, 주님이 말씀으로만 하시면, 그 말씀대로 된다고 믿은 것입니다. 내 밑의 군사들도,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고,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하고, 그만두라면 그만둔다고 얘기합니다. 군인은 자기 밑의 군사들에게는 명령이 먹혀들어갑니다. 중대장은 중대원들에게는 명령만 내리면 그 말하는 대로 됩니다. 육군참모총장은 전 육군에게 명령을 내리면, 명령대로 군인들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권위, 통치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백부장은, 자기의 명령권자이며,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로마 군인들의 명령권자인, 로마 황제의 명령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마황제 가이사의 명령 한마디에, 전 세계의 로마 군인들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말씀 한마디면, 다 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주님을 최고의 명령권자, 그 명령권자의 명령에, 모든 아랫사람들은 순종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입니다. 모든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이, 주님의 권위아래에 있는 것이며, 통치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정사와 권세를 가지신 분이니까, 당연히 그 밑의 존재들은, 그 명령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이 절대적인 믿음에, 주님이 큰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10). 주님이 왜만한 일에 놀라실 분이십니까? 그런데 이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놀랬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따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오랜 종교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복을 누리며 살았던 그 민족이었지만, 그들 가운데서도 이런 믿음의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아브라함이 절대적인 믿음으로 이삭을 바쳤던 그 믿음보다도 이 백부장의 믿음이 더 대단하다고 칭찬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이방인이며 로마 군인인 이 사람에게서, 대단한 믿음을 발견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대부분 병을 낫게 하려면, 적어도 그 상처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 이방인 백부장은, 말씀으로만 해도 된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백부장의 이 큰 믿음을, 인정하시고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11절과 12절에서, 이런 믿음을 가진 자가, 동서사방에서 몰려와,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지만, 믿지 않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천국은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자동적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이방인 이라할지라도 믿는자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가,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13). 주님은 하인이 누워있는 병상에 가서, 그에게 안수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손을 잡고 일으킨 것도 아닙니다. 병자와 주님이 계신 이곳하고는, 분명 거리가 있었습니다. 공간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네 믿은대로 될지니라라고 말씀하시니까, 시 공간을 초월하여 그 하인이 낫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말씀대로 된다는, 백부장의 믿음대로, 그 하인이 나은 것입니다.

 

결론

이 세상에는 믿음이 없어서 저주를 받는 사람이 있고, 믿음이 작아서 책망을 받는자들도 있지만, 여러분은 다 믿음이 큰 자가 되어서, 인정과 칭찬을 받고 주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과, 귀신들린 자기 딸을 위하여 믿음으로 간구한 가나안 여인과, 자기 하인의 문제를 가지고 나온 백부장처럼, 믿음이 좋은 사람, 믿음이 큰 사람이, 주님의 역사와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큰 자가 은혜를 받습니다. 나음을 받습니다. 믿음의 크기만큼 복을 받습니다. 더 큰 믿음이 생깁니다. 무엇보다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는다. 믿음이 큰 자가 교회의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은, “믿음은 삼손의 머리카락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삼손은 머리카락이 잘리면서, 능력이 없어져 포로로 잡혀가, 두 눈을 뽑히는 끔찍한 일을 당하고,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도 빼앗기고, 죄악의 포로, 저주의 노예 밖에는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왕성해야, 더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죄악과 가난과 저주와 싸워서 승리하게 되고, 성공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소망교회 성도 여러분, 큰 믿음으로,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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