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목사설교

  • 홈 >
  • 예배 · 설교 >
  • 이정현목사설교
이정현목사설교
20181202 -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고 살라 이정현 목사 2018-12-02
  • 추천 0
  • 댓글 0
  • 조회 1283

http://www.isomang.net/bbs/bbsView/13/5505715

[성경본문] 전도서3:1-14절 개역개정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14.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3:1-11,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고 살라.

 

여러분은 인생을 살면서 제일 힘든 때가 언제였습니까? 여러분은 속으로 이 질문에 답을 해 보시고 제 경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제일 속상하고 힘들 때는 남다른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주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배신하고 떠나갈 때입니다. 그 사람에게 더 관심을 갖고, 더 많이 기도해 주고, 더 많은 사랑을 베풀고 더 많이 물질로 도와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없이 잠수를 타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거나, 이런 저런 불평을 하며 교회에 무리를 일으키고 나간다거나, 특히 중직자나 목회자가 그럴 때 제일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때는 정말 배신감과 억울함 때문에 사람이 싫고, 목사를 하고 싶지도 않고, 시화 땅에 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반대로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언제가 제일 기쁘고 행복했습니까? 역시 제 경우를 말씀드리면 저는 올해, 지금 이 시간 여기에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합니다. 올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엄청난 은혜와 사랑과 복을 부어 주셨습니다. 좋은 성도들, 일꾼들을 많이 보내주셨고 재정부에도 많은 복을 베풀어 주셔서 예산에 차고 넘치도록 복을 주셨고, 무엇보다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거나 배신하여 나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평안히 든든히 서 갔던 한해였고, 뿐만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그 말씀에 준하여 삶으로 삶이 조금씩 변화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참으로 기쁘고 행복합니다.

 

제 인생이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날이 있었던 반면 또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날도 있었습니다. 슬픔과 기쁨, 불행과 행복은 항상 우리 인생 가운데 교차되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평생 동안 슬픈 사람도 없고 또한 평생 동안 기쁜 사람도 없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슬플 때도 있고 기쁠 때도 있고 불행할 때도 있고 행복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 솔로몬도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범사에 기한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의 기한’(크로노스)은 일반적인 기한을 말하고, ‘’(카이로스)는 어떤 목적을 이루는 특정한 시점을 말합니다. 즉 앞의 말은 일반적인 시간으로 하루 24시간이나 1365일을 말한다면, 뒤의 단어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특별한 때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범사에 기한과 때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 날 수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정해진 특별한 때가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일들이 각각 이루어지는 때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다만 사람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때와 사건을 경험하게 될 뿐입니다. 현재라는 시간을 통하여 인간이 알게 되기 때문에 자기의 미래를 미리 알기를 원하거나, 거기서부터 탈출하려는 노력은 허무한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2절부터 8절까지, 각 구절 당 4때가 나오는데, 4때는 2쌍씩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각 구절에는 2쌍씩 네 때가 나오는데, 전체를 계산하면 14쌍의 28번의 때가 나옵니다. 이것은 각각 반대되는 일들을 대조시킴으로 인간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하신 섭리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한 쌍씩을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절에,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라고 했습니다. 전도자가 가장 먼저 취급하는 쌍은 인간의 생사문제입니다. 모든 인간은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와 계획과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싶다고 태어난 것이 아니고 또한 죽고 싶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앞당기거나 연기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저자는 이것을 말하면서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문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사는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삼상 2:6).

 

다음에 나오는 한 쌍은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앞에서는 인간의 생사를 말씀하시다가 이제는 범위를 넓혀서 식물의 생사를 취급합니다. 식물을 심고 식물을 뽑는 것이 인간의 행위에 달려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 안에 이루어지는 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이 말은 상징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심고 뽑는다는 말이 구약에 상징적인 것으로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한 나라가 회복이 되고 안정되는 것을 식물을 심는다고 표현하고, 반대로 뽑는다는 말은 한 나라가 망한다는 의미로 사용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는 말을 한 나라의 존폐까지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작은 식물의 생사에서 시작하여 강대국들의 존폐와 세계사를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말씀입니다.

 

3절에도 두 쌍의 때가 나오는데, 먼저는 죽일 때와 치료할 때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일 때는 전쟁과 형 집행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 나라와 다른 한 나라가 전쟁을 하고 서로를 죽이게 되는데, 이것을 사람이 계획하여 실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범죄자를 잡아다가 재판을 해서 사형에 처할 때도, 이 모든 과정의 일을 사람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 그 사람을 치료하는 것과 사형 집행장에서 그 사람을 건져내는 것도 전부 사람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모든 일들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일어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결국 사람이 징계를 받거나 위로를 받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3절 하반절에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헐고 세운다는 말은 성벽이나 건물이나 포도원을 세우고 허는 것을 말합니다. 솔로몬은 많은 건축물을 세웠는데 특히 성전과 자기의 왕궁을 아름답게 건축하였습니다. 자기의 창의력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이 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시대는 아니었지만 370년 후에 솔로몬 성전은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건물과 포도원은 세울 때가 있고 헐 때가 있는데, 이 모든 일들을 사람이 하는 것 같지만, 이것 역시 하나님의 통제아래에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에 나오는 두 쌍의 때는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사람은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과 사건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보이면서 살아갑니다. 내가 직면한 현재의 상황과 사건 앞에서 우리는 울 때도 있고 웃을 때도 있습니다. 또한 슬퍼할 때도 있고 춤출 때도 있습니다. 특별히 장례식과 결혼식에 가변 이 두 가지 감정의 변화는 극명하게 다르게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례식에서는 슬퍼 울게 되고 결혼식에서는 웃으며 춤을 추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상황 속에서 단순히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지만, 여기에도 내 앞의 모든 환경과 사건을 주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희로애락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5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여기서의 돌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건축 자재로서의 돌입니다. 이때는 건축 자재의 돌을 모아서 건축할 때와 그 자재를 버림으로 건물을 허물 때를 말한다도 봅니다. 다른 하나는 돌은 보석을 의미하기 때문에 부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를 축적할 때도 있고 부를 분배할 때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을 합니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건축을 할 때가 있고 허물 때가 있다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돈을 많이 모을 때가 있고 그것을 나누어 줄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솔로몬은 여기에도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개인의 애정의 굴곡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는다는 말은 이성에 대한 애정 표현으로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멀리한다는 말은 사랑이 식어져서 미워졌다는 뜻입니다. 결국 본문은 남녀관계의 굴곡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애정 관계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6절의 말씀을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여기서의 찾을 때와 지킬 때는 재산과 소유물을 목적어로 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재산이나 소유물이나 어떤 물건을 찾고 보존할 때가 있지만 그것을 단념하고 잃어버리거나 버릴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재물을 보호할 때도 있지만 버리고 사용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 역시 하나님의 섭리 안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7절도 두 쌍의 때를 같이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찢을 때는 극도의 슬픈 일을 만났을 때 자신의 옷을 찢는 것을 말하고, 그리고 그 슬픔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그 찢은 옷을 꿰매어 입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반절의 말씀은 사람이 극도의 슬픈 일을 만나게 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고, 그 슬픔이 지나가면 그때서야 잠잠했던 입을 연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전도서 기자는 극도의 슬픔과 비통한 일을 당하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8절을 크게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여러분 사람이 이 세상에서 누리고 느낄 수 있는 총체적 감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사랑과 미움입니다. 그 위로 아래로 그 중간에 여러 가지 감정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인간의 감정은 이 둘로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전쟁과 평화입니다. 그런데 앞에서는 사랑과 미움을 이야기하면서 개인의 애정을 다루고 뒤에서는 전쟁과 평화를 말하면서 국가간의 애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도자는 이 마지막 구절에서도 개인의 사소한 애정관계로부터 시작해서 국가간의 애정 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범사에 기한과 때가 있다고 하십니다.

 

인간은 70-80평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때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70, 80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때를 만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에게 이런 때를 허락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개인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해 가신다는 말입니다. 인간들의 삶의 환경과 사건들은 결코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역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 큰 일에 이르기까지 범사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과 죽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에 있는 것이고, 세울 때와 헐 때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고, 슬피 울 때와 기뻐 춤출 때가 하나님의 섭리 속이 있고, 재산을 모으고 잃을 때가 하나님의 섭리에 달려 있고,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도 마찬가지이며, 전쟁할 때와 평화할 때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역 안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만사 하나님의 손을 벗어나서 존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만물이 주로부터 와서, 주로 말미암아 살다가, 주께로 돌아간다고 하면서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11:36)고 하였습니다.

이어지는 9-10절은 해 아래서 인생의 수고는 허무할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전도서 1-2장의 내용도 결국은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도 모든 인생이 다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얘기하셨습니다.

 

수고와 슬픔뿐인 인생들에게 하나님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11)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의 수고와 슬픔은 다 제한적입니다. 얼마 있으면 다 허무하게 끝날 것들입니다. 신속히 날아가는 세월이기 때문에 그 끝은 갑자기 다가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는 인생이지만, 그들에게 영원을 사모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 끝이 없고 제한적이지 않는 무궁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인간은 측량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며 살 수는 있지만,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시작과 끝은 모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유익을 위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은, 언제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간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됩니다. 이것은 허무한 인생을 허무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며 살라’(12)고 하셨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 알고 살고’(13), 또한 하나님 여호와를 잘 경외하며 사는 것’(14)이 허무한 인생이 아닌, 가치 있고 의미 있고 보람되게 사는 것입니다.

 

14쌍의 때, 28가지 상황의 때가 우리 앞에 일어난다 해도, 그것에 휩쓸려 이리갔다 저리갔다, 이랫다 저랫다 하지 말고, 심지를 견고히 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믿고, 늘 주와 동행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 아래 인생은 해 위의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분만 의지하고 바라보며 믿고 그분께만 경배하며 그분에게 기도하며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20181209 -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운영자 2018.12.09 0 1396
다음글 20181125 - 칭찬 받은 백부장의 큰 믿음 운영자 2018.11.25 0 15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