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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 10 -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한 아브라함 이정현 목사 2019-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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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22:1-14절 개역개정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월 10일 설교, 창 22:1-14,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한 아브라함

 

이 두 가지 약속 중에 첫 번째 약속이 이루어져야, 그 다음에 두 번째 약속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야 그 아이를 통하여 후손이 많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가 없었던 아브라함에게 가장 중요하고 급한 문제는, 아이가 태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아이가 드디어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태어나게 됩니다. 약속이 주어진지 25년 만에 이삭이라는 아이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삭은 날 수 없는 가운데 태어나는 아이고, 아브라함이 노년에 얻은 아이고, 둘도 아닌 독자이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있어서 이삭은 정말 사랑스러운 존재이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이삭이 젖을 떼면서 큰 잔치를 하는 모습이, 본장 바로 앞인 창세기 21장에 나옵니다(8). 히브리인들은 보통 3-4살에 엄마의 젖을 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본장이 나오는데, 본장에서 등장하는 이삭은, 짐을 지고 산을 오를 만큼 육체적으로 성장하였고, 또한 자기의 의문점을 아버지에게 질문할 수 있을 정도로 지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고 보여 집니다(창 22:4-7). 그래서 학자들은 오늘 본문의 이삭은 적어도 16-17세 정도는 되었을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21장과 22장 사이에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 간격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더 이 말씀을 귀담아 들음으로 은혜가 되시기 바랍니다.

어느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여기서의 시험은 유혹(temptation)이라는 뜻이 아니고, 테스트(test)라는 뜻입니다. 유혹은 신자들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하나님과 분리시키기 위하여 마귀가 주는 것이지만, 여기서의 시험은 무엇을 입증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시험한다는 뜻입니다. 마귀가 주는 유혹은 우리의 믿음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더 성장시키고 크고 강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유혹해서 죄를 범하게 함으로 타락하게 하고자함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보기 위함이고, 하나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기 위함이고, 더 나아가서 그의 신앙을 크게 성장시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2)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내용인데, 하나님이 이삭에 대한 아버지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3중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네 아들이고,’ ‘네 사랑하는 아들이고,’ ‘네 독자’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 너에게 있어서 이삭은 어떤 존재인지를 하나님이 아신 것입니다. 이런 표현을 하시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인간적이고 본능적인 부성애를 깊이 자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그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나에게 번제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지 명확히 나와 있습니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나에게,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입니다. 


여기서의 번제는 정결한 짐승을 칼로 각을 떠서, 그 고기를 태워 제사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동물 제사를 드리는 방법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짐승이 아닌 사람을 칼로 각을 떠서, 불에 태워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인육제사를 드리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이방신들과 다른 분인지를 몰랐겠습니까? 몰록숭배자들은 그 앞에서 아기를 산체로 태워서 제사를 드리는 경우가 있지만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잖아요. 인육제사를 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안 아브라함이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묻거나 항거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해와 상식을 뛰어 넘는 명령이었고,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명령 앞에 아브라함은 어떻게 합니까?

그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은 바로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한 즉각적인 아브라함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뒤로 미루거나 고민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이행한다는 것입니다. 아들 문제로 지난밤에 자기 부인하고 상의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나, 본문의 뉘앙스를 보아서는 상의를 하지 않고, 부인이 일어나기 전에 빨리 떠나려고, 아침 일찍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을 데리고 갑니다. 여기의 두 종은 영어 성경에 ‘젊은 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번제에 쓸 나무를 가지고 가고 불과 칼을 가지고 가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장작은 나귀에게 지웠겠지만, 번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3일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까지 운반해야 할 책임이 이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니 매우 건장한 젊은이들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곳은 브엘세바이고, 이곳에서 모리아 산까지는 85km 정도 떨어져있습니다. 이 거리를 3일 동안 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의 독자를 죽이러 가야하는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고통의 거리었고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모리아 산에 도착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두 종에게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라, 우리가 저기 가서 예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아브라함이 두 종을 떼어놓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건장한 청년들이기 때문에 늙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할 때, 얼마든지 가로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늙은 주인이 노망났다고, 자기 아들을 죽이는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고 말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미리 제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따라오지 말고 여기 머물러 있으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브라함이 사환들에게 이렇게 말한 후에, 이제 장작을 아들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모리아산으로 오르게 됩니다. 올라가다가보니까 이상한 점이 하나 있는 것입니다. 나무도 있도 불도 있고 칼도 있는데 가장 중요한 번제할 어린 양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이 ‘아버지 다른 것은 다 있는데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을 받은 아버지는 매우 당황했을 것이며 가슴 아팠을 것으로 보입니다. 3일 전에 제사 드리러 간다고 했을 때도 아무 말도 없었고, 3일 길을 걸어오면서도 아무 말도 없었는데, 이제 조금 후에 제물이 되어야 할 아들이, 제물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이것을 듣는 아비의 마음은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이 질문에 아버지는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고 말한 후, 애써 아들의 얼굴을 외면한 채 하나님이 알려 주신 곳에 도착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그곳에 제단을 만듦니다. 그 위에 가지고 온 나무를 벌여 놓습니다. 여기까지 아들 이삭은 아버지를 도와서 같이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번제할 어린 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아들을 잡더니 결박하여 나무 위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즉시로 칼을 들어 그 아들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쇼를 하고 있는 것 아닙니다. 가짜로 아들을 죽이는 척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고 칼을 든 것입니다.

잡생각을 갖지 않는다, 일을 느슨하게 진행하지 않는다, 혹시 시간을 지체하다가 순종하지 못할까봐서 일을 빨리 빨리, 지체하지 않고, 즉시로 즉각적으로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9절과 10절의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일러 주신 곳에 도착을 했습니다. 곧장 제단을 쌓습니다. 곧장 그 위에 나무를 벌여 놓습니다. 또 즉시로 이삭을 결박하여 나무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 즉시로 아들을 향하여 칼을 빼 든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시간적인 틈이 없이 연속적으로, 즉각 즉각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비록 아들을 죽이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데 그는 지체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때 갑자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1-12)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급하셨는지 두 번이나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네 독자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장면을 두고 어느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이 때 누가 가장 놀랐겠는가?’ 이삭일까요? 아브라함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장 놀라셨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때의 순간적인 찰라를 상상하여 렘브란트라는 사람이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의 얼굴을 가리고 칼로 찌르려고 하는 순간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의 손을 잡아챔으로 아브라함이 칼을 놓치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그리고 의외로 이삭은 반항 없이 평온히 누워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본문이 끝이 납니다. ‘네 독자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하였고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았습니다.    

여기까지의 여정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우선 방해되는 요소들을 정리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네 독자를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은 자기 부인하고 그 문제를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부성애보다 모성애가 더 강하기 때문에, 자식의 문제로 부인과 상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리아 산 밑에서 두 사환을 떼어 놓는 이유도, 순종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고, 또한 빨리 빨리 제단을 쌓고 장작을 벌여놓고 이삭을 잡아 꽁꽁 묶은 것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데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이렇게 순종하기 위하여, 방해되는 요소를 하나하나 제거하고 마침내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과거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였으나 믿음으로 떠났고, 또 가나안 땅을 약속 받았지만 땅이나 집도 없는 나그네로,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성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았고(11:9-10), 오늘 본문에서는 그가 시험을 받을 때에도 믿음으로 독자 이삭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히 11:17).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무엇을 믿는 믿음으로 자기 아들을 바칠 수 있었을까요? 아브라함의 이 믿음은 과연 무엇을 믿는 믿음입니까? 우리는 아브라함과 관계된 성경 몇 곳을 통하여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선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 도착하여 종들에게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8)는 말을 했는데, 이 말 속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돌아오리라’고 했을 때, 누가 돌아온다는 말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이 같이 올라가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면, 돌아오는 사람은 누가 됩니까? 아브라함 혼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분명히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자기 독자를 죽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 아들을 도로 살리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들과 같이 너희에게 돌아 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때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브라함의 이 믿음은 무슨 믿음입니까? 그것은 곧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아들이 약속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고, 그의 후손이 많게 될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는데, 만약 아들이 모리아 산에서 죽게 되면, 하나님의 그 약속은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 약속을 이루시려면, 그 아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 약속을 믿고 아들을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믿는 그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의 순종과, 그것을 보신 하나님의 인정을 말씀하고 있지만, 아울러 그의 아들 이삭의 순종도 말하고 있습니다. 아들 이삭은 아버지의 말에 그대로 순종하여 브엘세바를 떠나게 되었고 모리아 산으로 오를 때에는 아버지의 말대로 장작을 짊어지고 산을 올랐고, 아버지에게 묶일 때에도 전혀 반항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때 이삭은 젊은 청소년이고 아브라함은 110세가 훨씬 넘은 노인이라서 얼마든지 아버지를 뿌리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입을 열거나 항거하지 않고, 아버지의 말과 행동에 그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준비하신 어린 양 같은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의 두 가지 이삭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시한다고 말합니다. 첫째로 이삭은 날 수 없는 상황에서 태어난 것이 메시야를 예시한다고 말합니다. 이삭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볼 때에, 결코 그는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던 사람이었던 것처럼, 그리스도도 남자 없이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삭이 장작을 지고 모리아 산에 오르고, 반항하지 않고 제단 위에 올라가는 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서, 십자가 위에 희생제물이 되실 것을 예시한다는 것입니다. 이삭이 침묵 속에서 순종한 것은 장차 성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묵묵히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희생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그래서 본문의 하나님이 예비하신 어린 양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예표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또한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순종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순종하는데 방해되는 것들을 다 제거하고, 자기 아들을 죽이기까지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히 11:18)는 것과, ‘네 자손이 번창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이 이같은 절대적인 순종을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의 결과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겠다.’ 아브라함은 25년 만에 얻은 아들이고, 독자이고, 정말 그 자식을 사랑하는 아비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하고는 바꿀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신 은혜와 복보다는, 그 은혜와 복을 주신 분(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더 경외했다는 말입니다.

또한 본문 다음에 나오는 16절부터 18절에서, 다시 한 번 더 아브라함에게 복을 약속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셨고, 네 씨가 창대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고,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취하리라고 하셨고-교회의 승리,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후손으로 메시야를 보내주셔서, 그로 말미암아 많은 민족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엄청난 영육적 복을,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신림동으로 내려오는 그 길에 ‘김연수 한의원’이 있습니다. 이 분은 교회의 장로님인데, 은혜 가운데 한의원이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자기의 집은 전셋집이라서 이번에 땅을 구입하여 한의원과 함께 자기의 집도 같이 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림동에 적당한 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부흥성회가 열렸는데 부흥회 내내 하나님께서 자신이 사놓은 땅을 원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자기 부인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더 늦기 전에 빨리 드리라고 했답니다. 장로님이 땅을 바치기로 결심을 했지만, 그 후로도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한 동안 망설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그 땅은 김 장로님의 유일한 재산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염려를 믿음으로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기쁨으로 그 땅을 교회에 헌납하게 되었습니다.
김 장로님은 하나님께 교회 부지를 바친 뒤 얼마 안돼서, 더 좋은 건물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김 장로님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신앙을 갖게 된 것이 첫 번째 큰 축복이요, 두 번째는 교회를 섬기도록 장로의 직분을 받은 것이 두 번째 축복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 순종했더니 그 이후로 하나님이 많은 은혜와 복을 베풀어주셨는데, 그중의 하나로 아들이 한의사가 되어 같이 진료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유통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하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여러분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과 김연수 장로님의 믿음과 순종을 기억하며, ‘하나님 우리에게 이런 믿음을 주옵소서.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이렇게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가족 모두와, 우리 소망의 모든 가족들이 올 한해는 순종의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엄청난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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