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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10 - 기도응답의 비결
이정현 목사 2019-03-10 추천 0 댓글 0 조회 1760
[성경본문] 요한복음15:1-7 개역개정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15:1-5, 기도응답의 비결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셨습니다. 자기는 이 세상에 더 있지 않고 이곳을 떠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던 제자들은 이제 더 이상 주님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두려움과 근심에 빠졌습니다. 그 때 주님이 괴로워하고 있는 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도 주님이 그들에게 주신 위로의 말씀이지만, 오늘 본문인 15장도 같은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내가 비록 육체가 떠나가더라도 너희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으로, 너희들이 내 안에 거하면 나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영양분을 공급받아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 비유는 포도나무 비유인 것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사이의 밀접한 관계,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주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유월절 식사를 마치시고 감람산으로 가시는 도중에 말씀하신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 성전 문 앞에 있는 황금 포도나무 조형이 있는데, 거기에는 사람 키보다 큰 포도송이가 매달려 있답니다. 주님이 그것을 보시고 이 비유를 말씀 하셨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성전에서 나와서 지나가다가 길거리에 있는 포도원을 보시고,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비유는 주님과 제자들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데 아주 적절하다고 봅니다.

 

이 비유를 통하여 주님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첫째,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2차적인 문제이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지로서 포도나무에 꼭 붙어 있는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다는 것은, 곧 우리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내 안에 있어야 된다는 의미로 설명을 하십니다.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음으로 인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음같이,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면, 너희 역시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열매를 맺는 것은 2차적인 문제고,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사항은, 내가 주님 안에 거하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그 주님으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거하라는 말과 내 안에 있으면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내 안에 항상 머물러 있으라’, ‘내 안에 항상 머물러 있으면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 항상 머물러 있는다는 것을 다른 말로, 7절에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한다고 표현을 하였고, 10절에서는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말과 빛에 거한다는 말로 표현을 하였고, 요일 2:27에서는 주님의 성령 안에 거하는 것으로, 요일 2:6에서는 주님께서 행사신 대로 행하는 것으로, 요일 3:6에서는 범죄 하지 않는 것으로, 그리고 롬 5:2에서는 은혜 안에 서게 될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문다는 말을 성경 여러 군데에서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주님과 성도들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주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 관계, 하나 되고 연합되는 밀접한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밀접한 관계가 되지 않으면, 가지된 성도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열매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만물이 주님이 없이는 된 것이 없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서, 원 둥치로부터 영양분을 매일 매일 공급 받아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진짜로 주님에게 붙어 있는 성도는 열매를 맺게 되어 있고,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서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고 그것을 깨끗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절과 3절에 깨끗하게 하신다는 말씀과 깨끗하여 졌다는 말씀은, 시간적으로 의미상으로 조금 다른 말씀입니다. 3절의 깨끗하여 졌다는 것은, 과거에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 깨끗하게 되었다는 뜻이고, 2절의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은, 성령을 통한 도덕적으로 거룩하여 간다는 뜻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3절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김을 받은 것을 말한다면, 2절은 그 이후로 계속 성화되어 가는 과정으로의 깨끗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주님이 베드로에게 이미 몸을 씻은 사람은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셨을 때, 몸 씻는 것은 3절의 깨끗함을 말하고, 발을 씻는 것은 2절의 깨끗함으로, 매일매일 성화를 위하여 회개하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아무튼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 맺는 사람은, 하나님이 더욱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깨끗하게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법칙은 열매 맺는 사람을 더 열매 맺게 도와주시는 것처럼, 있는자를 더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히어 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2절과 6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그런데 조금 이해가 어려운 말씀이 2절에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는데, 여기서는 붙어 있기는 하는데, 열매가 없으면 제거해 버리시겠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붙어 있어도 열매를 못 맺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짤려서 불에 던져진다고 하셨으니, 이것은 분명 지옥 심판을 받는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앞, 뒤의 말씀이 서로 상충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도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는가? 또 예수님 안에 있는 자도 멸망 받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나무에 붙어 있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거짓 믿음을 가진자요 위선자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는 자가 아니라, 머물러 있는 척 하는 거짓 믿음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결국 잘려서 불에 던져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제거하신다는 말과 밖에 버려저 마른다는 말과 그것을 불에 던져 사른다는 말은, 시간적인 차이는 조금 있어도, 결국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인가요? 주님이 열매 없는 자들에게 자신의 은혜를 거두신다면 그들은 제거되어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그들을 상실한 마음과 사악한 욕심에 내버려 두신다면, 결국 그들은 메말라 불에 던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주셨던 은사를 거두시거나, 그 밖의 이런 저런 당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잘라 내신다는 겁니다.... 주님에게 붙어 있는 척하여, 열매 없는 가지들은 주님이 가차 없이 쳐서 제거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동안 베푸셨던 자비와 은혜만 거두시면, 곧 말라서 제거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이사야서와 에스겔서에서도 열매를 맺지 않는 포도나무는 찍어 버리고 땔감으로 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가장 좋은 예가 신약의 가룟 유다라고 생각합니다. 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고 제자들 사이에서 돈 궤를 맡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상당히 훌륭한 제자처럼 보이고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는 가짜 신앙인, 거짓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열매 없는 자였고, 짤리고 말았고, 불에 던져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주님이 마태복음 13장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지막 심판 날에 가라지를 거두어 풀무 불에 던져 넣겠다는 말씀입니다.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13:40-41).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가라지)는 불에 던져 사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가지는 종말에 칭찬과 인정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종말에 불 못에 들어가 이를 갊이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기도응답의 비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7절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기도응답의 비결은, 주님(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주님 안에 거하면 됩니다. 주님과 내가 연합되어 하나가되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루리라는 수동태이기 때문에, 역시 이루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제자들의 요청에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다락방 강화를 하시면서, 요한복음 앞 장에서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그분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여야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잘 살펴보면, 가지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말과 주 안에서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거의 비슷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가지로써 열매를 맺으려면 분명이 그 가지는 원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기도응답을 받으려면, 반드시 내가 주 안에,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매는 기도응답이고, 기도응답은 열매라고 말할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관계형성입니다. 가지와 포도나무의 진실된 관계형성, 우리와 주님과의 긴밀한 관계형성, 이것이 잘 되었을 때, 열매를 맺고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관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부부관계, 부자관계, 직장에서의 상하관계, 동료관계, 친구관계, 고부관계, 목사와 교인관계, 교우관계 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여러분 친구에게 혹시 보증을 서 준 사람 있습니까? 그 친구하고 사이가 나쁜데 보증을 서 준 사람이 있나요? 없습니다. 관계가 좋아야 돈도 빌려주고 보증도 서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시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셨는데, 그 때 한 백부장이 예수님 앞에 와서 간청을 하였습니다. ‘자기 하인이 중풍병으로 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한다고 하면서 고쳐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래 그럼 내가 가서 고쳐 주겠다고 하니까, 이 백부장이 주님을 만류하면서,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고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는데 이더러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이것을 하라하면 하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말을 놀랍게 여기시면서 그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하니까, 그 즉시로 그 하인이 나은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백부장의 말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고, 나의 상관이 있다는 말이고,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다는 말은 내 밑에 졸병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얘기를 하면서 이 백부장은 이 군인들의 상하관계, 명령을 하면 순종해야 하는 이 관계를, 그대로 자기와 또는 하인과 예수님하고의 관계로 가져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와 하인은 당신의 종이니까, 당신이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시행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주인이고 나는 종입니다.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시행되어야 하는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주님 말씀하시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믿음의 관계, 주종의 관계였습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기도하면, 그 기도는 100%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즉시로 백부장의 하인이 중풍병에서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직업은 주 안에 거하며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과 훈련을 하여 숙련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직업에 종사할 수 있듯이, 항상 주 안에 머물면서 기도의 직업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주 안에 항상 머물 수 있는지, 어떻게 기도를 능력 있게 할 수 있는지를 잘 배우고 훈련을 하여서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숙련공다운 기도의 작업을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날마다 그 직업(주 안에 거하며 기도하는 것)에 충실히 종사했으면 좋겠습니다.

 

결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주님과 밀접하게 연결된 사람이라면, 우리가 주님과 항상 교제하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주 안에서 항상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열매 맺을 수 있고,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내가 주 안에 있고, 주의 말씀이 내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으시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할 때 믿음의 분량이 응답의 분량이 정해진다고 합니다. 믿음의 분량이 크면 클수록 응답의 분량도 커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32:27)고 하셨고,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9:12-13)고 하셨습니다.

 

어느 사람이 하나님이 살아서 역사하시는 한, 우리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심으로, 우리의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이 됩니다.

 

주 안에 항상 머물러 있으면서, 무엇이든지 간구하여 응답을 받음으로, 좋으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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