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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17 -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이정현 목사 2019-03-17 추천 0 댓글 0 조회 1647
[성경본문] 디모데후서3:1-5 개역개정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딤후 3:1-5,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입니다. 지금 디모데는 에베소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 전체를 간단하게 둘로 나눌 수가 있겠습니다.

 

1-2/ ‘복음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과 자세에 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핵심 된 내용은 2:15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3-4/ ‘말세의 타락상과 이단에 대한 경계와 상황을 초월한 복음 전파에 대한 권고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세, 이단 그리고 끊임없는 복음전파에 관하여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디모데후서 후반부의 말씀 중에, 제일 첫 번째로 나오는 말세의 타락상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본문을 근거로,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릴 때, 큰 은혜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편지의 저자인 바울은, 지금 로마의 지하 감옥에 2차로 갇혀있는 신세입니다. 자기의 영적 아들 디모데는 지금 에베소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데, 그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영적 아버지는 영적 아들을 부르면서, ‘네가 반드시, 그리고 지속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세에는 고통 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말은 고통 하는 시대인 말세가 오는데, 그때에 너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말세라는 말은 구약과 신약에서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이 되는 단어입니다. 구약에서는 메시야가 도래하기 직전의 시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반면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의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이든 신약이든 그리스도 중심이며, 그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의 시대를 말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오시기 이전의 말세는 구약적인 말세개념이고,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오시기 이전의 말세는 신약적인 말세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사용된 말세는 주님의 재림이전의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 됩니다.

 

그 말세는 고통 하는 때(시기)라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고통은, 마태복음 8(28)에 나오는 거라사의 광인에게 사용된 단어입니다. 군대 귀신에게 괴로움과 고통을 당하는 그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괴성을 지르며 자기를 묶고 있는 쇠고랑과 쇠사슬을 끊어버리는 괴력,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며, 자기 몸을 돌로 해치고 있었던 사나운 사람(칼레포이)을 말합니다. 그래서 고통하는 때가 온다는 것은, 사나우며 폭력적인 그런 시대가 온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2절부터 5절에 걸쳐서 19개 사항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말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덕적, 영적 타락상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 이 세상은, 이렇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상당히 많은 내용이지만, 간단하게 하나하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개 중 2절에 무려 8개 사항이 나타납니다.

 

1)말세가 되면 자기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혹자는 이 말을 고슴도치에 비유하여 말하기도 했습니다. 고슴도치가 자기의 몸을 공처럼 둥굴게 만들어서, 부드럽고 따듯한 털로는 자신을 위하고, 밖에 있는 대적자들에게는 날카로운 가시를 돋쳐내는 것처럼, 자기 사랑도 똑같다는 것입니다. 자기만 위하고 자기만 잘났고 자기가 최고고,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자기만 사랑하는 이기적인 인간을 말합니다.

 

2)말세에는 돈을 사랑합니다. 돈을 생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목적으로 삼아 탐욕을 부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돈이 자기의 신이 된 사람입니다. 돈이 최고고 돈이면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돈이 궁하면 궁한 대로 돈을 탐하고,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더 큰 부자가 되어 보려고 욕심을 내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4)에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지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던 바리새인들이 듣고 비웃었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지요?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머리가 피를 달라고 다고다고하면서 사람에게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돈만 다고다고 하면서 돈에 찰싹 붙어서 돈돈하는 거머리 같은 인생을 말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셨는데(딤전 6:10), 여전히 현대인들은 돈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온갖 죄와 불법과 악행과 비리와 부패가 여기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자기 사랑과 두 번째 말하는 돈 사랑은 결국 그릇된 사랑의 두 대상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자기와 물질은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닌데, 여전히 우리의 마음은 거기에 빼앗겨 있는 것입니다.

 

3)‘자랑하며입니다. 이는 뽐내면서 뛰어 다니는 것, 공연히 겉치레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골에서 효과 없는 약을 선전하여 과장하여 자랑하는 돌팔이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유명한 주석가 헨드릭센은 이야기 했습니다.

 

4)‘교만하며입니다. 교만하다는 말은 자신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건방지게 말하고 행동 하는 것이고, 훼방하는 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과도히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을 교만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셨음으로 이것은 기독교인의 주적입니다.

 

5)‘비방하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방은 불평불만과 짝하여 더 많은 죄악의 구름을 몰고 다닙니다.

 

6)‘부모를 거역하며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지도 않고 신뢰하지도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제5계명을 고의적으로 범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부모공경과 부모에게 순종을 말씀하시고 있는데 현대인들은 부모를 의도적으로 거역한다는 것입니다.

 

7)‘감사하지 아니하며입니다. 이것은 베풀지 않고 용서하지 않고 은혜를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인정하지 않는 처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도 은혜와 사랑과 복을 베풀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은혜와 축복을 안 받은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현대인들은 우리 교회에 와서 어린 아이들에게서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 어린아이들은 제가 마이쭈 하나만 줘도 두 손으로 받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합니다. 그러니 우리교회 아이들로부터 감사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8)‘거룩하지 아니하며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세워 놓은 신성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무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이들은 어두운데서 더럽게 추잡하게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3절로 넘어가서, 여기서는 말세의 타락상 6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2절에 이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9)‘무정하며입니다. 이 말은 동물들의 어미와 새끼 사이의 애정도 없다는 뜻입니다. 맹수들이 서로 치고 박고 잡아먹고 해도 어미가 자기 새끼를 돌보는 애정은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애정이 없다는 것을 무정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부모와 자식 사이의 애정이 매말랐다는 의미입니다. 부모 자식 사이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렇습니다. 지금 시대는 분명 정이 없어져 가는 시대입니다. , 초코파이가 없어져 가는 시대입니다.

 

10)‘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입니다. 이 말은 평화 상태를 인정하지 않는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서로 양심적으로 화해하기 어려운 상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느 영어역본에는, ‘인정 없는,’ ‘비인간적인’(inhuman-NRSV)이라는 말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현대는 분명 서로 원통함을 풀지 않는 비인간적인 존재들이 많습니다.

11)‘모함하며입니다. 이 말은 참소한다는 말입니다. 이웃을 서슴치 않고 경멸하고 비난하는 것을 모함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디아볼로이)의 어근이 마귀(디아볼로스)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같은 어근에서 모함이라는 단어와 마귀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은, 모함은 마귀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것이고, 둘은 서로 분리시킬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 하는 자요, 그래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그 아비가 마귀라고 했습니다. 거짓말 하며 모함하는 것은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또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파괴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12)‘절제하지 못하며입니다. 이것은 감정이나 원초적인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을 것을 말합니다. 현대인들은 자기의 감정, 언어, 행동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이 말을 영어성경에서는 방탕아’(profligates)로 번역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철저히 부도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치를 모르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 담배, 오락, 헨드폰, 언어와 행동을 절제하지 못하고, 자기 기호라고 말하고, 이게 무슨 잘못이고 죄이냐고 말하고, 내가 한다는데 당신이 뭔데 말리냐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해 놓고 이게 자유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젊은이들이 세속적인 것들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13)‘사나우며입니다. NIV 영어 성경에서는 야수적인 사람,’ ‘야만인,’ ‘미개인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사납고 잔인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인데 짐승 같은 사람이고, 야만인처럼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14)‘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입니다. 이 말은 선을 좋아하지 않을 뿐아니라 선을 미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선한 것을 증오하고 경멸하는 사람입니다. 선을 행할 생각도, 행할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3절에서 말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4절을 통하여, 4가지를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세에는 또 어떤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15)“배신하며입니다. 가면 갈수록 배신자가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구든지 쉽게 저버릴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은혜 입고 도움을 많이 받고 사랑을 많이 받아도 배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세에는 신앙적 배신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딤전 4:1). 말세에는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16)‘조급하며입니다. 이것은 성질이 급하고 완고한 것을 말합니다. 어리석고 부주의하게 행동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미칠 결과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사람입니다.

17)‘자만하며입니다. 자만은 자기 중심적인 성격의 사람을 말합니다. 자기 사랑에 도취되어 이기적인 상태를 놓여있는 사람입니다.

 

18)‘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방향이 한참 잘 못되었습니다. 2절의 말씀에 있는,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과 연결하여 쾌락 사랑을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곧 말세에는 사랑의 대상이 자기, 재물 그리고 쾌락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주석가가 왜 그토록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쾌락을 사랑하고 싶은 유혹이 강할까요?’라고 질문하며, 다음의 몇가지 이유를 제시하였습니다. 1)쾌락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통제 밖에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2)쾌락은 대부분 쉽게 습득할 수 있으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3)쾌락은 지금 당장 유익을 주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얻는 유익은 종종 미래적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4)쾌락에는 최면 효과가 있습니다. 쾌락은 우리 자신과 문제들을 잠시 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우리의 필요와 책임들을 상기시키기 때문입니다. 5)쾌락은 교만과 협력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그럴듯하게 보이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의 교만과 업적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현대인들은 자기의 육신적 만족, 성적쾌락을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19)‘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다른 사람에게 근사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양은 공허하며 무의미 할 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경건의 능력을 부인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본문의 몇 구절에 나타난, 말세의 타락상 19개 사항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타락상 중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타락상 두 개를 꼽으라면, 저는 이기주의와 쾌락주의를 뽑을 것입니다. 말세의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기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져있고, 앞으로 가면 갈수록 이 두 가지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지대한 악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 때문에, 곳곳에 지울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고, 복구 할 수도 없는 재앙을 맞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극단적인 표현일지 모르나, 이기주의와 쾌락주의는 자기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망하게 하고 교회를 망하게 하고, 국가를 망하게 하고 전 세계를 망하게 할 것입니다. 분명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이기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져있습니다.

 

어느 여성 버스 기사가 20여명을 태우고 노선을 따라 시골길을 운행하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가는데, 3명의 남자들이 탔는데, 술을 먹은 것 같습니다. 타자마자 여성 버스 기사에게 이런 저런 말로 농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 기사가 대꾸를 하지 않으니까 이제는 손찌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운행 중에 있으니까 상당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나서서 그 세 사람을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보고만 있는 사람, 창문 밖을 쳐다보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 세 사람의 폭력이 심해지자 할 수 없이 기사는 차를 세웠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버스 기사를 바깥으로 데려가서 구타를 하였습니다. 그때 버스 안에 있던 한 사람이 참다못해 바깥으로 나가서 그 사람들을 말려보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세 사람은 기진맥진한 이 여자 기사를 성폭행했습니다. 윤간을 한 것입니다. 기진맥진하여 윤간을 당한 그 여성은 자기의 몸을 추수려서 버스에 타니까, 그 세 사람도 이어서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기사가 시동을 걸고 갈려고 하는데, 밖에 있던 한 사람이 자기도 타려고 올라서는데, 그 기사가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버스는 도로를 따라 가다가, 깊은 계곡에 추락해서 모두가 죽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 사고는 중국에서 있었던 실제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현대인들의 두 가지 타락상, 이기주의와 쾌락주의라는 것입니다. 여성 기사가 그렇게 수모와 폭행과 농간과 성폭행을 당해도 한 사람 외에는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타인이 어려움을 당하면 좀 도와주어야 하겠다, 타인이 위험한 일을 당하면 좀 보호해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나만 아니면 되는 거야, 나만 괜찮으면 되는 거지, 나만 안전하고 나만 피해가 없으면 되고, 나만 손해가 없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기주의라도 이것은 극단적 이기주의자들입니다.

 

이같은 이기주의는 쾌락주의를 낳았습니다. 버스에 탔던 그 세 사람은 육체적 쾌락주의에 빠져버린 사람들입니다. 술로써 자기의 감정과 마음을 즐겁게 하려고 했습니다. 연약한 여성에게 폭력을 행함으로 쾌감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육체적 정욕을 이기지 못함으로 윤간을 행하여 성적 쾌락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사용하고도 하나의 수치심이 없이 다시 그 버스에 탔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사회적인 대 충격을 준 사건 하나가 터졌습니다. 그것은 한 젊은 가수가 강간과 성폭력을 행하고 그것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유포한 것입니다. 여성들을 상품화 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 짐승이나 노리개 취급을 하면서 서로 대화하는 것들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제가 충격을 받았던 것은 그들이 이런 일을 행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다는 것과, 20대의 젊은이들이 성적인 쾌락에 깊이 빠져있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과연 이것이 그들만의 문제이겠습니까?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집에 있는 내 아들 딸의 문제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바울은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런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라. 한번 돌아섰다고 방심하지 말고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돌아서는 행위를 하라는 것입니다. 한번 하고 힘들다고, 한번 하고 잘 안된다고, 실망하고 좌절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계속, 날마다 끊임없이 돌아서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에게 걸맞지 않는 옷은, 그것이 어떤 옷이 되었더라도 과감히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것에서 멀리 떨어지고, 대신 하나님께는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과감하게 잘라 버리고, 주님을 향해 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들의 삶의 방식과 다르게 살아야 하고, 그들의 삶의 목표와 다르게 살아야 하고, 그들의 삶의 가치와 다르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 이런 악한 것들이 우리 안에 들어올 틈이 없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마음과 쾌락을 사랑하는 마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을 자기가 아니고, 재물도 아니고, 성적 쾌락도 아니라, 하나님으로 정하고, 그 하나님만 일편단심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경건의 모양만 갖추지 말고 경건의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종교적인 형식을 갖추었다고 해서, 말세를 잘 살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선적이고 거짓된 믿음으로는 절대로 세상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경건을 생활화하고,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타인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정욕적인 쾌락도 죽일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말씀을 볼 때, 어쩌면 에베소교회에도 이미 이런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조차도 이미 이방인들처럼 이기적인 마음과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만큼은, 그들에게서 돌아서서 주님이 말씀하시고 가르쳐 주신대로, 경건하게, 하나님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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