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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28 - 생명의 길 박영복 목사 201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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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16:1-11절 개역개정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본문: 시편 16:1-11

제목: 생명의 길

일시: 2019428일 주일 12부 설교

 

지난주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부활주일을 지켰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묵상하시면서 한 주간 거룩하고 경건하게 잘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또 그 묵상이 앞으로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시편 16편을 꼼꼼히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도 아주 좋은 시를 읽고 감동을 받게 되면 소위 인생 시라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합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시도 마찬가지 일뿐 아니라, 오히려 우리 신앙인에게는 더욱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부활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성도의 신앙일까 고민하고 교정해야하는 주일, 이 시간에, 예수님의 부활을 고대하며 살았던 한 시인, 다윗의 시를 살펴봄으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그럼 한 절씩 읽으면서 말씀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시인은 1-2절에서와 같이, 시작부터 전체적인 내용을 짧게 요약하며 시작합니다. 먼저 1절은 간구입니다.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시인은 어떤 두려움인지 모르겠지만 두려움에 휩싸여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길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번역이 안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라는 말 앞에는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피하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 달라는 것입니다. 이 표현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시인은 이미 이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러니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방도를 생각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모든 보호를 요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원문: 나를 지켜주소서 왜냐하면 내가 주께 피해왔기 때문입니다.)

 

1절과 같이 간구의 이유를 2절에서 간단히 설명을 합니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이 번역에 특별히 잘못되었다고 말씀은 못 드리겠습니다만, 원문을 보면 더 흥미롭습니다.

 

원문: 여호와께 당신(여성)이 말해왔었습니다. 당신(남성)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당신(남성)위에 나의 기쁨이 없습니다.

 

당신이라고 지칭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인칭 여성대명사는 아마도 7절의 양심’(킬야; 킬요타이, ‘나의 콩팥’)을 가리키는 말로 생각됩니다. 7절에서 이 양심은 밤마다 자신을 교훈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그 교훈의 내용이 여기서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여호와만이 자신의 주인이라는 사실, 주님 밖에서는 자신의 기쁨을 찾을 수 없다고 밤마다 가르친다는 것이죠.

이 고백에서 우리는 이런 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인은 주님은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걸 다 들어주시는 분이라고 여기는 초보적인 신앙을 넘어섰습니다. 오히려 주님이 나의 주인이시기에, 그분이 나에게 원하는 바를 요구하실 수 있고 내가 또 그 모든 것을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내게 기쁨이 있는 것이고, 그 결과 주님은 나를 기쁘게 하시고 만족케 하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의 복은 오직 주님에게만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신앙적 경험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만 피하고자 하는 시인의 신앙적인 경험은 어떤 모습 이였을까? 시인은 자신의 삶은 반추해 봅니다. 3-4절은 그 모습의 단면을 소개하는 것 같습니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3절과 4절은 상당히 의역이 되어 있지만 번역의 결론은 비슷합니다. 일반적으로 시인과 성도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시인에게 왜 성도들이 즐거움이 될까? 시인과 성도와의 교제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고, 그들이 맺는 신앙적 열매를 통하여 시인은 즐거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시인의 신앙적 경험이 다른 성도들의 경험으로 전이 되어서 동일한 기쁨을 느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문: 그들은 땅에 있는 거룩한 자들과 위엄 있는 자들을 위하여 있습니다. 나의 모든 즐거움은 그들 안에 있습니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다른 것으로 바꾸는 자들을 말하는데, 한글 성경의 번역처럼 다른 신들에게 예물을 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지 않고, 세상의 그 험난함을 인내하지 못하고 다른 희망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인의 결론은 그들은 괴로움이 더할 것이다라고 표현합니다.

믿음은 기다림을 낳습니다. 하지만 우상숭배를 하는 자들은 조바심에 기다릴 수가 없죠.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하는 자들은 우상에게 피의 전제와 우상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불행과 슬픔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시인은 자신은 그들과 같이 그러한 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3-4절을 요약하면, 세상 사람들의 생각에는 더디고 가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시인은 경건한 자들이 신앙으로 맺는 열매를 보며 기쁨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는 결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죄를 지으며 괴로움을 겪지 않을 것이라 다짐합니다.

(원문: 그들의 상처들은 많아져 왔습니다. 그들은 다른 것으로 바꾸어 왔습니다. 그다음은 동일한 다짐의 내용.)

 

이런 삶의 원칙과 다짐의 근거가 무엇 이였는가? 5-7절에서 소개합니다. 먼저 5절에서 그 근거를 말하고 6-7절에서 자신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합니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시인의 고백에 의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그의 분깃, 즉 산업과 잔을 하나님께만 의존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지키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산업은 기업을 의미하는 것이고 은 성도의 삶(어떻게 살아야 할지)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의 필요도 채워주시지만, 성도가 어디로 가야할지도 제시하시는 겁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되었다고, 또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물질의 공급과 삶의 방향을 인도해 주시고, 그 모든 것을 안전하게 유지 시켜 주신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6절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공급하신 산업에 대해 묵상합니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시인은 자기 인생 경험을 추억하며 주님을 찬양하는 겁니다. 자신의 인생이 복된 인생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주신 기업은 실로 아름답고 기쁨이 넘치는 기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공급은 자신의 눈에도 너무 만족하다는 말입니다.

 

7절에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자신을 인도하신 것을 묵상합니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시인의 고백처럼, 경건한 성도는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얼마나 지혜로운 뜻을 따라 자신을 인도하셨는지 알게 됩니다. 2절에서의 고백처럼 밤마다 시인의 양심이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도록 인도하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시인은 8-11절에서 앞으로 지속적인 삶의 다짐이라고 할까, 신앙의 고백이라고 할까,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물론 이 고백이 간구형태로 나와 있는 말이 1절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인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를 기대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곁에 늘 계신다면 요동치 않을 하나님의 도움을 확신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의 그 함께 하심을 누리며 삶이 요동치 않는다고 합니다.) (원문: 내가 여호와를 지속적으로 내 눈앞에 두어왔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우편으로부터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9-10절입니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그 교제의 결과, 시인의 마음과 영이 기쁘고 육체는 평안히 거주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종, ‘주의 거룩한 자들을 허무하게 멸망시키시거나 스올(지옥)로 인도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말입니다. 이 믿음은 이 땅에 살면서 신앙인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안식과 평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9 이제 마음도 영도 즐거워하며 육체도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10 ‘멸망썩음을 당하지 않는 걸로 이해하면서, 육체의 부활을 확신하며, 영원한 안식을 말하는 개념이 된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생명의 길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하여 시인은 그 생명에 대한 충만한 감사와 기쁨과 즐거움을 주님 앞에서 느낄 수 있다고 말하고, 또 주와 함께 한다면 그것이 영원히 주어질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삶의 결과가 무엇이냐, 무엇을 누릴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고 봅니다.(-> 11절은 생명의 길, 즉 영생을 통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여기까지의 본문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시에서 8절에서 11절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을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사도행전 225절에서 32절까지 소개된 사도 베드로의 해석입니다. 베드로는 신앙인의 삶의 다짐에 속하는 8절에서 11절의 말씀을,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보고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럼 다시 한 번 8-11절을 그렇게 해석해 볼까요?(다시 돌아가 진한 부분으로 해석)

 

짧게 두 가지만 묵상하겠습니다.

첫째, 오늘 시인의 고백에서 우리는 신앙인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시인의 이런 신앙적인 경험이 현대에 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여겨집니다. 그 몇 가지 규칙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우리의 삶 속에서 어떠한 어려움이나 두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피난처는 오직 우리 주님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오직 주님께 간구하고 주님의 원칙에서 그 어려움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2)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만복이 되심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성도들에게 주시는 열매가 우리의 모든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이를 위하여 날마다 우리는 주님의 훈계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 교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원칙들을 잘 기억하고 우리의 삶에 적용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공급하심이 성도 여러분에게 임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평화와 안식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우리가 세상 속의 삶에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달리 말해, 우리의 신앙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기준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겁니다. 시인의 삶에서 진정한 안식과 평안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바로 우리의 부활의 모범을 보이시고, 그 부활의 믿음의 근거가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결정된 사실이라는 걸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런 믿음위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는 완전할 수 있는 것이구요, 오늘 시인이 고백하는 여러 교제의 모습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과 저에게 임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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