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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5 - 자기 가족들을 잘 돌보라
이정현 목사 2019-05-05 추천 1 댓글 0 조회 1529
[성경본문] 디모데전서5:1-8 개역개정

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2.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3.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딤전 5:8, 자기 가족들을 잘 돌보라.

 

디모데전서는 목회 서신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너는 이렇게 이렇게 목회해야 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바울은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었고, 디모데는 아시아의 에베소교회를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비록 늙고 병들어 감옥에 있어서 자유스러운 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감옥에서 목회자 디모데에게 목회의 방침에 관하여 말한 것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디모데전서 5장 앞부분을 통해 말씀하고 있는 것을 통해, ‘자기 가족들을 잘 돌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지혜로운 사도는 젊은 목회자에게, 교회 안에서 늙은이를 대할 때 아버지에게 하듯하고, 젊은이에게는 형제를 대하듯 하라’(1)고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연령계층이 있는데, 그 중에서 목회자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혹시 잘못한 것이 있어도 가혹한 말로 훈계하지 말고, 유순하고 온유한 태도로, 마치 자기 아버지에게 하듯 하라고 하셨습니다. 연장자에게 교훈과 책망을 하더라도 격려하는 마음과 친절한 태도로 예의를 갖추어 하라는 말입니다. 혹시 어른들이 무엇을 잘 못 했어도, ‘왜 이렇게 했어요, 이렇게까지 밖에 못해요, 차라리 하지를 말고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지 말고, ‘이번에 일을 이렇게 해 주셨는데,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다음에는 이렇게 해 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라는 식으로, 유순하게 예의를 갖추어 말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목회자보다 나이 어린 사람을 대할 때에도, 함부로 대하지 말고 자기 형제를 대하듯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무례하게 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대하거나 명령조로 말하거나, 기분 나쁘게 대하거나 화를 내면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이어서 바울은 교회 안에서,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늙은 여자는 어머니를 대하듯 하고, 젊은 여자는 깨끗함으로 자매를 대하듯 하라’(2)고 하셨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여자는 인격적인 존재로 대접을 받지 못하였고, 비천한 존재로 또는 남자들의 소유물로 취급되었습니다. 늙은 여자는 보통 노동력이 없고 경제력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하찮게 취급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사용하다가 버려진 걸레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그런 때에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교훈하기를, 나이가 많은 여성들을 어머니처럼 대하고, 젊은 여성들은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말해 불순한 의도로 대하지 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예의 없이 함부로 대하지만, 교회 안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다음은 과부들을 어떻게 대할지에 관하여, 3절부터 7절에 걸쳐 말씀하시고, 아울러 9절에서도 동일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과부들에게 관심을 많이 보이셨습니다. 그들에게 사랑을 많이 베풀어 주셨고, 과부나 고아들, 가난한 자들에게 사랑을 많이 베풀라고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신명기 10:18/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하나님은 고아와 과부 편이시며,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14:28-29/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1조를 드려서 그것으로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대접하라고 하셨고, 그리할 때 하나님이 그런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24:19-22/ ‘곡식을 벨 때도 다 베지 말고 남겨두고...과수나무에서 과일을 딸 때에도 남겨두며...포도원에서 포도를 수확할 때에도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는 이삭과 과일을 남겨두어, 어려운 사람들의 양식이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7: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라.’

 

하나님은 성경의 처음부터 이렇게 고아와 과부들에게 관심을 보이셨고, 그들을 배려하고 필요를 공급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사회 보장제도, 보험, 복지가 되어있지 않은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런 사람들을 구제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이런 과부들을 섬기고 존대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과부를 두 종류로 나누어서, 그들을 어떻게 섬겨야 할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참 과부는 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참 과부란 부양할 가족이 전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돌보아 줄 가족이나 친지가 전혀 없는 사람으로, 가난한 중에 겨우겨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존대하라고 하셨는데, 존대하라는 말은 적합하게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서 합당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사려 깊게 돌보아 주고 물질적으로 후원해 주라는 말입니다. 왜 참 과부들을 이처럼 돌보고 물질로 후원해야 하는가 하며는, 그들도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지체가 물질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당연히 조금 여유가 있는 다른 지체가, 도와주고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얘기입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다른 데서는 도움을 요청할 데가 없으므로, 교회가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과부도 혼자되었다고, 인생을 함부로 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5절에 보시면,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항상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과부가 되고 아무도 부양해 줄 사람이 없고 외롭다고 해서, 향락을 좋아하고 허랑방탕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안나라는 과부가 나오는데, ‘그는 과부가 되고 84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다’(37)고 했습니다. 그녀는 참 과부로서 합당하게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항상 기도하며 살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혼자가 되고 외롭고 낙심된다고 해서, 육체적 쾌락을 위하여 다른 이성에 빠져 살거나, 아니면 자기 부양을 위한 부도덕한 방법인 매춘에 빠져서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과부가 있다면 교회에서는 그런 사람을 지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쾌락을 위해 사는 과부를 존중하고 지원하는 것은, 그녀가 계속 잘 못을 행하도록 부추기고 도와주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쾌락에 빠져있는 과부들을, 책망하여 회개하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역시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참 과부가 아닌 과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말해 과부라 할지라도 부양할 수 있는 자녀나 손자들이 있다면, 그런 경우에는 교회가 돌보지 말고 그의 자손들이 돌보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4). 과부가 된 어머니나 할머니를 가정에서 그의 자손들이 부양함으로서, 부모에 대한 효를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자손들은 오히려 이럴 때,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효도의 기회로 알고, 홀로된 할머니와 어머니를 잘 봉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부모가 우리를 부양하셨지만, 이제는 홀로된 어머니와 할머니를 우리가 돌보고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 시대 때 말씀하신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지금도 철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세대를 향하여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홀로된 어머니, 할머니를 잘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19(32)너는 센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군인들이 상관이 오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차렷 자세를 취하는 것처럼, 어른들 앞에서 그런 자세와 태도를 취하고 그들을 공경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를 모시려고 하지 않습니다. 홀 어머니와 홀 시어머니를 자기가 모시려고 하지 않고, 다른 형제들에게 떠 넘기려고 하고, 양로원이나 노인병원에 맡기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비록 혼자되신 어머니와 할머니를 모시는 일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손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돌보아 드려야 합니다. 성경은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라’(4)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가족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비록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마음적으로도 괴로운 일이라 할지라도, 혼자되신 어르신들을 잘 공경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6:2-3).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뿐만아니라, 우리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게 되는 복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7절에 보면,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노 사도는 젊은 아들 디모데에게, 너는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들을 성도들에게 가르침으로, 그들로 하여금 책망을 받지 않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로부터 받은 것을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가르쳐야만 합니다. 교회 안에서 늙은 사람과 젊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 참 과부는 어떤 자이며 그들을 어떻게 부양해야 하는지, 참 과부가 아닌자들은 누가 섬겨야 하는지를 가르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야 교인들이 가르침을 받고 배운 대로 삶으로, 책망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의 사역자는 가르침을 받은 것을, 성도들에게 잘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배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목사로부터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를 배워야합니다. 찬송을 어떻게 부르고, 기도를 어떻게 하고, 설교를 어떻게 듣고, 헌금을 어떻게 하고, 성찬에는 어떤 마음으로 참여하고, 성도들 사이의 교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또한 전도를 어떻게 하는지를 배워야 하고, 교사들과 구역인도자는 성경을 어떻게 가르쳐야하는지, 그리고 구제와 봉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성도들이 배움을 받은 대로 실천함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가르치는 사람은 바르게 열심히 가르쳐야하고, 배우는 사람은 사모함으로 잘 듣고 배워서, 우리 모두는 가르치고 배운 대로 실천함으로, 우리교회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책방 받을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칸트 은혜교회를 갔을 때, 그 교회 성도들은 조용진, 김희진 선교사님의 가르침을 잘 받아서,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그 주변의 많은 목사님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었고, 청년들이 너무 훌륭하게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부러워하기도 하였습니다. 책망 할 것이 없을 정도로 바르게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의 핵심 구절인 8절로 가겠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자기 가족에 대한 기본적인 보살핌과 지원을 태만히 행하는 자는, 믿음을 부인하는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다고 말하면서, 가족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말하면서,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도, 가족의 필요를 채워주는 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 유대인들의 구제의 제1순위는 바로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 부인이 굶거나 궁핍하면 남편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2순위가 ...이고, 3순위가... 결국 유대인들은 자기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필요를 충분히 채워주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요한은 타인의 필요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모든 신자를 통렬히 꾸짖고 있습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요일 3:17). 주위 사람들의 어려움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요한은 구약에서, 동생 아벨을 돌보지 않은 가인의 예를 들어 말합니다(요일 3:11-20, 4:1-12). 마땅히 형은 아우를 돌보고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동생을 돌로 쳐서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시니까,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말합니다. 그는 동생에 대한 보호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책임을 무시하는 자들은, 실제적인 의미에서 믿음을 배반한 자입니다. 자기 부모님이 병들어 고통 중에 있는데도,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사람들, 가장이면서도 가정의 경제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 아이들이 공부하는데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은, 믿음을 배반한 사람들이고 불신자들보다 더 악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여기 배반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성경 용어 중 가장 나쁜 말인 것 같습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했을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동양에서는 4번이 죽을 사자라고 해서 안 좋은 수이지만, 유럽에서는 제일 기분 나쁜 수가 13번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1, 베드로가 2, 야고보가 3, 요한은 4...이렇게 나가서 13번이 가룟유다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3번을 유럽에서는 배신의 수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나 건물 층수를 13층은 빼고 한다고 합니다. 자기 가족들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믿음을 배반한 사람이라고 했음으로, 13번을 달고 있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님이, 100억 정도를 드려서 엘림 복지관을 세웠습니다. 이곳은 불우한 청소년들과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시설이었습니다. 이곳에 어느 할머니가 들어오셨는데, 몇 해가 지나서 이 할머니가 노환으로 돌아가시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복지관 측에서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가족들이나 친척들이 없습니까?’ 할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나는 아들, 딸이 없어요, 죽어도 찾아 올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혹시나 몰라서 복지관에서 할머니 소지품을 검사해 보니까, 호주머니 속에서 전화번호가 하나 나왔습니다. 그래서 복지관에서 그 번호로 전화를 해서, ‘혹시 아무개 할머니를 아시냐고 물어보니까, ‘아니 그 할망구가 왜 나한테 전화를 하느냐고, 나는 그런 사람 모른다고 하고 화를 내면서 끊어 버리더랍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사람은 이 할머니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은, 40대 중반의 그 아들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안수집사였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용기 목사님이, 설교를 하면서 공개적으로, ‘그런 사람은 안수집사가 아니라 성도가 될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심하게 책망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늙은 이를 아버지에게 하듯하고, 젊은이에게는 형제를 대하듯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늙은 여자는 어머니에게 하듯하고 젊은 여자들에게는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대하듯 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참 과부는 존대하고 필요를 채워주어야 하지만, 홀 어머니, 홀 할머니에게 가족과 친지들이 있으면 그들이 부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참 과부는 외롭지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항상 기도하며 살아야지, 향락에 빠져 살면 그 영혼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사항들을 교인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책망을 받지 않도록 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본문 마지막 구절에서 바울은 자기의 친족 특히 가족을 잘 돌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족의 생계문제, 경제적 필요를 채워주고, 또한 세상의 악과 위험으로부터 지켜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가족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런 일들을 하지 못하면 그런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고, 불신자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딱 맞는 말씀이 잠어서에 있습니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30:17). 부모를 홀대하는 자에게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성도는 자기 가족을 잘 돌보고, 더 나아가서 모든 성도들을 자기의 가족처럼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하고, 또한 교회는 교회로서 해야 할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여러분의 부모님을 잘 돌보는 것과 교회의 어른들을 잘 섬기는 것은, 인간의 도리요 자녀의 도리요, 성도의 도리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효도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부모님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제일 많았고, 다음은 부모님의 필요에 따라 경제적인 지원을 해 드리는 것이라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들이 걱정하지 않으시도록 주 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또한 정성스럽게 부모님에게 용돈도 드리는, 효도를 다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되고, 우리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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