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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3 21 -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이정현 목사 2021-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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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9:14-29절 개역개정

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321일 막 9:14-29,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 일명 변화산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다른 9명의 제자들은 산 아래에 머물고 있었고, 세 명의 제자만 예수님과 함께 산에 올라간 것입니다. 이 산에 오르신 목적은 기도하러가셨다고 누가가 밝히고 있습니다(9:28).

 

그 산에서 기도하시다가 예수님의 용모가 변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함께, 별세(죽음, 구원)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졸고 있다가 깨어나서, 이 영광스러운 광경을 보고 두려워 떨게 됩니다. 그러다가 베드로가 비몽사몽간에, 여기에다가 초막 셋을 짓자고 하자, 하늘에서 구름이 그들을 덮어버리고, 그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9:7). 제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까, 예수님만 보였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그 산에서 내려오면서 제자들에게, 자기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아울러 구약에 예언되어 있던 엘리야가 세례 요한임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는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서 어떻게 성취가 되었는지를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공관복음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그의 세 명의 제자들에게 두 가지 교훈을 하신 것이고, 이제 산 아래로 내려오셨는데, 그런데 누가복음 9(37)에서는 이튿날산에서 내려오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전날 밤에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는데, 밤새도록 기도하시다가 아침에 내려오신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추측할 수 있는 근거가, 14절의 이에라는 말입니다. 이에라는 말은 바로 앞의 변화산 사건과, 계속 연결된 사건임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난밤의 일이 아침의 사건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의 세 명의 제자들이 산 아래로 내려와서 보니까, 다른 9명의 제자들과 서기관들이 서로 변론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율법학자들인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안 계신 것을 틈타서, 아직 믿음이 미숙한 제자들에게 접근하여, 논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로 변론한 내용이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아마도 앞뒤 문맥을 보아서 영적 권위에 대한 변론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자, 아마도 서기관들이 제자들과 그의 스승인 예수님의 영적 권위에 대한 논쟁을 벌린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한마디로 너희와 너희 선생은 권위와 권능이 없다는 주장일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과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갑자기 딱 나타나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뵙자 다 놀라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아마도 지난밤 주님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된 것이, 아직도 그 영광의 광채가 주님에게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광채가 나는 그 얼굴을 뵈옵고 다 놀라며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뵙고 난 이후, 산 아래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났을 때, 그 얼굴에 광채가 났던 것처럼, 주님도 밤새도록 하나님과 교통하며 지내시다가, 아침에 은혜로 충만하고 영광 중에 나타나시자, 사람들이 그 영광에 매우 놀랐던 것 같습니다.

 

이때 군중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예수님 앞으로 귀신들린 자기 아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귀신들린 자기 아들을 데리고 주 앞에 나온 것입니다. 아버지는 숨김없이 그 동안 귀신이 내 아들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상세하게 말을 합니다. 이 귀신은 내 아들에게 말을 못하게 했다고 말합니다(17). 내 아이가 벙어리 된 원인이 귀신 때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18절에서는,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라고 했습니다.

 

귀신은 내 아이를 잡아서 거꾸러뜨리고, 거품을 흐리게 하고, 이를 갈게 하고, 파르르 떨게 한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귀신이 내 아이를 잡아다가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몸이 떨고 뒤틀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귀신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귀신이 하는 나쁜 일에 관하여 본문은 4번을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말에서(18), 귀신 자체의 행동에서(20), 예수님과 그 아버지의 논의에서(21-22), 귀신이 나오기 전에 아이에게 또다시 경련을 일으키게 할 때(26)입니다. 이처럼 4번씩이나 아이의 처참한 모습을 기술하는 것은, 그만큼 귀신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의 형편과 처지를 예수님께 다 말씀을 드리고 나서, 그런데 예수님, 제자들에게 아이를 데리고 와서 귀신을 쫓아달라고 부탁하지만, 제자들은 쫓아내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능히 이 일을 하지 못하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셨고(3:15, 6:7), 제자들은 과거에 성공적으로 귀신을 쫓아내기도 했습니다(6: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 일을 실패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하시면서,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데리고 오기는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본 것은 귀신이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귀신이 예수를 보고, 그 아이로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했다고 했습니다. 귀신은 예수가 자기를 추방시킬 자, 정복자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마지막 심한 경련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경련의 원인은 악령 때문입니다. 이 악령의 실체는 원수 마귀이고, 그 놈은 사람을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귀신이 그 아이에서 나가기 전에 최후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땅에 엎드려지고, 구르며 거품을 흘렸습니다.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어릴 때부터라고 했습니다. 이 아이가 몇 살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수년간, 장기간 이렇게 심각한 상태로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심각한 상황이 계속되었다는 것은, 이제 더이상 치유될 소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아이는 어쩌면 아직 한 번도 건강한 때가 없었고, 성한 때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말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고, 누구의 말을 제대로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대신에 수년 동안 괴성을 지르며 다니고, 쓰러져서 거품을 흘리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내게 된 것입니다. 때로는 불 속에 뛰어 들어가기도 하고, 물 속에 뛰어 들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자주 그랬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자기 아이의 이런 상황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을 것이고, 차라리 아들 대신에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침에 눈만 뜨면,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없을까? 얘가 또 어디에서 쓰러져 발작을 하지는 않을까?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곤히 잠자는 모습을 보면서는, 또 무슨 생각을 할까요? 때로는 하루하루를 견디기가 힘들고, 너무 절망한 나머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아들아 이런꼴 저런꼴 보지 말고 차라리 우리 죽어 버릴까?

 

이런 만가지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번 더 일어날 것입니다. 이런 고난의 무거운 짐, 아들 때문에 아버지가 진 이 무겁고 어찌할 수 없는 짐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이 아버지는 누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달라고 합니까? 저 아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포함한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합니다. 이는 자기의 몸에 아들의 몸을 합쳐서, 밧줄로 꽁꽁 묶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달라는 기도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모든 것을 마음에 품고, 한 몸 한 뜻이 되어서 1인칭 복수 우리라는 단어에 묶어서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23)고 하셨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무엇을 할 수 있거든당신께서 능력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지만, 주님은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그 아버지에게 믿음을 요구한 것입니다. 믿음만이 치병이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믿으면 된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며,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합니다. ‘믿나이다라는 말은 믿음의 발을 내딛는 것이고,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는 것은, 나는 여전히 약하니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충분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의 발을 내 딛으며, 충만한 믿음을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주님이 몇 명의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실 때, 먼저 그 사람의 믿음을 확인하시고 그의 믿음대로 병을 고쳐주신 것처럼, 여기서도 그 아버지의 믿음을 강화시켜 놓고, 그 아이를 고쳐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25절부터 27절까지는 본문의 하이라이트이며, 중심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25절은 예수님이 축사하시는 부분이고, 26절과 27절은 귀신이 쫓겨나서 아이가 온전해지는 내용입니다.

 

축사라는 말은 가축의 우리를 말하기도 하고, ‘축하를 하는 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사귀를 쫓아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아이에게 들어가 있던 귀신을 어떻게 쫓아내시느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여기에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라는 말이 있는데, 이미 15절에서 온 무리가 있었는데, 여기에다가 소문을 듣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무리들은 앞의 무리와 다른 무리들인 것입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에수님 주변에 몰려 든 것입니다.

 

이때 주께서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귀신을 더러운 귀신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놈은 아이를 더럽게 하는 귀신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말을 못하게 하고 듣지도 못하게 한 더러운 놈이라는 것입니다. 귀신이 들어가서 역사하는 데는, 항상 더럽고 지저분하고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놈의 목적이 바로 사람을 더럽고 만신창이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이 부르신 것처럼, 귀신을 더러운 놈이라고 부르면 좋겠습니다.

 

이 더러운 놈아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아이에게 다시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어벽까지 쳐 두신 것입니다. 귀신이 그 아이에게서 나오게 되면, 그 아이는 건강하고, 밝게 웃으며 생활하는 정상적인 아이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그 아이에게 들어가서, 그 아이를 더럽게 하거나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명령을 하셨을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났습니까?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할렐루야 !

 

귀신이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습니다. ‘그 아이에게서 나오라는 주님의 명령에, 꼼짝없이 나와서 도망을 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신이 순종을 한 것입니다. 그 놈은 마지막까지 그 아이로 심한 발작을 일으키게 하고, 쓰러져 기진맥진하게 만들고 떠나간 것입니다. 끝까지 악랄한 귀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도망친 것입니다. 쓰러져서 죽은 것처럼 된 아이를, 예수님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그 아이가 건강한 아이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이 하지 못한 일을 주님이 하셨습니다.

 

이 본문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끝나는 부분까지를 보면, 구절구절에서 예수님의 동정심, 긍휼, 자비, 능력이 나타난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그 아이를 내게로 데려오라’(19)고 하셨고, ‘예수님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21)고 물으셨고, ‘아버지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셨고’(23), 예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더러운 귀신을 내 쫓아주셨고(25) 뿐만아니라,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고 말씀하셨고(25), 예수님이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셨다(27)는 말씀에서 이것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주님이 아이의 아버지의 간청을 들어주셔서,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심으로, 주님이 메시야이심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드러내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영적 세계까지 지배하고 통치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당시 귀신들린 아이 옆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아이를 고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 외의 다른 사람들도 이 아이를 낫게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아이를 말씀으로 고쳐주셨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영적인 존재인 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을 괴롭히고 죽이려고 하는 귀신을 추방함으로, 아이에게 건강을 주신 것입니다. 아이를 살려 주신 것입니다. 아버지에게는 큰 기쁨과 만족과 감격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가 메시야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실 뿐만아니라, 영적 세계까지 지배하시는 주권자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사건이 해피엔딩으로 끝이나고, 예수님이 제자들고 함께 어느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아무래도 변화산에 올라가지 않은 9명의 제자 중 누가 질문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었고, 또한 마땅히 해야만 했던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있었어도, 이런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에 주님이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29)고 대답하셨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마태복음 17:20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마태는 믿음이 적기 때문에 귀신을 쫓아낼 수 없다고 얘기했지만, 마가는 기도외에는 이런 능력이 나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이, 마태는 믿음이라고 한 반면, 마가는 기도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수를 물리치거나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과 기도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하나로 묶으면, 원수를 물리칠 수 있는 다른 수단과 방법은 없고, 오직 믿음의 기도뿐이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신뢰하고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의 신실한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 전지, 주권을 믿는 사람만이 그 하나님께 진실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의 기도가 귀신을 추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사실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제자들은 산 밑에 있었던 9명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따라서 변화산에 올라갔던 사람들도 졸다 내려온 것 같지, 예수님처럼 간절히 기도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국 12명의 모든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책망을 들었고,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는 주님의 교훈의 말씀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기도도 하지 않았고, 믿음도 연약하였습니다. 여기에다가 서기관들과 변론만 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이런 영적인 상태에서, 귀신을 재압할 수 있는 능력이 나오겠습니까?

 

기도하지도 않고 서로 변론(다툼)만 하면 불가능만 낳지만, 믿음으로 기도하면 가능을 낳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기도는 안하고 다툼만 하였으니, 이적이 나타날 수 있나요? 기도는 믿음을 열고 드러내 보이는 열쇠입니다. 효과적인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절대적인 신뢰가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을 근거로 하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특별히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런 것입니다.

기도만이 이런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주님이 그 전날 밤새도록 변화산에 기도하셨고, 이틑날 아침에 이런 이적을 보여주신 것은, 제자들에게 세상에 있는 악의 권세와 대항하여 승리하려면, 믿음의 기도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의심하는 기도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닷물과 같지만,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며, 역사하는 힘이 많은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로 원수를 이기고, 세상을 승리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외에는 세상을 이길 방법이 없음을 알고, 기도로 원수를 제압하며 매일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믿음의 기도로 주님의 주님되심, 주님만이 메시야이시며, 주님만이 세상 만물의 통치자이심을 드러내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기도제목/ 믿음의 기도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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