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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3 28 -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간구 이정현 목사 2021-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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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26:36-46절 개역개정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328일 마 26:36-46,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간구

 

교회력에 따르면 오늘은 종려주일 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안으로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예수님을 환영했다고 해서, 이 날을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이번 한 주간은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특히 목요일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그날 밤에 로마 병정들에게 붙잡혀서 고난을 받으시다가, 금요일 오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됩니다. 죽은자 가운데 3일 만에, 즉 다음 주일에 주님은 부활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다음 주일을 부활주일이라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있었던 사건으로, 공관복음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22:39-46, 14). 이것을 우리는 겟세마네의 기도라고 부릅니다.

 

본문은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있었던 사건으로 공관복음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22:39-46, 14). 이것을 우리는 흔히 겟세마네의 기도라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많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방인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 유대인들처럼 형식적으로 기도하지 말라.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주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모범기도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구하라 얻을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의심하지 말라. 두 세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께서 들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비유로 가르쳐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쳐 주셨을 뿐만 아니라 친히 기도하셨습니다. ‘병자를 고치기 전에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도 하나님께 감사기도 하셨습니다. 변화산에 오르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밤새도록 철야 기도하셨습니다. 새벽 미명에 한 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락방 강화를 마치고 제자들과 미래의 제자들과 온 세상을 위해 오래 동안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도 기도하셨고 마지막으로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도 기도하셨고 지금은 천상,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주이시며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셨습니다. 기도할 필요가 없는 분이 이렇게 기도하신 것은 오직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과 어떻게 교제하는지를 보여주심으로 우리보고 그 길을 따라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도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니,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기도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공관복음에 나와 있는 기사 전체를 종합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에 보면 겟세마네가 나오는데 이는 감람산 중턱에 있는 산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서 감람산으로 올라가다 보면 산 중턱을 가리켜서 겟세마네 동산이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올리브 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곳에 주님은 습관을 따라 가셨다는 했는데, 주님에게는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정해진 기도의 처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때도 경건한 습관을 따라 기도하시기 위하여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을 찾으신 것입니다. 경건한 사람들에게는 거의 동일하게 자기만의 기도하는 시간과 장소가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경건의 시작과 능력은 바로 그곳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제가 남아공에서 공부할 때, 그곳에서 아주 대조적인 선교사님 두 분을 만났습니다. 한 분은 선교사 경력이 대단하고, 한국으로부터 후원도 빵빵하게 받는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는 1년에 억대가 넘는 선교후원금을 받아서, 어리어리한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을 몇이나 두고 선교사역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처음으로 선교지역을 나온 사람이고, 평신도이며 자비량 선교사였습니다. 앞에 사람은 영어가 능통했지만, 이 사람은 영어가 서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비량 선교사가 그 나라에 들어온지 6-7개월 후에 선교의 결과는 현격하게 차이가 났습니다. 선교헌금을 그렇게 많이 받고 벤츠를 타고 다니는 그 사람에게는, 선교의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그를 통하여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초자 자비량 선교사를 통해서는 대학생들이 전도가 되어 그 집에서 7-8명이 같이 모여서 성경공부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교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 자격, 실력은 분명히 달랐습니다. 모든 것을 갖춘 선교사에게는 열매가 없었고, 모든 면에 부족한 듯 보이는 그 사람에게는, 열매가 많았습니다.

 

이 두 선교사를 지켜본 저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기도하는 습관이 없었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먹고 노는 것밖에 없었는데, 다른 한 사람 집에 가면, 누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출근하기 전 2시간 퇴근하고 난 후 2시간은, 작은 방에 들어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제가 그 집에 1주일 넘게 신세를 졌던적이 있어서, 이 상황을 너무나 똑똑히 보아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주님처럼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던 선교사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로 사람을 붙여 주셔서 양육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습관을 따라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신 것입니다. 지금은 주님이 혼자 가신 것이 아니고, 다락방 강화를 마친 이후이기 때문에, 제자들을 데리고 이곳을 향해 가고 계셨습니다. 11명의 제자가 주님과 함께 동산에 도착을 하였을 때 주님이 8명의 제자들에게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8명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며는, 가룟 유다는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할 때 주님을 배반하여 나가버렸고, 11명이 동행하다가 동산에 도착했는데, 다음 구절에서 세 명의 제자를 따로 데려가시는 것을 보니까, 남은 자가 8명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8명의 제자들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은, 단순히 내가 기도할 동안에 여기 앉아 있으라고 하셨지, 주님이 자기의 마음을 그들에게 알려 주시거나, 여기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여기 앉아 있으라고만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조금 멀리 두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3명의 1군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좀 더 나아가셨습니다. 그들을 좀 더 자기 가까이에 두시고는, 자기의 속마음을 그들에게 얘기하셨습니다. “38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예수님이 본인의 마음을 이렇게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인간들 앞에 표현하신 적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여기에서만,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고민하시고 슬퍼하신 것은,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왔거나, 제자들을 홀로 남겨두게 될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자로서, 이제 인류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육신을 입으신 주님이 자신의 심적 상황을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병행 구절을 보면 깨어 있으라는 말씀 대신에,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22:40)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신들이 시험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와 함께 깨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지, 본인을 위하여 깨어서 기도하라고 부탁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기도 제목을 분명히 주시기를, 너희들이 시험에 빠지지 않게 너희 자신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이지, 주님이 인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신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볼 때에, 기도와 시험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기도하면 시험을 이길 수 있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시험에, 유혹에 빠지지 않게 간구해야,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이 많이 기도하면 많이 은혜받고, 적게 기도하면 적게 은혜받고,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만 닥쳐 온다고 했는데 ,이 말이 맞는 말이지 않습니까? 기도는 때에 따라서는 짧고 굵은 것도 필요하지만, 가늘고 긴 것도 필요합니다. 기도의 깊이는 시간과 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오래 엎드려 있는 것이 좋습니다. 많이 기도하여 많이 은혜받는 게 좋습니다. 오래 엎드려 있어야 높이 비상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도 마찬가지이고, 선교지도 그리고 교회와 나라와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주님이 조금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립니다. 8명의 제자는 조금 멀리 떼어 놓고, 3명은 조금 떨어져서 기도하고, 주님은 홀로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는 주님이 이 세 제자로부터, ‘돌 던질 만큼 가서기도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홀로 은밀하게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위하여, 한적한 곳을 찾으신 것입니다. 이제 주님이 기도하시는 태도와 자세와 마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22:41) 기도하십니다. 이것은 겸손함과 간절함을 나타내는 기도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26:39) 기도하셨다고 했는데, 이런 기도 자세는 잘 사용되지 않는 자세입니다. 보통은 서거나 무릎을 꿇어 기도하지만, 주님은 여기서 아주 간절함을 드러내며 이런 자세를 보인 것입니다.

 

누구에게 기도하십니까? ‘내 아버지여라고 부릅니다. 아버지만이 기도의 유일한 대상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만물의 주권자이시고, 전능하신 분이시고 전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겟세마네 동산에 오시기 전, 주님이 다락방 강화를 마치시고 요한복음 17장에서, 제자들과 미래의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셨는데, 그곳에서는 무려 30번 이상이나 주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시며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예수를 주로 믿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은,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자기 아버지께 뭐라고 기도하십니까?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3번을 같은 내용으로 기도하십니다. 혹자는 주님의 이 기도를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중언부언은 의미 없는 말을 계속 반복하여 아뢰면, 들어 주실 것을 바라는 이방인의 기도인데, 주님의 이 기도는 의미 없는 말씀이 아니고, 더더구나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달라는 중복된 간청임으로, 오히려 더 간절하고 더 애절함이 강조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뜻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신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며, 그것을 이루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버지의 뜻일진대,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내용으로 어느 정도 기도하십니까? 주님의 이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에서는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3중적으로 주님의 기도의 열정과 간절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정말 심정을 토해 놓으며 기도하신 것입니다. ‘힘써서 기도하셨다’, ‘애써서 기도하셨다’,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다’. 성경의 인물 중에 어느 누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까? 3중적인 열정과 간절함으로 기도하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떨어지는 땀이 핏방울 같이 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힘쓰고 애써서 간절히 기도하셨으면, 땀샘에서 땀이 다 흘러나오고, 이제 그 땀샘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겠습니까? 의사들의 말을 들어보아도, 땀샘을 통하여 피가 흘러나올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을 볼 때, 이것은 문자대로 믿을 수 있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보일 수 있는 최선의 간절함과 열정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 기도를 히브리서 기자는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5:7)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였다고 했습니다.

 

제가 겟세마네 동산을 방문할 때마다 주님이 기도하셨다고 생각되는 그 장소를 찾아갑니다. 지금도 거기에는 2000년이 넘었다는 덩치가 큰 올리버 나무가 있습니다. 주님이 잡히시기 전 목요일 밤에,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리며 통곡하시며, 마음의 토하여 내시며 기도하시던 그 모습을 상상하며, 그 올리버 나무에게 물어 봅니다. ‘올리버 나무야, 너는 예수님이 눈물과 통곡하심으로 기도하시는 것을 보았니? 보았으면 주님의 그 기도가 어떠하셨는지 알려주렴.’ 아직까지 한 번도 그 나무의 대답을 듣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나무로부터는 대답을 듣지 못하였으나, 오늘 본문을 통하여 볼 때, 주님이 당시 얼마나 애절하고 간절히 기도하셨는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서 주님이 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와서, 계속하여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서, 깨어있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의 눈이 피곤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주님의 말씀에 따르지 못하고, 깨어 기도하지 않음으로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본문 마지막 두 구절은 주님이 기도가 끝나고, 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오사,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이 때가 가까이 왔다고 하심으로,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도 가끔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예고하셨던 주님이, 이제 예고하신 그 때가 가까이 왔다고 하신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지로를 받아, 로마 군병들에게 붙잡힐 바로 그 때가 가까이 왔고, 또한 죄인의 손에 넘겨져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사, 아버지의 뜻을 이루실 그 때가 곧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구속의 그 날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게세마네의 기도를 통하여, 마침내 십자가를 지시고, 모진 고통을 다 감내하시므로 구원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심으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신 것입니다. 첫째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전 인류를 죄 가운데 빠지게 했고 하나님과 인류를 원수지간이 되게하였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 첫째 아담의 불순종을,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순종하신 것입니다. 첫째 아담의 실패를,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성공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아담 안에서 죄 가운데 빠진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류를 화목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류의 생명의 교통을 가져오셨습니다. 첫째 아담은 실패하여 사망과 생명의 불통을 가져왔으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공하여 생명과 영통을 가져오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몇 가지 교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1)우리가 기도할 때 자세와 태도를 배우게 됩니다. 주님은 무릎 꿇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는 기도 자세를 취하셨습니다. 이것은 겸손과 간절한 자세와 태도로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낯을 벽을 향하여자기의 건강회복을 위하여 기도했는데, 이는 오직 주님만 의지하겠다는 태도로 기도한 것입니다.

 

2)기도의 열정을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은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거지 소경 바디메오의 기도에서, 주위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해도, 그는 더 큰 소리로 부르짖음으로 응답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을 토해 놓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는 마음, 진액을 쏟아내는 기도,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하는 것을 배워야만 하겠습니다.

 

3)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기도의 내용도 배우게 됩니다. 내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찾아,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기도할 때가 많지만, 주님은 그 반대였습니다. 오로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4)기도하면 은혜를 주시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진다는 교훈도 받게 됩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안일하게 방심하지 말고, 영적으로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바로 설 수 없고, 또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결국 기도하면 은혜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만 닥쳐올 분입니다.

 

결론

 

주님은 본문을 통하여 누구에게 기도하며, 어떻게 기도하며, 어떤 내용으로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주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심으로, 십자가를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이 기도를 본받아서, 하나님께 겸손한 마음으로, 힘써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가 됨으로, 원수를 이기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 3644,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기도제목/ 예수님이 기도하심으로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태도로,

예수님과 같은 열정으로, 예수님과 같은 내용으로 기도하는 영적으로 깨어있는

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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