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누가복음22:31-3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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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2.2.13 눅 22:31-32, 예수님의 기도생활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 헤리라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어린아이는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의 주일학교 교실이 너무 비좁은 것을 알고 좀 더 큰 교실을 달라고 하나님께 매일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어린아이는 매일 하나님께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어린아이는 열살도 못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유품을 정리하다가 두툼한 편지 묶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편지 묶음은 물론 하나님께 보내는 편지였고, 내용은 주일학교에 큰 교실을 지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그 편지 묶음을 목사님께 전하였고, 크게 감동을 받은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설교시간에 그 내용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이 감격하고 회개했음은 물론이고 이 뉴스가 여기저기로 번져 나가 그 교회에는 새 교회를 건축하고도 남을 만큼의 많은 헌금이 들어왔습니다. 교회는 그 어린아이의 이름을 기념하여 초등학교도 세우고 중고등학교도 세웠으며 심지어는 대학(캠플 대학)까지도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10년도 못 되는 짧은 세월을, 바람처럼 살다가 홀연히 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어린아이의 믿음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많은 열매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현실의 필요를 위한 한 어린아이의 기도를, 하나님이 더 넘치도록 응답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기도함으로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 부분은, 다음 시간에 살펴보기 원하고요, 오늘은 예수님이 친히 기도하신 내용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기도하셨는데,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습니까? 성경을 통하여 간단간단하게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누가복음 3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눅 3:21-22).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기도하셨다고 했는데(현재 분사로 지속적으로 기도하심), 무슨 내용으로 기도하셨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곧장 이어서 성령이 비둘기 형체로 강림하신 것과, 성부 하나님의 소리가 난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기도의 응답으로 하늘이 열렸고, 성령이 강림하셨고, 성부께서 예수님이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언해 주신 것입니다.
2. 다음의 성구를 보시면, 주님이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에, 온 밤을 지 새우며 기도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눅 6:12-13). 누가는 예수님이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다고 밝히고 있고, 그곳에서 온 밤을 새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철야기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제미 있는 표현이 하나 나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라는 말인데,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면 ‘하나님의 기도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어느 신학자는 이 말을 ‘주님이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듣기 위하여 하나님께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사람의 해석이 맞다면, 주님은 지금 자기의 뜻이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밤새도록 기도의 창문을 열어놓고, 12명의 제자를 선택하는 건에 관하여,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는 것을 듣기 위해서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하나님께 여쭈어보고, 다음날 아침에 많은 제자들 중에서 12명을 택하여 사도라 불렀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12명을 제자로 뽑기 전에,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꾼을 선택하실 때, 이력서를 보거나, 다른이의 추천을 받아서 사람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 밤새도록 묻고, 선택을 했다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또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는가요? 그는 요한복음 17장에서 자신을 위하여, 제자들을 위하여, 미래의 제자들을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의 핵심된 내용만 간단히 보겠습니다.
먼저 주님이 자신을 위하여서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 17:1)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영화롭게 하심으로, 그것으로 인하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
다음은 주님이 그의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는데, 3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1)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여 달라고 하셨습니다(17:11). 악한 세상에서 제자들이 살아가는데, 아버지의 그 능력의 이름으로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2)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였습니다(17:11). 저들이 하나로 계속 존재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인데, 그 샘플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 본질과 성품과 사역에 있어서 서로 분쟁하거나 나뉘지 않는 것처럼, 저들도 계속 하나로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3)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입니다(17:17). 제자들이 진리의 말씀으로만 거룩하여 질수 있다는 것을 아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저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머지 주님이 ‘미래의 제자들’과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신 내용들은 성경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기도생활에 대한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기도하셨는지를 복음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4. 이어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하여, 기도하신 내용을 보겠습니다.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32).
어느날 사탄이 예수님께, 시몬을 비롯한 제자들을, 밀 까부르듯 하기 위하여 내어달라고 요청을 한 것입니다. 여기의 밀 까부르듯 한다는 말은 사탄이 제자들을 시험하겠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통하여 예수님에게서 분리시키거나,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하여, 강하게 요청한 것을 말합니다. 사탄이 제자들을 밀 까부르듯 하려는 궁극적인 목적은, 제자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사탄의 이같은 요청에 주님이 어떻게 대응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기도로 사탄의 요구에 대항을 한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고 했습니다. 네 믿음이 파괴되지 않기를, 네 믿음이 떨어져 나가지 않기를, 네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탄이 밀까부릇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여러 제자들이었는데, 주님은 오직 베드로 자신만을 위하여 기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너희’라는 2인칭 복수에서 ‘너’라는 2인칭 단수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하여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하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훗날 주님을 배반하고 저주하며 주님을 떠나가지만, 다시 돌이키게 되고, 오순절 성령충만을 통하여, 형제들을 굳게 세우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결국 베드로의 믿음이 파괴되지 아니하고, 그가 회개하여 그 믿음을 유지하고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은, 베드로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한 주님의 간구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주님은 지금 천상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 이정현이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 해 주옵소서.’ 이것 때문에 우리가 이 만큼이라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5. 주님은 또 무슨 기도를 하셨습니까? 그분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서,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고 하셨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이런 내용으로 세 번이나 반복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은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는 힘쓰고 애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이 흘리렸던 땅방울은, 핏방울같이 되셨습니다(눅 22:44).
주님의 이 기도를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표현을 하였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 간구는 들으심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6.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장장 6시간 동안, 고통과 수모와 멸시와 천대를 다 당하시면서, 주님은 모범적인 기도 두 가지를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을 보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눅 23:34).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고통스럽게 피를 흘리며 죽어가시면서도,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저 무지몽매한 인간들을 위하여,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달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들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곧 예수님이 생전에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는 말씀과 일맥상통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을 뿐만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실제로 그렇게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눅 23:46). 이제는 주님이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드리는 기도를 드리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이 생에서의 마지막 기도이었습니다(참고, 행 7:59-60).
예수님의 전생은 하나님과 함께 한 기도의 삶이었습니다. 4복음서에 나타난 그의 기도의 삶을 볼 때에, 주님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세와 태도, 어느 정도 열정으로, 얼마 동안, 언제, 어디에서, 무슨 내용으로 기도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앞에 제시한 성경을 근거하여 보더라도, 주님은 진실함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셨고,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겸손한 자세로 기도하셨고, 정말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열정적으로 기도하셨고, 오래 동안, 때로는 밤을 지세우며 기도하셨고, 기도하는 장소를 가리지 않으셨으며, 참으로 다양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예수님은 때때로 금식기도도 하셨고(마 4:1-11), 새벽기도도 하셨으며(막 1:35), 철야기도도 하셨고(눅 6:12, 22, 41-46), 시공간을 초월해서 다양하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주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으로, 온전한 신성을 가지고 계신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으로, 기도하실 필요가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친히 기도하신 이유는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신 한 가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기도의 6하 원칙을 친히 모범을 보여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21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도에도 이 말씀을 적용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기도하는 삶의 본을 보이신 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그의 자취를 따라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그분의 기도를 본받아, 엎드려 기도해야 할 책임은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이 진실로, 간절히, 열정적으로, 겸허한 태도로, 아버지께,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오랫동안 기도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그렇게 기도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그리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항상 여호와 낯을 구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항상 여호와의 낯을 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 자체가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며, 능력이며 소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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