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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0 09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다.
이정현 목사 2022-10-09 추천 0 댓글 0 조회 710
[성경본문] 고린도후서6:14-18 개역개정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고린도후서7:1 개역개정

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제공: 대한성서공회

2210월 둘째 주 설교

고후 6:14-7:1,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다.

 

본문은 고린도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고린도는 아시아와 유럽의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상업의 발달로 인하여 많은 부를 누리며 살았던 도시입니다. 돈이 많다 보니까 사치와 향락 그리고 유흥과 퇴폐가 성행하여 자연히 방탕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가장 퇴폐적이고 음란한 도시가 바로 고린도였습니다.

 

그 도시가 그렇게 된 것은 그 도시의 종교 역할이 큰데, 고린도에서는 주로 사랑의 여신, 방종스러운 정력의 여신 비너스를 섬겼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자신들의 사업의 성공을 도와달라고 사랑의 여신 비너스에게 아름다운 여성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녀를 구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에까지 사람을 파송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사랑의 여신의 제단 앞에는 아름다운 1,000여명의 여성들이 신전의 창기로 일을 하였습니다. 외국인 상인들이 자신들의 많은 돈을 이 창기들에게 날리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이것 뿐만아니라 온갖 죄악이 자행되고 있었던 타락하고 음란한 도시가 고린도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를 믿고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까지도, 이런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우상숭배 현장에 참여하고, 신전에서 같이 음식을 먹고, 부도덕한 일들을 하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못하고, 단순한 문화적 행사에 참여한 것으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고린도교회와 이웃들과의 관계, 다시말해서 신자와 불신자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크게 두 가지를 권면하고 있다고 보고,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1.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14)는 말씀입니다.

 

여기서의 너희는 고린도교회(성도)이고 믿지 않는 자는 교회 밖의 사람들, 즉 불신자들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단호하게 신자는 불신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멍에를 함께 메다는 말은, 1세기 헬라어에서 짐승에게 마구를 채우는 행위를 뜻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신명기 22:10의 말씀,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라는 말씀에서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겨리라는 말은 짐승 두 마리를 짝하여 이르는 말이고, 한 마리의 소가 쟁기를 이끄는 것을 호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소 두 마리이든, 나귀 두 마리를 겨리하여 밭을 갈면 가능하지만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밭을 갈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며는 짐승들의 키가 맞지 않고 보폭이 맞지 않기 때문에 밭을 제대로 갈 수가 없고, 짐승 위에 실은 물건이 떨어질 수 있고, 짐승을 통제하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또 이 말씀은 레위기 19:19에 있는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하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라는 말씀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너희는 불신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좀 더 확장해서 설명한다면, 본문의 멍에는 불신자와의 결혼(고전 7:39), 우상숭배(고전 10:14), 도덕적 타락(고전 6:8),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11:4) 등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본 절을 통해 신앙과 윤리적인 면에 있어서, 성도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자신을 잘 지키라고 권고한 것입니다.

사도는 전체적인 주제를 말하고 나서, 이제 소주제 5가지를 말하면서, 대 주제를 더욱더 부각시키며 확고히 하게 됩니다. 바울이 주장하는 5가지 소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입니다. 의와 불법을 한 조로 이야기 하면서 이것이 어찌 함께 할 수가 있느냐고 물으면서 그 대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되는 의로움이라기보다, 그 이후 성도의 올바른 삶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의의 전가가 아니라, 윤리적인 면에서의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7, 11:15, 6:13-19, 1:11), 바울은 구약성경의 영향을 받아서 이 의를 성도들의 삶에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불법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을 의미하며 결국 죄를 짓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사탄을 불법의 아들, 멸망의 자식으로 표현하고 있기에, 불법은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불신자들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하나님과 신자들에게 속한 의와, 사탄과 불신자들에게 속한 불법이 어찌 함께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공통점도 없는 것입니다. 의를 행하는 사람과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 어찌 같이 살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사회에서도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은 법에 의해서 의로운 사람과 격리하기 위하여 투옥시키는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이 어찌 함께 살 수가 있겠습니까?

 

두 번째 조는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스스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셨고(8:12, 9:5, 12:46), 세례요한은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다(1:7-8)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신자들을 가리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5:14-16). 그러므로 여기서의 빛은 신자들의 선한 행위를 말한다고 봅니다(5:8). 주님의 빛을 받아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을 말합니다. 발광체가 아닌 반사체로서의 빛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어둠은 빛과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것으로, 거짓과 사기와 악으로부터 오는 혼돈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진리가 없고 선이 없고 진실이 없는 것입니다. 이 어두움 속에는 술취함, 방탕함, 시기, 질투, 음행, 살인, 사기, 온갖 악독함이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둠과 빛이 어찌 사귈 수 있다는 말입니까? 여기서 사귀다는 말은 초대 교회의 사랑과 일치의 교제를 나타낼 때 사용되었던 말입니다(9:13, 고전 1:9, 10:16). 빛과 어둠이 어찌 그런 일치된 사랑과 교제를 나눌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다도 말합니다. 빛과 어두움이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은 구원 얻는 자들과 멸망하는 자들(2:15)이 동반자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세상의 빛이시며(8:12, 9:5) 세상은 멸망으로 귀착할 어둠에 속하기 때문입니다(8:12, 25:30). 그래서 이 둘은 함께 사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 그룹은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메시아와 벨리알을 대조하여 말씀합니다. 벨리알은 무가치함’, ‘악함을 뜻하는 말로 성경에서 이 말이 매우 나쁜 뜻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예를들면, 개인에게 적용될 때는 불량하거나, 방탕하고, 거친 사람들에게 적용되었고(19:22, 삼상 10:27), 다른 단어와 함께 사용될 때는 악심을 품은 허위 선전을 뜻하는 벨리알의 말’(15:9, 41:8, 101:3)이라고 했고, ‘거짓 증언자벨리알의 증인’(19:28)이라고 했고, ‘음모를 꾸미는 자벨리알의 충고자’(1:11)라는 말로 적용을 하기도 합니다. 이 벨리알을 어떤 사본에서는 악마의 왕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본문에서 벨리알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단을 가리킨다고 봅니다(Robertson, Barrett). 결국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와 사단이 어찌 조화될 수 있겠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과 믿지 않는 비 그리스도인이 어찌 상관할 수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상관하다는 말은 부동산과 같은 자산을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의미로, 진정한 동역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말은 신자와 불신자는 서로 상충하지 않을 수 없음으로 양자는 근본적으로 병립할 수 없으며, 운명을 같이 할 수 없고 진정한 동역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2:16). 그래서 이 구절을 통하여 사업상 불신자와 동업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분명한 지침을 준다고 봅니다. 이미 동업 관계에 있다면 그것을 파기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러나 새로운 동업 관계를 맺을 때에는 이 말씀을 중심으로 매우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하고의 동업은, 일단 가치관과 목적과 수단들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과 다툼의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적당히 타협하거나 불가피한 유혹에 빠지기 쉬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자는 진정한 동역자가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입니다. 바울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14)는 주제에 대한 논증으로 지금까지 네 가지를 말했고 이제 본 절에서 그 절정을 이루며 더 이상 타협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이유를 제시합니다.

 

성전에 해당하는 헬라어(나오스)는 성전 제일 안쪽인 지성소를 말하는 것으로, 이곳은 하나님이 온전히 임재하시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성도들의 몸이 곧 하나님이 온전히 임재하시는 성전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우상이 있을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어야 합니다(고전 10:14). 일치라는 단어는(슁카타데시스)함께 찬성의 투표를 하여 승인한다는 의미인데, 하나님과 우상이 함께 동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성전과 우상은 일치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은 동시에 우상을 가득 담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신자들이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할 수 없다는 주제 아래에, 다섯 가지의 예를 들어 신자와 불신자는 서로 타협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없고, 빛과 어두움이 사귈 수 없고,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될 수 없고,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서로 좋은 동역자가 될 수 없고, 성전과 우상이 일치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흔히 지금을 퓨전 시대라고 합니다. 퓨전은 여러 가지를 섞는다는 뜻입니다. 음식을 섞어서 퓨전 음식을 만들고 음악을 섞어서 퓨전 음악을 만듭니다. 문화가 섞여서 퓨전 문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퓨전의 무한침투 시대입니다. 그러나 지금이 아무리 퓨전 시대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가진 신앙과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나라에, 세상의 무엇인가 섞어서 퓨전 신앙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처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주장은 신자와 불신자가 조화되거나 일치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가르침대로 우리가 불신자들과 완전히 분리되어 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같은 세상 속에 놓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들과 멍에를 같이하여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고전 5:9-10에서 신자들은 음행하는 자들, 탐욕을 부려 빼앗는 사람들, 남을 속이는 사람들, 술 취한 사람들, 우상숭배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한 울타리 속에서 산다 할지라도, 삶의 가치, 인생의 목적, 수단과 방법, 삶의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과 멍에를 같이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께끗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자기가 진술한 것들에 대하여, 정당성을 더 강화시키기 위하여 이제 구약성경을 인용합니다. 본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성경 구절은 레위기 26:11-12입니다. “11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이 구절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순결을 강조하는 것들이며 새로운 관계에 대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사실상 바울은 이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취되었다고 보았습니다.

16절에서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표현을 재차 쓰고 있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성전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교회라고 할 수 있음으로 곧 우리는 살아있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살아있는 교회 안에는 항상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존재하며 활동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을 살아있는 교회라고 표현을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하나님의 성전)에는 항상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시며 두루 다니시고,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같은 새로운 관계 형성을 두 번이나 반복하여(16, 18)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신구약 성경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언약의 내용입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교회는 항상 거룩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바울도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17)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이사야서 52:11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간 유다 백성들에게, 너희는 바벨론을 떠나 그곳의 이교주의와 단절하라고 외쳤습니다. 선지자의 이 외침을 끌어와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 또한 고린도 사람들이 이교주의에서 떠나서 부정한 것들에 참예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교의 경배에 대하여 아무 것도 같이 하지 말고, 그들과 구별된 삶을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과 밀접한 부자지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의 아버지이고 너희는 나의 자녀이다라는 부자지간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이 관계가 형성이 된 것입니다. 이 관계가 형성이 되면 우리는 그때부터 우리 가운데 오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교제하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한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바울은 마지막 구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앞에서도 말씀하셨지만 한 번 더 강조하여 말하기를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곧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약속을 가진 우리는, 살아있는 교회인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기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안 믿는 자들처럼 사는게 아니고 세상의 온갖 더러움 가운데서도 깨끗하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술 먹고 음행하고 더러운 짓 하고, 우상 숭배하고, 점 보고, 사주팔자 보고, 노제 지내고, 살풀이 하고, 길한 날을 찾고, 제사 지내고, 원수 맺고, 분쟁하고, 시기하고, 분내고, 당짓고, 분리하고, 이단과 타협하고, 방탕하게 살아간다 해도, 믿는 우리는 저들과 똑같이 살아서는 안 되고, 진실하게 살고 술 취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위하여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생각과 마음이 늘 깨끗해야 하고, 말이 거룩해야 하며, 모든 인간관계가 순전하며, 물질 관계도 정직하고 깨끗해야 하고, 아울러 모든 행동에 흠과 티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서 산다 하더라도, 신자들은 성령의 소욕을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우리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성전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 주여 진실(깨끗)하게 하소서, 1-진실, 2절 깨끗

기도 제목/ 안 믿는 사람을 따라서 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든 일에 깨끗하게 살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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