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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2 15 <예수님의 비하>
이정현 목사 2026-02-15 추천 0 댓글 0 조회 110
[성경본문] 마태복음1:18-25 개역개정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6215일 마 1:18-25 예수님의 비하

 

우리는 지금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도신경 강해 첫 시간에는 성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고 천지를 만드신 분이고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성자 예수님에 대한 고백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우리의 주인이시며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예수님의 낮아지심에 대한 고백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목에 붙인 비하라는 단어는 단계적으로 낮아지심이라는 뜻입니다. ‘자기라는 말을 붙여서 자기 비하라고 하면 예수님이 스스로 자기를 점점 낮추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낮추셨다는 것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마리아에게서 나심,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죽으심 그리고 무덤에 장사지냄을 말합니다. 성자 예수님에 대한 이 세 가지 신앙고백을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마리아에게서 나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다 부정모혈의 관계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없이 태어난 자식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여느 사람과 같지 않고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오셨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세상적인 방법으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어떻게 오셨을까요?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셨다고 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1:18-20).

 

분명히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했고 이 사실을 천사도 증거 하였습니다.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이 말씀은 마리아와 성령님이 성 관계를 가져서 예수님이 잉태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셔서 잉태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예수에게 죄의 오염이 없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을 통해 태어나는 사람은 모두 아담과 하와의 죄를 물려받게 되는데 그 죄로부터 오염되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성령으로 예수를 마리아의 몸에 잉태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날 수 없는 상황 중에 신성을 가지시고 태어나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이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4:15, 7:2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고 했습니다. 한 아이가 모태에 잉태되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신비한 것입니다. 한 가정의 자녀 생산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 신비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 중에도 예수님이 육신을 입으신 사건은 너무나 신기해서 인간의 이성으로는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오실 때에 동정녀 탄생이 가장 적합한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동정녀라는 말은 숫처녀라는 뜻입니다. 남자를 가까이 해 본적이 없는 처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와서, 내년 이맘때에 너에게 아이가 있을 것이라고 했을 때, 마리아가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반문 했던 것입니다. 전혀 남자를 경험해 보지 못한 여인에게 성령께서 능력으로 예수를 잉태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모태에서 10개월간 성장하여 출산하게 된 것입니다. 이미 구약 성경에서는 그리스도가 이렇게 태어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은 곧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경 몇 군데에서 마리아의 처녀성에 대하여 말 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처녀성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성육신이 얼마나 큰 이적이었나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오신 것은 예수께서 참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며 예수님에게 인성이 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성육신 즉 그분은 인성을 가지고 태어나셨지만 죄가 없는 온전한 분이며 흠과 티가 없는 분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그랬습니다. “내가 교회를 다니고부터 고민되고 믿지 못할 사항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친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1:37)고 일러 주신 것입니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음으로 이런 일도 계획대로 이루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한 여인의 몸을 빌려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에게서 태어났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기 위함입니다. 죄가 없는 분이 당신의 택한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킴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는 육신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 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신 것을 믿습니다.

 

2.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죽으심을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아버지 없이 태어났고 희한한 이적을 많이 행했다고 하니까 그것은 후세대 사람들이 지어낸 신화라고 생각하고 예수를 전설의 인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라 역사의 일원이었습니다. 그 명백한 증거가 바로,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당시 유다(Judea), 사마리아(Samaria), 이두메(Idume)이 세 지방을 다스린 로마 제국의 다섯 번째 총독이었습니다(A. D. 26-36 혹은 27-37).

 

빌라도가 로마 총독이었다는 것은 로마 역사가 증거하고 있고 동시에 이스라엘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예수라는 갈릴리 사람이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처형되었음이 역사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전설속의 주인공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역사적 인물이며 역사를 뒤바꾸어 놓았고 인류 역사 속에 구원의 역사를 심었던 분입니다.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살과 피가 있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배고픔과 피곤함을 겪으시고 시험과 어려움을 당하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감정과 경험을 가진 참 사람이 되셔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무지막지한 고난을 친히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고난을 다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의 채찍에 맞으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따귀를 맞으시고 조롱과 멸시를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으신 채 인간들의 모욕을 다 받으시고 양손 양발에는 커다란 대못이 박히시고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한 방울 한 방울의 피와 물을 흘리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은 고난의 극치입니다.

 

십자가는 로마 제국시대 인간의 잔악상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형 기구였습니다. 종들이나 식민지 백성들이 반란음모와 같은 범죄를 했을 때 그런 자를 이 형틀에 묶어 처형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그런 죄가 없는데도 백성들의 요구로 십자가에서 처형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게 되신 것은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기로 마음에 의논하고 회의를 열어 그렇게 결의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 처형방식도 빌라도가 군중들에게 물었을 때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했을 때 빌라도는 예수가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결국 군중의 소리 때문에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도록 넘겨 준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사법과 행정을 관장하는 빌라도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에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다고 계속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를 흘리셔야만 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 우리 무리의 죄악을 예수님에게 담당시키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셨고 우리가 지옥의 자식이었기에 예수님께서 피 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53:5-7).

 

또 이사야 53:10에서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외아들을 보내셨고 고통과 쓰라림과 배신의 십자가, 저주의 십자가를 지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용서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나음을 주시려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려고 우리에게 영생과 천국을 주시려고 예수를 십자가에 버리신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다른 사람을 위한 전적인 자기희생과 사랑의 철저성을 나타냅니다. 복음서들에 의하면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말씀을 예수는 실현한 것입니다. 이 철저한 사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것입니다.

 

제가 고린도후서 5장의 말씀을 읽다가 은혜받은 말씀이 한 구절 있었습니다. 519절 말씀인데 우리 성경은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번역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인간과 화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화해의 이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습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자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묻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내세워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와 화목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자에게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죄를 가리움 받는 은혜가 있고 나음과 평안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피와 물을 다 쏟아주신 것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속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3. 예수님이 무덤에 장사되셨음을 믿습니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는 장사된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는 말은 시체가 묻혔다는 말이지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이 죽으면 묻히게 되어 있습니다. 땅 속에 매장을 하든지 아니면 화장을 합니다. 예수님이 묻힌 곳은 작은 석회암 동굴 같은 곳이었습니다. 본인의 무덤은 아니었고 부잣집 사람 요셉의 무덤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신을 옆에 두고도 천사가 앉을 수 있는 자리나, 마리아가 구푸려 들어갈 수도 있었던 좀 넓은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이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안장 되었습니다.

 

죽으시고’ ‘묻히시다라는 이 진술은 십자가 사건의 최후적인 성격과 예수의 인간성의 문제를 가장 예리하게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최후는 죽음이고 또 인간이 죽으면 땅속에 묻히게 되어 있다는 인간의 한계와 비운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 단어들, 즉 죽음과 장사는 인간의 절망을 나타냅니다. 다시 회생될 수 없는 것을 상징하며 그 어떤 희망도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복음서에서 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의 장사지낸 바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슬람교나 극단적 지유주의자들은 이 사실을 부인하기 때문에 성경을 정면으로 도전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분명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시체를 무덤에 장사하는 일을 주도했던 인물은 아리마대 요셉이었습니다. 그는 공회 의원이었고 선하고 의로운 자였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던 자였고 예수님의 제자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산헤드린 회원이었다면 예수님을 정죄하고 빌라도에게 넘겨주는 일에 그가 관여했을 것으로 보여지나 누가는 회의 결의와 행사에 가하다고 하지 않은 자’(23:51)라는 말을 볼 때 그가 그 결의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요셉은 당돌히(용감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몸이 아닌 시체)를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런 요구에 빌라도는 백부장에게 죽었는지를 확인하고 시체를 내어 주라고 했습니다. 빌라도의 허락을 받은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서 니고데모가 가지고 온 향유로 예수님의 시체를 닦고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싸서 새무덤에 장하였습니다. 이것으로 그의 묘실이 부자와 함께 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53:9)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인들이 무덤까지 요셉을 좇아왔다는 것은(23:55) 장례의 한 부분을 보여줄 뿐만아니라 그분의 시체가 장사지낸 바 되었다는 확실한 증언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장사지낸 바가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미 죽었음으로 다리를 꺾지 않았고 한 군병이 창으로 허리를 찌르니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의 시체가 무덤에 장사된 것은 죽음의 확실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41문에 그는 왜 장사지낸 바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에 답은 그로써 그가 참으로 죽으셨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장사 지냄을 받은 분인 줄 믿습니다.

 

결론

 

성자에 대한 두 번째 고백으로 그의 탄생과 죽음에 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 신앙고백을 근거로 중요한 두 가지 교훈을 뽑아 보았습니다.

 

먼저는 천사의 지시에 대한 마리아의 순종입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사이였지만 아직 순결한 사이였습니다. 그런 자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너에게 아이가 있을 것이라고 했을 때 어쩌면 당황했을 뿐만 아니라 화가 났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파혼될 수도 있을 것이고 여자의 앞길을 막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사가 수태고지를 하였을 때 마리아는 그대로 수용합니다. 순종합니다. 용납합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1:38). 참으로 놀라운 순종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좀더 적극적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1:46-50).

마리아는 자신의 수치심, 두려움,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 입음에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은총에 가담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후회나 한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같은 비천한 여인을 돌아보신 사실을 기뻐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라는 고백을 할 때마다. 하나님이 비천한 우리들을 돌아보사, 신이시며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을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신 그리스도는 인류의 소망입니다. 신학자 윌리암 바클레이(W. Barclay)라는 사람의 고독한 생애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한 작은 마을에 유태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농사꾼 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나이 30이 될 때까지 작은 목공소에서 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3년간 설교 여행을 다녔습니다.

한 권의 저서도 없고 일정한 직업도 없었으며 자신의 집도 없었습니다.

대학에 다녀 보지도 못하였고 큰 도시에 가 본 일도 없었으며 자신이 태어난 동네에서 2백 마일 밖으로 나가본 일도 없었습니다.

 

알몸 하나 뿐인 고독한 총각 이었습니다.

 

드디어 사람들은 이 사나이를 적대시하기 시작했고 친구들은 도망치고, 그 중 한 친구는 배신까지 하였습니다.

 

끝내 이 사나이는 억울한 재판의 희생물이 되어 십자가 위의 이슬로 사라지셨습니다.

죽은 뒤에도 무덤이 없어 친구 한 사람이 무료 대여한 셋방 무덤에 겨우 장사 되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2,000년이 흘러 오늘이 되었습니다.

뜻밖에도 이 고독한 사나이는 오늘에 와서 인류의 중심에 있게 되었습니다.

역사상 찬란했던 모든 군대, 모든 통치자, 모든 장군들, 모든 영웅, 모든 임금들을 합쳐도, 인류에게 이토록 영향을 미친 사람은 결코 없었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생애에 대한 놀라운 묘사입니다. 그는 진정 인류의 중심이며 영원을 향해 달려가는 대열의 선두에 서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 인류에게 소망을 주신 분이십니다. 죄 있는 사람들과 지옥의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소망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에게서 나심을 믿습니다. 이렇게 태어나심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을 믿습니다. 이렇게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유일한 대속제물이 되셨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무덤에 장사되심을 믿습니다. 이렇게 무덤에 장사되심으로 우리가 더 이상 죄의 형벌로 죽음을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죽음은 하늘에 이르는 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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